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까마귀만도 못한 사람

정운일 명예기자
입력일 2021-05-06 15:42 수정일 2021-05-06 15:44 발행일 2021-05-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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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정운일기자
정운일 명예기자

장수 시대의 대명사인 김형석 전 연세대 명예교수는 80대 중반까지는 남성성을 유지한다고 하며, 혼자 되면 재혼도 하고 연애도 하라고 충고한다. 나이 들수록 더 젊고 활기차게 살라는 뜻일게다. 그런데 노인들은 재혼과 연애를 하고 싶어도 자녀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늙은이가 주책없다고, 남 보기 창피하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화한다. 당사자인 부모의 고독과 외로움, 심리적 불안, 허탈감 등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재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반대로 혼인신고 하지 않고 살던 부인이 병원에서 병수발할 때는 자식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죽고 나면 나이 든 부인은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겨나야 하니 한심한 일이다. 법적으로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더라도 옆에서 보살펴 준 사람에게 상속권을 주도록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자식도 주고받는 관계로 법제화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대학교수는 부모가 몇 살까지 살면 좋은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의 수재들이 모였다는 학교에서 62세가 적당하고 한다. 수준이 낮은 대학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연령이 높아 진다고 한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부모가 일찍 죽기를 바란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나이에 죽으면 정년퇴임해 재산도 쓰지 않아 상속도 받을 수 있고 부모에 대해 지출하지 않아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에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하여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오늘날 요양원은 현대식 고령장이라고 한다.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으려고 산이 아닌 요양원에 맡기고 찾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양보호사 실습할 때 요양원에서 가슴 뭉클하게 경험한 일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노인 한 분은 오늘 딸이 온다고 하루종일 현관문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고,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았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집에 가서 가족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찾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다 양로원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다. 죽었다고 가족에게 연락하면 와서 눈물을 훔치다 시신을 거두는 것이 전부이다. 시신을 거두는 것을 죽은 자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을 때 찾아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다.

까마귀는 자기를 길러준 늙은 어미에게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상속받기 위해 부모가 62세에 죽기를 원한다니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인가 한심하다. 옛날의 효는 불가능한 일을 해서 병든 부모를 살리는 것이라 했지만, 요즘은 전화라도 자주 해서 부모님 마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라고 생각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5월 가정의 달이다.

정운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