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반스 BBC 서울 특파원이 바라본 한일관계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5-04-29 17:31 수정일 2015-04-29 17:32 발행일 2015-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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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침묵 앞 준엄한 '소녀의 침묵'

취재를 위해 서울 경복궁 근처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쪽으로 향했다. 한국 반일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대사관 자체는 음산한 느낌 자체! 전신주보다도 높은 벽은 거대 성벽을 연상시키고, 빨간 돌기둥은 주변 파란 경찰 버스, 시위대와 명백한 시각적 대조를 이루고. 2중 펜스와 커튼으로 방어막을 친 창문, 곁눈질로 시위자 표정 하나 하나를 감시하는 일본대사관 직원들의 표정들. 전후 70주년을 ‘패전의 아픔’으로, ‘광복의 기쁨’으로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두 국가는 지금도 여전히 마음의 성벽을 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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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아래에는 실제 신발이 놓여져 있다.(사진제공=BBC)

대사관 근처에 한일 관계 관련 전시가 있다던데. 좋아, 그쪽으로 가보자. 전시 이름이 ‘울림(Woolim)’? 무슨 뜻이지. 소리가 울려퍼진다는 의미구나. 근데 왜? 전시 테마가 울림인 이유는 1909년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일본 국가 원수를 사살했던 총성 소리를 의미한단다. 죽을 각오로 방아쇠에 손을 올리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던 독립투사들의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안중근은 방아쇠를 당기기 3일 전 “동쪽 바람 차기도 하나 내 피는 뜨겁구나”라는 글을 적었다고 하네. 일본을 ‘동쪽 바람’이라고 상징했다니. 음 글쎄. 그렇다면 한국 입장에선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차디찬 동쪽바람이 계속 불고 있는 거군.

두 국가의 앙금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의 실책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템플대 도쿄 캠퍼스의 로버트 뒤자릭 현대아시안연구소(ICAS) 소장이 뭐랬더라. 아베 총리가 미국 언론사에 광고를 실어달라고 후원까지 하고 있다던데. 과거 자신들은 ‘위안부’라는 제도가 일체 없었다고. 당시 전 세계에 일반적이었던 매춘 시스템의 일환이었다고. 많은 한국 여성들이 당시 일본 장군이나 현직 공무원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받았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나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보낸 사과 서한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지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하네.

일본 광고
'그래, 우리는 진실을 기억한다(Yes, We remember the facts)'는 제목의 이 광고는 지난 2012년 한국의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씨 등이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와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올린 '당신은 기억하십니까(Do You Remember?)' 광고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광고는 일본은 위안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았으며,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에서 일반적이었던 매춘 시스템의 일환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뒤자릭 소장 말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하다던데? 아베 정권이 1937년 중일전쟁을 멋지게 각색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난징 대학살사건 때 3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무고하게 죽었다고 추산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사망자 수를 2만 명으로 줄이고 있다고 하더군.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사태가 일어났던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단다.

다시 관점을 서울로 돌려서. 아담한 ‘평화의 소녀상’ 밑에는 실제 신발 한 쌍이 있다. 비가 올 때는 진짜 우비를 입고 있다. 추울 때는 진짜 목도리를 착용하고 있다. 반일 시위단체는 날마다 그녀를 옆에서 보살피고 있다. 두 국가가 계속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한 적대감은 계속 될 것이고 그녀는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낮이고 밤이고 끝없이 같은 자리에 묵묵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

 

※이 기사는 스테판 에반스 BBC 서울 특파원이 바라본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