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대출 못해 사업매각··· 악순환 끊을 '해운금융' 절실

이혜미 기자
입력일 2015-02-03 17:43 수정일 2015-02-04 09:00 발행일 2015-02-0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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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미국 LA항 CUT에 접안 중인 현대 ‘싱가포르’호의 모습.(사진=현대상선)

‘해운 금융’, 올해는 업계의 바람대로 정착될 수 있을까? 해운보증기구 출범 소식에 해운업계는 기대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내비치고 있다. 오랜 불황 속에서 정부의 해운 금융 지원 사업들이 하나둘씩 진행되는 모습은 반가운 부분이지만, 업계가 최우선적으로 바래왔던 자금 지원의 유동성 측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아쉽다는 입장이다.3일 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내 해운보증기구가 출범한다. 해운보증기구란 선박금융을 담당하는 금융기관이 손해를 볼 경우 손해분의 일정량을 대신 보전해주는 일종의 보험기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300억 원씩 투입했으며, 1분기 중 정부예산 500억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해운업계는 해운보증기구가 침체기를 겪고 있는 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지난해 출범한 해안금융종합센터와 함께 해양금융의 한 축을 담당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구의 역할이 보증으로 축소되면서 자금 지원의 유동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당초 업계는 선박확보도 중요하지만 운영자금 확보의 어려움을 밝히며 해양금융공사나 선박금융공사 등의 설립을 원했다. 해운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온 정부의 지원이라 반길 일이지만 자금 지원의 유동성을 크게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크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국내 정부의 해운 금융 지원에 대해서는 해외와 비교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금융 기관조차 해운산업과 엇박자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선사는 구매하는 선박 비용의 대부분을 금융에서 대출받기 때문에 항공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채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 기관이 해운업의 이러한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른 업종과 같은 기준으로 신용 등급을 적용해 금융 조달의 어려움이 크다는 설명이다. 

국내 대형 선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 글로벌 선사들의 경우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금융 지원을 통해 회복하고 호황기에 갚아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정착돼있는데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금융자본도 뒷받침되지 않아 계속적으로 사업을 매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선사의 관계자는 “사실 선사입장에서는 비올 때 우산을 뺏어가고 날 밝을 때 우산을 빌려주는 형국”이라며 “해운이 어려운 시기에 국내 금융기관은 조건이 까다롭거나 해운을 대상 지원이 아닌 산업으로 분류해 금융조달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위기를 넘어간 주요 선사들의 경우 정부의 정책금융을 받은 사례가 많았다”며 “국내도 정책금융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라고 말했다.전문가들도 해운 산업은 자본집약적이자 국가의 기반산업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민 한국해양대학교 선박금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8%가 선박을 통해 이동한다”며 “해운산업은 우리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훈 한국선주협회 차장도 “국내 해운사에 대한 정부의 해운 금융 지원은 해외에 비해 크게 부족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해운불황에 빠지자 중국을 비롯한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의 해운 강국들은 정부의 주도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중국은 해운, 조선 산업에 250억 달러를 지원했고 덴마크 정부는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에 수출신용기금 5억 달러를 지원한 데 이어 금융기관에서도 62억 달러의 신용공여를 약속했다. 독일 정부도 하팍 로이드에 18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하는 등 해운산업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해양수산부는 업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금융당국에 해운 금융 지원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엄익환 해양수산부 해운정책부 사무관은 “금융당국의 입장으로는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과 연관성으로 인해 해운산업에만 특정하게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입장”이라며 “해외에 비해 취약한 부분에 대해 금융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엄 사무관은 곧 출범하는 해운보증기구 외에도 수출입은행과 함께 조성한 에코십 펀드나 캠코의 선박은행 역할을 통해 해운업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양수산부는 해운업계에 시장안정 P-CBO(유동화 증권) 지원을 올해 말까지 연장해 1조5000억 정도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해상운임지수 발표와 운임선도거래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해운거래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또 올해 연구용역을 통해 해운산업 장기발전계획(2016년~2020년)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hm7184@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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