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유고’ 후폭풍 거셀 듯 … ‘그린벨트 해제’ 등 정부 압박 방어 힘들 수도

표진수 기자
입력일 2020-07-10 09:28 수정일 2020-07-10 09:33 발행일 2020-07-1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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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시신 찾은 경찰<YONHAP NO-0515>
10일 새벽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성북구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경찰이 박 시장의 시신을 수습해 나오고 있다. (연합)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0시1분 경 서울 성북동 숙정문 인근 성곽 옆 산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의 시신은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으로 안치되었으며, 경찰은 부검 등을 통해 보다 정확한 사인 등을 규명할 예정이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코로나19 상황이 무색하게 많은 이들이 몰리고 있다. SNS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는 당분한 부시장 대행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맞서 제 목소리를 내 왔던 박 시장의 빈 자리가 워낙 커, 앞으로 어떻게 시정이 꾸려질 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극단적 선택, 왜?

박 시장은 최근 시장실에서 근무하던 전직 비서 A씨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8일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고소인 조사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주기 어렵다면서도,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이 접수된 사실은 확인해 주었다. A씨는 고소장에서 박 시장이 메신저로 부적절한 내용을 보내왔으며, 박 시장으로부터 직접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이번 고소 건과 관련한 경찰 수사는 곧바로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라,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박 시장이 평생 일궈온 진보적 가치와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이번 고소 건으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란 불안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등 유명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높은 도덕적 잣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있었다.

특히 박 시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국민들의 기대 또한 높을 수 밖에 없고, 더욱이 차기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여권 후보였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쏟아질 비판과 비난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 박원순 시장의 치열했던 삶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제도권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다.

당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초반만 해도 큰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전격적인 양보로 단일화에 성공함으로써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본 선거에서도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민선 시장이 됐다.

박 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큰 표 차로 앞서며 재선에 성공했다. 정몽준 후보를 이김으로써 이때부터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고 최근 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5위권에 드는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여 왔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 합의 모습<YONHAP NO-1344>
지난 2011년 8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한 식당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 모습. (연합)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도전에 나섰지만, 저조한 당내 지지율 등의 한계를 드러내며 결국 중도에 도전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3선에 성공해 최장기 서울 시장이라는 명예를 거머쥐게 됐다.

여당인 민주당 당원이면서도 박 시장은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중앙정부가 머뭇거릴 때 긴급재난지원금 지금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결국 실행에 이르도록 했고, 정부의 강남 그린벨트 완화를 핵심으로 한 부동산 정책에도 기자회견까지 열며 반대하는 등 ‘정치’ 보다는 ‘원칙’에 입각한 시정을 펼쳐왔다.

◇ 박원순 유고가 불러올 후폭풍들

박 시장은 그 동안 최초의 3선 서울시장에 차기 대권 주자라는 명성을 업고, 사안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 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는 물론 민주당 정부에 들어와서도 소신과 원칙을 앞세워 중앙정부의 비합리적인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 박원순 시장이 사라짐에 따라 적지 않은 부분에서 서울시의 힘이 떨어지고, 결국 중앙정부의 입김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주목을 끄는 것은, 박 시장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던 서울 그린벨트 문제와 재건축 규제 등 부동산 이슈다. 중앙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그린벨트 해제 조치를 미리 흘려놓은 상태다. 박 시장은 이에 일부러 기자회견까지 열어 ‘그린 서울’의 비전을 제시하며 맞섰다.

침통한 표정의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YONHAP NO-1591>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향후 계획 등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하지만 박 시장이 없는 서울시가 중앙정부의 예봉을 피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대행체제를 떠안게 된 서정협 부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에서 주요 직책을 두루 경험한 행정 전문가지만, 아무래도 정부와 맞서 정치력을 발휘하기엔 무게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박원순 시장이 평생을 헌신해온 사회적 기업 운동이라든가 청년·취약계층 지원 사업 등도 동력을 잃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이들 사업은 박 시장이 개인적인 염원까지 더해져 추진되어 왔던 정책들이라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 내년 4월 서울 시장 보궐선거 불가피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장 민선 7기 임기는 2022년 6월 30일까지였다. 4년 임기의 절반 가량 밖에 채우지 못한 것이다. 박 시장의 유고로 당분간 서울시장 자리는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대행을 맡게 된다.

후임 서울시장을 뽑는 보궐선거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4월 첫 번째 수요일인 내년 4월 7일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지난 4월 여성 공무원 성 추행 건으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후임 선거도 함께 치러지게 됐다.

여기에 2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300만원의 벌금을 받고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중인 김경수 경남지사도 재판 결과에 따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표진수 기자 vyvy@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