[비바100] 김소연 "천서진은 완벽한 악인… 허영미는 귀여운 수준"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9-13 18:45 수정일 2021-09-13 20:20 발행일 2021-09-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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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eople] 드라마 '펜트하우스' 모녀열전 ①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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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년여에 걸쳐 폭주기관차처럼 3개의 시즌을 달렸던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드디어 멈췄다. 욕망의 상징인 ‘헤라팰리스’는 붕괴됐고 악인들은 파멸했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사랑을 받고 자란 2세들은 각자의 삶을 살며 자립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펜트하우스’ 주연배우들은 연기하는 내내 이 욕망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천서진과 하은별 모녀, 오윤희와 배로나 모녀를 통해 ‘펜트하우스’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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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소연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저도 웬만하면 천서진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어요. 혹시 천서진을 미워하면 연기에 지장을 줄까봐 그냥 ‘천서진은 천서진’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죠.”

9일 화상으로 만난 김소연은 “천서진 역은 안주하던 내게 도전정신을 심어준 역할”이라면서도 “천서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 입장에서도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당위성을 수긍하지 못할 만큼 극악무도한 악행이 개연성없이 지속됐다는 의미다. 

김소연은 “천서진을 연기하는 김소연이라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서진이 옳다면 김소연도 옳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대본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는 김소연에게 2000년 방송된 ‘이브의 모든 것’의 허영미를 능가하는 악역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허영미는 연기자 김소연의 진가를 보여준 매력적인 악역으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캐릭터다. 그러나 당시 허영미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설득력있는 인물이었다면 천서진은 부와 권력으로 제도와 시스템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고교 시절 라이벌 오윤희(유진)를 트로피로 내리치는 상해를 입힌 뒤 징계 받게 만든 것을 시작으로 같은 아파트 주민인 주단태(엄기준)와 불륜을 저지르고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한다. 딸 은별(최예빈)을 위해 자신이 이사장인 청아예고의 학사업무에 수시로 개입하기도 한다. 폭행 및 살인 사주도 수시로 일어난다. 김소연은 “허영미의 악행은 귀여운 수준이었다”며 “천서진은 어디에도 없는 악녀”라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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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소연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오윤희(유진)를 미는 절벽신 대본을 읽으며 ‘아휴, 주단태(엄기준) 또 이러네’라고 혀를 끌끌 찼는데 막상 범인이 천서진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천서진을 미워하면 안되는데 그때는 너무 밉더라고요. 심적으로 부담됐는지 아무리 식사를 잘 챙겨도 입술이 터지곤 했어요.”   

딸 은별이를 향한 비뚤어진 모성은 천서진이 자신의 악행에 당위성을 불어넣는 장치였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러도 “이건 은별이를 위해서야”라든가 “은별이만 잘되면 돼”라고 자위하는 천서진의 모습은 연민을 넘어 광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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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소연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김소연은 “집에서 모니터할 때마다 은별이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은별아 미안해’라고 말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소연에게 천서진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목소리가 가늘고 성량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어 매회 감정이 널뛰는 천서진 역이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 그가 ‘펜트하우스’에 합류한 건 남편 이상우의 조언 덕분이었다. 이상우는 시즌2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펜트하우스’ 대본을 받은 뒤 고민하던 제게 남편인 이상우씨가 ‘도전이지’라고 해서 귀가 번쩍 뜨였어요. 쉬는 동안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티리온 라니스터의 재판 신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전율했는데 그때 가졌던 연기자로서 도전정신을 불타오르게 했죠.” 

‘펜트하우스’는 사회적인 파장도 상당했다. 가학적이면서 자극적인 연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831건의 민원이 접수되는 등 문제점을 노출했다. 김소연은 “극 중 왕따 등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연기하는 배우들은 ‘실제로 이러면 안돼’라는 마음으로 연기했을 것”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늘 대본을 받을 때마다 ‘과연 내가 연기할 수 있을까, 감정이 안나오면 어쩌지’라고 두려워했어요. 그렇게 한신, 한신, 1년 6개월을 보냈죠.  ‘펜트하우스’는 제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안긴 작품으로 남을 겁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