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깨진 무어의 법칙,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영향줄까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5-04-19 16:29 수정일 2015-04-19 17:01 발행일 2015-04-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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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무어

태블릿과 스마트폰 등 새로운 IT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반도체 업계에서 지난 50년간 불변의 진리로 통했던 ‘무어의 법칙’이 깨지고 있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제시한 반도체 발전에 관한 기술 이론이다. 1년 6개월 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배씩 늘어난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이론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이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삼성전자의 ‘황의 법칙’이다. 그동안 무어의 법칙은 ‘저비용, 고효율’ 구조의 반도체 산업 자체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는 스타트업이나 대기업들 사이에서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IT 컨설팅 회사인 인터내셔널비즈니스스트래티지스(IBS)는 2014년 기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최신형 반도체 칩을 디자인하고 테스트하는 데 연간 1억 3200만의 비용이 들고 있다고 집계했다. 이 최신형 반도체란 14나노m 크기의 칩을 쓰는 반도체를 기준으로 한다. 10여 년 전 65나노m의 칩을 쓴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는 연간 1600만 달러의 비용 정도가 들었었다. 약 9%나 비용이 증가한 셈이다.

비용 증가의 원인은 태블릿과 스마트폰 등 최신 소형 기기들에 맞게 칩 공정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형 컴퓨터 칩을 이용한 반도체는 14나노미터 크기로 수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반도체에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설계하는 시간과 비용이 기존 칩에 비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미국의 벤처 투자사들은 반도체 산업에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미국의 리서치업체인 다우존스벤처소스의 자료에 따르면 2004년에 미국 벤처투자자들은 미국 내 62개의 반도체 스타트업 기업들에 투자했다. 그러나 2013년에는 4개, 2014년에는 7개의 스타트업 만이 투자를 받았다. 미 전력업체 이피션트파워컨버전(EPC)의 알렉스 리도우 공동 창립자 겸 CEO는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고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산 비용 대비 약 7.5배 정도의 매출 이익이 있어야 반도체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기준 미국 반도체 스타트업 중 3위였던 타불라(Tabula)의 사례 역시 무어의 법칙이 깨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3년에 설립됐고 최신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주로 인텔의 14나노m 칩을 이용해 5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담긴 최신 반도체들을 생산해 냈다. 그러나 2억 달러 이상의 적자와 투자 유치 실패로 지난달 24일 기업 폐쇄 결정을 내렸다. 타불라의 최고경영자 데니스 세저스는 “반도체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반도체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생산 비용도 점차 늘어나면서 사업 매각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문은 스타트업의 부진이 점차 대기업과 반도체 산업 전반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투자회사 어거스트 캐피탈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혁신의 대부분은 스타트업으로부터 나왔었다”며 “이들의 부재를 반도체 제조 대기업들이 메워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반도체 산업의 부진은 곧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나스닥도 이날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최근 반도체 소재를 실리콘 위주에서 ‘질화갈륨’으로 변화시키는 등 전략을 수정하고 있지만 ‘무어의 법칙’은 깨졌다고 분석했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