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전세계 신규확진 절반은 인도… 백신만이 희망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5-24 07:20 수정일 2021-06-12 10:46 발행일 2021-05-24 11면
인쇄아이콘
[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하) 백신 없는 백신 수출국

인도 수도 뉴델리의 코로나19 임시 병동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한 의료진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AFP=연합)

모든 사례가 쿰브멜라 축제 때문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 급증세는 축제 일정과 일치한다.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고자 하는 위정자들의 말과 행동에 큰 괴리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이번 감염자 폭증 사태는 인도의 의료 인프라와 공공보건시스템의 열악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인도의 한 의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원래도 엉망이었지만, 중상층과 상류층이 이를 이번에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한 병원 관계자들이 백신을 옮기고 있다. 사진=Mint

인도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아플 때 민간병원을 찾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의사를 만나기도 힘든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건강보험이나 취약계층 의료지원 사업 확대 공약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모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의료진이나 병원 수가 턱없이 부족해 실효성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여당은 5월 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코로나 폭증으로 분노한 인도 국민들이 모디 총리를 심판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로서 한때 지지율 80%를 넘던 모디 총리는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우익 BJP(인도인민당)는 서벵골, 케랄라, 아쌈 등 5개 주에서 치른 지방의회 선거 개표 결과 3개 주에서 패했다. 특히 최대 접전지였던 서벵골주에서 전체 292석 중 70여 석을 얻는 데 그쳐 210여 석을 얻은 중도좌파정당인 TMC에 완패했다. BJP가 134~160석을 가져갈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집권 기간 7년차를 맞은 지금이 모디 총리에게 정치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인도 웨스트벵갈 지방 선거에 투표를 하기 위해 대기중인 유권자들. 사진=Hindustan Times

2014년 집권한 모디 총리는 강력한 힌두 민족주의 정책을 바탕으로 2019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왔다. 지난해 5월 지지율 83%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내내 70%대를 유지했다. 인도 인구의 80%에 달하는 힌두교도들이 모디 총리의 든든한 집권 기반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모디 총리의 지지율은 집권 후 최저인 67%를 기록했다. 인도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지난 1일 처음으로 40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신규 확진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다. 지난 2월 16일에 9121명으로 저점을 찍은 지 두 달 반 만에 신규 확진자가 44배 넘게 불어났다. 하루 사망자도 3728명에 달했다.

지난 6년간 인도 민간과 공공을 합친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은 3.6%에 그쳤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이다. 브라질은 9.2%, 남아공은 8.1%, 러시아는 5.3%, 중국은 5%다.

이는 OECD 평균 GDP 대비 경상의료비에 비해서도 한참 낮다. 2018년 미국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16.9%, 독일은 11.2%, 한국은 7.6%다. 한편 스리랑카(3.76%)와 태국(3.79%)과 같이 작은 인구의 국가도 인도보다 경상의료비 지출이 많다.

현재 인도는 인구 1만 명당 8.5개의 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는 8명으로 의료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도에는 지난해 코로나19 2차 유행을 대비할 목적의 특별 위원회가 여러 개 설립됐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산소와 병상, 그리고 치료제가 부족한 이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헤시 자가드 전 마하라슈트라주 보건장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1차 유행이 끝나갈 즈음에 이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2차 유행 대비에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인도에서 자체 생산 가능한 의료용 산소와 렘데시비르 등 치료제의 남은 물량을 확인하고 생산을 늘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고 성토한다.

한편 인도 남부 케랄라주는 2차 유행에 미리 대비했다. 케랄라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파타후딘 박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미리 준비한 덕에 주 내에 산소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케랄라주는 렘데시비르와 토실리주맙 등 치료제도 미리 확보했고 확진자 수가 급증할 것을 대비해 준비 체계를 미리 만들어 놨다. 자가드 전 마하슈트라주 보건장관은 “다른 주들도 케랄라주처럼 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인도 케랄라주는 성 평등 수준 및 소득이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평균수명도 75세가 넘으며 문맹률은 6%로 매우 낮아 인도 내에서도 선진화된 지역이다. 인도 공산당이 공산당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선거로 집권(1957년)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 뒤로도 공산당이 단골로 집권하는 지역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쿰브멜라 기간 동안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 되었다. 사진=Mint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낙후된 인도 전역에 노숙자들이 가득하던 1990년대에 케랄라 주는 유일하게 걸인이 전혀 없던 곳이다. 건강보험이 완비된 지역이기도 했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야 센 교수는 케랄라 지역을 저개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그리고 복지를 조화롭게 이룬 모범사례로 평가했다. 그는 케랄라 모델에 영감을 받고는 파키스탄의 마흐붑 울하크 교수와 함께 유엔개발위원회(UNDP)가 매년 발표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인 인간개발지수(HDI)를 개발했다.

3차 유행으로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코로나로 인해 인도는 시간에 쫓기고 있다. 변이를 확인하려면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현재 인도는 전체 샘플의 1% 가량의 유전체 만을 분석하고 있다.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로, 질병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도 정부가 선택한 것이 백신 접종이었다. 인도의 현재 상황은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 망가진 공공의료 시스템을 복구시킬 실질적 방안은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료 시스템에도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급격히 늘어나는 다른 주와는 달리 마하슈트라는 강력한 통제로 감염자가 줄어들고 있다. 사진=Mint

인도 정부는 당초 7월까지 3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선거가 급한 인도 정부는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정부가 확보한 물량에 비해 당장 접종할 수 있는 백신 분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도 정부가 45세 이상 인구 백신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6억 1500만 도스가 필요하다. 6억 2200만 명의 18세 이상 44세 이하 인구를 접종하기 위해선 추가로 12억 도스가 필요하다.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백신 수출은 중단한 상태다.

인도 정부는 백신 제조업체인 바이오로지컬 E(Biological E)와 하프킨 인스티튜트(Haffkine Institute)가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세계 최대 백신 제조업체인 인도 세럼연구소(SII)에 6억 900만 달러(6852억원) 규모의 신용지원을 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미리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왔다. 실제로 백신 생산량을 늘리려면 수개월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때까지 수백만 명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백신 최대 생산국이라고 알려진 인도가 백신과 치료제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현실이 역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 사태는 인도 연방정부와 주 정부 모두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경험이 되어야 하고, 인도 정부는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인도가 앞으로 싸울 마지막 팬데믹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광신적인 종교와 결합된 정치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많은 인도 국민들은 똑똑하게 목격했다. 코로나 이후의 인도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국제전문 객원기자 speck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