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White Cube]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62)의 언어는 짙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자국 국회 앞에 서서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논리를 내뱉었다. 폭주하는 전차, 아베 정권에 대한 공습이었다. 연신 타격을 가한 뒤에는 시민들 가슴 속에 ‘성찰’이라는 이름의 나무를 심었다. 일본 언론들은 앞 다퉈 그의 승리를 보도했다. 후두암을 겪고 있는 일본의 한 아티스트가 적나라하게 고발한 일본의 현주소. 사카모토는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일본을 내려다봤다. 그것은 용기였고 변화의 꿈틀거림이었다.
사카모토의 노래는 우리 국민에게도 꽤 친숙하다. 대표곡 ‘레인’이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로렌스’는 우리나라 예능이나 드라마에도 자주 삽입됐다. 들어보면 분명 ‘아~ 이 노래!’라고 무릎을 탁 칠 것이다.
그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조감할 줄 안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사회운동이건, 음악이건. 청년시절 자신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카모토를 알기 위해선 1980년대의 ‘YMO(Yellow Magic Orchestra)’부터 파헤쳐야 한다. 키보드와 서브보컬이었던 사카모토, 베이스와 키보드 담당이었던 호소노 하로오미, 드럼과 키보드에 메인보컬이었던 유키히로 다카하시로 구성된 3인조 전자음악 밴드. YMO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당대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YMO가 ‘코스믹서핑(Cosmic Surfin)’을 틀자 앉아있던 미국인들이 무대 앞으로 우르르 튀어나갔다. 태평양을 건너 온 세 사람의 무대에 우주에서 유영하듯 춤을 추며 연신 엉덩이를 흔들었다. 당시 일본 같지 않은 일본 감성이 세계 음악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순간이었다. 이후 월드투어 등으로 세계적인 밴드로 거듭나지만 1983년 멤버들은 높아진 인기를 감당하지 못해 YMO는 해체라는 결정을 내린다(1993년 재결성을 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긴 하다).
해체 후에도 사카모토는 사카모토였다. 자유로운 팔방미인이었다. 1984년에는 도쿄에서 우상이었던 고(故) 백남준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두 사람은 아티스트로서 서로 교류하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같은 해에 음악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올스타비디오’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또 이 해에 사카모토는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트리뷰트 투 n.j.p(Tribute to n.j.p)’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1987년에는 영화 ‘마지막 황제’에 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영화 속 음악까지 맡으면서 일본인 최초로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곡상, 아카데미상 작곡상도 수상한다. 1999년 오페라 ‘라이프(LIFE)’를 제작한 이후엔 환경·평화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관련 논문집 ‘비전(非戰)’을 감수하고 숲 만들기 재단인 ‘모어 트리스(MORE TREES)’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백남준을 동경하던 청년은 해를 거듭하면서 어느덧 백발의 ‘코스모폴리탄(범세계주의자)’이 됐다.
지난해엔 안타까운 편지 한 장이 세계인에 전달됐다. 후두암 판정을 받은 사카모토가 모든 예술 작업을 중단하고 치료에 전념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코스모폴리탄 사카모토는 국회 앞에 서서 세계 속의 일본을 말했다. 세계인은 집중했다.
일본사회에 한 차례 폭풍을 일으킨 뒤 지난 7일. 사카모토는 태풍 후의 잔잔한 바다 물결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갑고 소소한 일상의 메시지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사카모토 류이치입니다. 1년 만에 라디오 방송을 위해 마이크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스튜디오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뭐. 네. 근황보고(웃음). 요양 중이었던 1년 동안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구름을 감상 한다든지 했습니다. 당연히 건강에 신경 쓰는 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죠. 그 외에 YMO의 라이브 앨범, 영화 ‘어머니와 살면’ 음악 작업, 자선 협연 싱글에 대한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질병은 하늘에서 준 기회라는 생각이고 이 기회를 빌어 쉬어갈 수 있어서 그 또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다려 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P.S. 후두암도 이겨낸 사카모토 씨 환영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앞으로 우주보다도 더 큰 활동 기대합니다.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