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혐오 용어 피하기 위해 혐오 사이트 공부하는 아이러니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6-24 14:40 수정일 2021-06-24 17:57 발행일 2021-06-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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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최근
조은별 문화부 차장

주말, 한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다 자막의 ‘허버허버’라는 단어에 시선이 쏠렸다. 출연자가 수영을 하다 허우적대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자막이다.

확인해 보니 해당 방송은 약 2년 전 전파를 탔다. 당시만 해도 ‘허버허버’라는 단어는 허우적대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귀엽게 표현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하지만 요즘의 ‘허버허버’는 남성혐오를 뜻하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남초 커뮤니티’ 누리꾼들은 이 단어가 여성이 차려주는 음식을 남성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표현했기에 남성혐오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예로 ‘오조오억’이라는 단어가 있다. 남성의 정자 숫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고백컨대 ‘허버허버’나 ‘오조오억’이 그런 뜻인지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리고 왜 두 단어가 ‘남성혐오’를 의미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비슷한 예로 최근 논란이 됐던 gs25의 손가락 광고, 혐오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했다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코알라 합성 사진 역시 보도를 보고 존재를 알게 됐다. 혐오 사이트를 전혀 이용하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gs25의 광고담당자는 징계를 받았고 구글에서 용량이 크다는 이유로 코알라가 합성된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사용했던 방송사들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한국에서 혐오 사이트 이용은 취업에 제한을 줄 만큼 범죄와 동일시된다. 과거 혐오사이트 이용자의 공무원 임용이 취소된 전력도 있다. 아마도 논란이 됐던 일련의 사건들도 담당자의 ‘무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혐오사이트 용어들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혐오사이트를 접속하면 범죄고 모르면 질타를 받는 아이러니. 과거 신신애가 불렀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조은별 문화부 차장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