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먹통, 기업은 불통, 국민은 고통… '꽉 막힌 대한민국'

이혜미 기자
입력일 2015-02-04 18:31 수정일 2015-02-04 19:10 발행일 2015-02-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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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사건으로 폐쇄적인 기업문화가 비난의 대상이 되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4일 그룹 신년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한항공에 ‘소통위원회’를 만들어 기업문화를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통 부재로 인한 계층간 단절과 상생의 위기는 단지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는 현상이다. 정치, 사회 곳곳에서 불통사회가 된 대한민국을 질타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땅콩회항’ 사건을 계기로 그룹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업문화 쇄신을 위해 소통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소통위원회는 대한항공 각 부문의 내부 인사와 외부인사를 영입해 의견을 수렴할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기업들에게 소통은 큰 화두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CEO,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평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원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전략경영세미나, 산행, 신년 가족 음악회 등을 통해 임직원들과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고 경영진과 직원들이 모여 자유 토론을 진행하는 DSME 열린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효성은 그룹 내에 사내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업문화팀을 따로 둬 임직원들의 소통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려는 기업들의 시도는 의미가 있지만 보여지는 소통이 아닌 조직 안에서 실질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소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호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대한항공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 기업들이 아직도 내부적으로는 하명전달식 소통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인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한항공같은 글로벌 기업이 오너의 권력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은 굉장히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이를 계기로 기업들이 솔선수범해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경영진의 잘못된 명령에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소통 부재 기업문화가 원인”이라며 “개방형 기업문화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소통을 내세우거나 아랫사람들끼리 모여 아무리 소통을 강조해도 이에 대한 경영진의 관심이 없으면 소통을 통해 성과를 내는 것은 어렵다”면서 “위에서부터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기업 문화로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적인 경영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소통 부재의 모습은 과거 우리 사회가 성장과 성과만을 위해 달려오면서 강한 리더십을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리더십이 현재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 불통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소통 부재가 문제다. 취임 이후 줄곧 ‘불통’ 논란에 시달려왔던 박근혜 대통령은 올초 2년만에 가진 기자회견장에서도 소통의 리더십을 보이지 못해 ‘말이 안통하네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지지율은 처음으로 30% 밑으로 추락했다. 수석비서관들과 부처 장관들로부터 받아야 할 업무보고를 서면 보고서로 챙기는 등 나홀로 국정 수행으로 당청, 당정 관계는 원할하지 못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7월 14일 전당대회 이후 단 한 번도 박근혜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하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서는 가치관의 변화와 정보 격차, 대화기술의 부족이 소통을 가로막는다. 토론의 자리에서 자기 말만 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만드는 분위기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어렵다. 신호창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업인, 정치인, 우리 모두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소통을 외치는 상황”이라며 “진정한 소통은 경청하는 자세를 가질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정치나 기업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목표를 향해 강하게 추진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고 또 그런 리더십이 요구됐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치와 경영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도 “우리나라는 정치인 스스로 강한 리더로서 추진력있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21세기 다변화사회에서는 한 명의 지도자가 온 구성원을 이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펼치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대한민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혜미 기자 hm7184@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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