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코로나19 백신 최대 생산국'의 비명… 방심이 부른 아비규환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5-17 07:20 수정일 2021-06-12 10:47 발행일 2021-05-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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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쿰브 멜라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있다.(EPA=연합뉴스)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고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온갖 첨단기술들이 발달했지만 신종 감염병 대응은 여전히 쉽지않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됨에 따라 전 세계는 머지않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되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넘은 현재, 전세계 코로나19 백신은 3억건 이상 접종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백신 접종 사례다.

 

백신의 주요 생산국인 인도의 백신 1차 접종자 수는 1억 3900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0.2%에 이른다. 2차 접종자 수는 3900만명으로 2.9% 정도다. 

 

인도 보건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하루 사망자 수가 14일(현지시각) 오전 기준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34만 3144명에 달했다. 이에 따라 인도의 누적 확진자 수는 2405만명을 기록했다. 누적 사망자는 26만 2317명이다. 지난주에만 신규 확진 140만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1만 6000명을 넘었다. 

 

병원과 화장터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인도의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다. 무엇이 이런 엄청난 상황을 만들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방심’이었다. 

 

 

코로나 위기에서도 쿰브 멜라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있다. 사진=Mint

 

 

인도는 올해 초 만해도 무서운 기세로 확산하는 코로나19의 2차 유행을 막기 위해 힘껏 싸웠다. 지난해 9월을 정점으로 감염이 크게 줄어 올 2월 1일에는 1일 감염자가 1만명 이하로 줄어드는 성과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미 집단 면역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보도가 나올 정도 코로나 극복에 성공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지난 1월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선언하고 같은 달 28일 연설에서 “인도는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통제한 국가”라고 자평했다. 이에 따라 모든 공공장소가 문을 열었다. 이후 사람들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가 만든 과학자 자문그룹은 지난 3월 초 정부에 “전염성이 더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모디 총리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성대한 결혼식이 매일 열렸고, 사람들은 집에서도 밤 늦게까지 지인들을 모아 신나는 파티를 즐겼다.

 

3월과 4월에 각종 축제와 행사가 도처에서 열렸다. 지난 1년간 억제된 욕망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코로나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로 돌아갔다. 이런 분위기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었다. 

 

웨스트벵갈 지방 선거 캠페인 기간 중 모디 인도총리는 마스크를 거의 착용하지 않고 연설에 임했다. 사진=India Express

 

 

같은 시기에 각지에서 행해지던 선거 집회는 이러한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이미 감염이 확산되던 4월 중순에 열린 정치 집회에서 모디 총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코로나 이후 처음”이라며 코로나가 자신의 리더쉽에 의해 극복되고 있으며 이 리더쉽을 지키기 위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이 정치집회에서도 참가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모디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당부하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선거 유세 현장을 돌았다. 몇몇 장관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선거 캠페인을 벌이며 혼란을 초래하는 메시지도 쏟아냈다. 

 

많은 보건 종사자들과 시민들이 뉴스를 보면서 불안해했던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인도 미디어에서는 연일 이러한 안이함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며 감염 확대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모디 총리가 섣불리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선언한 이유는 지방선거를 앞뒀기 때문이었다. 모디 총리는 4월 한달간 무려 26번의 대규모 유세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서벵골주 유세장에는 노마스크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모디 총리 본인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연설했다.

 

특히 극단 힌두교 세력을 정치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집권 정당 BJP는 힌두교 주요 축제를 자신의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사태를 방치하면서 인도의 비극은 상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 이상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4월 수백만명의 독실한 힌두교인들이 지난해는 금지되었던 힌두교 주요 축제인 ‘쿰브멜라’에 참가하려 히말라야 하리드와르에 모였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슈퍼 전파’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두려움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인도의학협회에서는 공식 성명을 통해 “모디 총리가 주요 지지층인 힌두교도들의 눈치를 보느라 방역을 포기했다”며 비판에 나섰다. 나브잣 다히야 부회장은 “모디 총리가 코로나19 확산에 책임이 있는 ‘슈퍼 전파자’ ”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거에 ‘올인’하느라 방역에 소홀했던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모디 총리가 힌두교도들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방치한 쿰브멜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쿰브(Kumbh, 주전자 또는 항아리)와 멜라(Mela,  모임 혹은 집회)의 합성어다. 

 

케랄라주에서 승리한 인도 공산당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다.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사진=Kerala News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로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또 신화에 나오는 사라스바티강이 만나는 고장 알라하바드(Allahabad)를 중심으로 하리드와르(Haridwar), 우자인(Ujjain), 나시크(Nashik) 등 네 곳을 돌면서 열린다. 축제기간 중에는 수백만명이 참여해 성스러운 목욕 의식을 치른다.

 

이 축제의 기원은 ‘우유 바다 휘젓기(Churning of the Ocean of Milk)’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랜 옛날 신들(데바)이 악마들(아수라)과 싸우던 도중 영생의 약으로 알려진 암리타(Amrita, 감로수)를 얻기 위해 절 대신 비슈누에게 찾아가 청했다. 이에 비슈누는 아수라와 함께 우유 바다를 휘저어 만들어진 감로수를 나눠주겠다고 약속했고, 신들과 아수라는 함께 천년이나 우유 바다를 저었다.

 

마침내 우유 바다에서 암리타가 만들어져 항아리에 가득 차게 되자 신과 아수라 사이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 싸움은 12일 밤낮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비슈누가 항아리를 가지고 날아가다가 암리타 네 방울을 갠지스강의 하르드와르, 고다바리강의 나시크, 시프라강의 우자인에 떨어뜨렸다. 인도인들은 신비한 영약이 떨어진 신성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이 물로 몸을 씻으면 과거의 죄와 사악함을 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쿰브멜라는 암리타가 떨어진 네 지역에서 3년마다 돌아가며 진행된다. 하지만 세 강이 만나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 알라하바드에서 열리는 행사가 가장 규모가 크다. 때문에 보통 쿰브멜라라고 하면 바로 12년마다 알라하바드에서 열리는 푸르나 쿰브멜라(Purna Kumbh Mela)를 가리킨다. 알라하바드에서는 144년마다 열리는 마하 쿰브멜라(Maha Kumbh Mela)가 열리기도 한다.

 

인도의 힌두교인들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쿰브멜라(Kumbh Mela)에 성스러운 강을 찾아가 목욕을 하고 죄를 씻어낸다. 성지를 향한 순례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목욕 의식을 치르고 설법을 듣고 명상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속죄와 축복의 기회이자 현세의 괴로움을 씻고 피안으로 건너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기기에 쿰브 멜라는 힌두교에서 매우 중대한 축제이자 의례다.

 

델리의 한 병원 앞에서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망한 환자를 끌어안고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Times of India

 

 

이 축제는 보통 6주 동안 계속된다. 이때가 되면 신분과 상관없이 세계 각국의 힌두교인들이 알라하바드로 몰려든다. 행사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도 찾는다. 축제 기간에 행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는 점성술사가 별의 위치를 보고 정하는 ‘상서로운 목욕의 날’이다. 이날에는 수백만명이 넘는 힌두교도들이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과거의 죄를 씻어 내는 의식을 치른다.

 

여자들은 사리를 입은 채 물 속으로 들어가고, 남자들은 옷을 벗고 강물에 몸을 적신다. 밤이 되면 얇은 종이 잔에 촛불을 넣고 강물에 띄워 보내는 의식이 행해지며 목욕 도중에 강물을 떠서 마신다. 이처럼 갠지스 강물은 힌두교도에게는 가장 신성한 물로 여겨진다. 때문에 힌두교들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소원이다. 죽어서도 어머니의 강인 갠지스강에 뿌려지기를 원한다.

 

가장 최근에 열린 마하 쿰브 멜라는 2013년에 개최됐다. 이때 약 1억명의 순례자들이 축제에 참가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행사로 알려지게 됐다.

 

축제 기간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기 때문에 각종 사고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1989년 행사가 절정이었을 때 하루에만 1500만명이 몰려들었다. 2001년에는 42일간 총 2500만명, 2007년에는 45일간 총 5000만명이 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결국 이는 사고로 이어져 1820년에 430명, 1954년에 300여명이 죽었고 1989년에는 500여명이 인파에 압사했다.

 

쿰브 멜라 축제의 주요 행사인 목욕의 날 행사가 벌어진 지난 4월 12일. 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신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갠지스강에 들어갔다. 그동안 심상치 않았던 코로나 확진 추세는 이날 16만 8000건이 기록되었다. 이로써 인도는 브라질을 제치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많은 감염자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축제 초기부터 쿰브멜라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보건 전문가들은 지난 3월 초 정부에 새롭고 더 전염성이 강한 변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도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 수백만명이 축제에 모이도록 허용한 것도 신중하지 못했다고 재차 경고했다.

 

2월부터 시작된 쿰브 멜라 순례자들이 복귀하기 시작한 지난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우타라칸드 주에서 코로나19 감염 사례는 557건, 축제 마지막 주인 지난 4월 25일에서 5월 1일 사이에는 3만 8581건으로 급증했다. 

 

권기철 객원기자 speck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