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진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졸속 우려… 기존 세일과 할인율 큰 차이 없어

김보라 기자
입력일 2015-09-23 16:52 수정일 2015-09-23 18:55 발행일 2015-09-2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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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업계가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개최한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모습.(연합)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계가 다음 달 정부 방침에 따라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할인 행사를 열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돼 내수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2일 10월 1∼14일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대형유통업체 2만6000여곳이 참여해 업체별로 최대 50∼70% 할인율이 적용되는 사상 최대 규모 할인행사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자세한 할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유통업계가 하는 추석 전후로 하는 세일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백화점 업계는 추석 연휴를 전후해 가을 세일을 진행한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이달 25일부터 10월 18일까지, 신세계백화점은 이달 28일부터 10월 11일까지 세일 행사를 한다. 소비 진작이라는 정부 취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예년보다 세일 시기를 다소 늘렸지만 정작 전반적인 할인율은 기존의 가을 정기세일과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대형마트의 경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한다는 방침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할인 계획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서 행사를 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일정과 품목, 할인율은 미정”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10월 5∼7일 가을신상품 11개 대표상품을 최대 50% 할인할 예정이다. G마켓은 10월 2∼11일 롯데백화점, 현대H몰 등 G마켓에 입점해 있는 9개 파트너사와 함께 할인 행사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온라인 쇼핑몰이 정기적으로 하는 할인 이벤트와 할인율이 큰 차이가 없다.

온라인 쇼핑몰 관계자는 “구체적인 할인 행사 내용을 아직 결정한 것이 없다”며 “다른 업체들도 기존에 하던 세일에 이름만 블랙프라이데이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라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국내 대형 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 선물 구입시즌을 앞두고 제조업체가 재고를 떨어내기 위해 직접 세일에 나서 할인 폭이 크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세일행사를 하면 할인율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유통업계는 자체적인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열었지만 실속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백화점은 지난해 자체적인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열면서 고객들이 두 시간 전부터 몰려들어 주변 교통이 마비됐지만 정작 인기상품은 물량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조기품절되는 사태를 겪었다.

온라인쇼핑몰의 경우도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열면서 1만원짜리 쿠폰을 주며 50% 할인이라고 내걸거나 인기상품인 캐나다구스를 36벌, 아이폰6을 64대만 준비하는 등 생색내기용 행사로 고객을 모으는 데만 집중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서는 정부가 별도의 할인금을 지원하거나 소비자에게 바우처를 발행하는 등의 수단을 내놓지 않고 세일 행사만 강조하면 오히려 유통회사와 제조회사, 납품업체들 사이에 눈치싸움만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 단체의 한 관계자는 “50∼70% 할인율은 말그대로 정가를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기 때문에 실질 할인율을 잘 따져봐야 한다”며 “며 “업체들이 정가를 높이 책정한 뒤 세일을 크게 해주거나 철 지난 상품을 처분하려는 상술을 또다시 재현할 경우 이번 정책이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bora669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