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좀 느려도 괜찮아요, 기억다방 이니깐요

이원옥 명예기자
입력일 2021-06-17 13:45 수정일 2021-06-17 13:47 발행일 2021-06-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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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입점<BR>치매초기·인지장애 어르신도 오늘은 바리스타
사진금천구제공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기억다방을 찾아 이정례 바리스타에게 차주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천구)

“20년간 누워 살다시피 했지요. 62세에 치매검사를 받았고 그때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이렇게 말도 못했어요.”

금천구 독산1동주민센터 7층 치매안심센터,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고흐 그림이 가득한 벽면과 묵직한 원목 탁자·의자가 눈길을 끈다.

그 안쪽, 이정례(70·시흥1동)씨가 뇌건강증진실에서 검사를 받고 온 주민들에게 음료 주문을 받는다. 초기 치매나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노년층이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기억다방’이다. ‘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그간 치매 관련 행사장 등에서 이동형으로 운영해 왔는데 금천구는 지난달 치매안심센터 로비에 고정형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행사가 어려워지면서 대안을 찾던 차에 앞선 실험을 자처했다. 2018년 치매안심센터 대수선을 하면서 치매가족들을 위한 가족카페를 구상했다가 무산됐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박지영 총괄팀장은 “치매가족들은 하루하루가 고달픈데 마음 편히 쉴 곳도 없다”며 “어르신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기다리면서 쉬어가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배수시설을 설치하고 다치기 쉬운 노인들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원목 탁자·의자를 찾아 경기도 남양주까지 방문도 했다.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어 기억다방 문을 열때까지 실질적인 준비는 2개월에 불과했다.

실제 “어서오세요 어르신, 뭘 드릴까요?”라며 대화를 시작한 이정례 바리스타는 9년째 센터에서 작업치료를 받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탄하게 주문을 받는다.

주문 내용을 한번 더 확인하고 앉아서 기다려달라 권한 뒤 기계를 작동한다. 손이 빠르진 않지만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막힐 경우 “선생님~”을 호출하면 박 팀장이나 신 치료사가 손길을 내민다. 이씨는 “코로나로 계속 집에만 있느라 ‘한번 해볼거냐’는 얘기를 듣자마자 ‘무조건 하겠다’고 뛰어나왔다”며 “푸념도 들어주고 내 얘기도 들려주면서 재미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당 1만원씩 활동비보다 ‘출근’ 자체가 그에게 활력이 된다. 커피 모과차 등 5개로 단출한 메뉴로, 기억다방이 경증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노년층을 위한 일터라는 설명도 내걸었다.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올 수도,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지적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이해해 달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금천구는 기억다방이 노년층 일상·경제생활을 돕는 동시에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확대할 방침이며, 기억미술관도 함께 운영, 인지능력 향상을 돕고 보다 편안한 공간으로 꾸며갈 계획이다.

이원옥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