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빛나는 MZ세대와 빛바랜 막장 중계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7-28 14:01 수정일 2021-07-28 14:03 발행일 2021-07-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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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문화부 차장

스포츠 경기의 묘미는 ‘각본 없는 드라마’ 연출이다. 특히 2020 도쿄 올림픽은 연일 신세대 스타 발굴의 성지가 됐다. 채 영글지 않았다고 여겼던 무명의 젊은 스타들의 반란은 올림픽 중계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고요한 양궁 경기장에 ‘파이팅’을 힘차게 외친 10대 궁사 김제덕, 40살 연상의 백전노장과 당당히 맞선 탁구 스타 신유빈, ‘킹덤: 아신전’의 전지현 자태 못지않은 백발백중 안산, 박태환의 기록을 깬 수영의 황선우까지…. 무엇보다 이들이 기록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축제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 흐뭇하게 만든다. 김제덕은 3관왕 도전에 실패했고 포스트 박태환으로 주목받은 황선우도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아쉽게 7위에 머물렀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메달과 순위 중심 엘리트 체육 교육의 폐해가 서서히 깨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MZ세대 선수들은 취향을 드러내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안산은 걸그룹 마마무의 응원봉인 ‘무봉’ 배지로 ‘덕질’을 인증했다. 신유빈은 방탄소년단, 황선우는 블랙핑크 제니와 있지 예지의 팬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삼은 K팝 그룹과 젊은 스포츠 선수들이 서로 팬임을 밝히며 격려하는 광경은 사뭇 아름다웠다.

젊은이들의 훈훈한 연대를 깨는 것은 어른들의 ‘막장 중계’다. MBC는 개회식부터 타국가를 폄훼하는 듯한 부적절한 자막으로 ‘국가망신’을 자초했고 축구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상대선수를 조롱하는 듯한 자막으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를 ‘레거시 미디어’라고 부른다. ‘레거시’는 ‘과거의 유산’이라는 의미다. 여전히 과거의 관습대로 ‘막장중계’를 일삼는 한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조은별 문화부 차장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