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마저?"… 현대家, 파업 돌부리에 전전긍긍

최상진 기자
입력일 2014-09-29 11:58 수정일 2014-09-29 19:36 발행일 2014-09-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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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2009년 제3대 위원장으로 당선, 이후 4대를 강성집행부에 내줬다가, 지난해 5대 집행부로 다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동안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당시 이 지부장이 비교했던 사업장이 지척(咫尺)의 현대중공업이다. 노조운영을 어디에 방점을 찍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현대중공업에 비해 뒤처진 10년 성과를 되찾아 오라는 조합원들의 준엄한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해마다 강경일변도의 투쟁만 했던 현대차와 달리 15년 연속(3대 위원장 당시 기준) 무분규를 기록하던 현대중공업의 조합원들이 현대차보다 10년 앞선 성과물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과 조합원들의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바로 ‘롤 모델‘이었다. 이같은 결실로 이 위부장이 당선된 이후 3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지금은 현대중공업 노조와 조합원들이 현대차를 ‘롤 모델’로 여길 만큼 완전히 역전됐다. 이를 누구의 성과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조선과 자동차의 경기 사이클, 경영진의 능력 등 갖가지 변수가 작용했을 수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각 계열사 노조가 최근 수입차 열풍, 원고-엔저, 수주 감소, 중국기업 시장 점령 등으로 국내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노조의 파업까지 잇따르며 삼중고를 겪는 모습에 재계의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세계5대 자동차메이커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바탕이 무분규다. 파업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의 제품을 누가 믿고 사겠는가. 미국 자동차업체의 몰락 이유도 ‘파업’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시 이 위원장은 미국 디트로이트 도심이 일순간 폐허로 전락한 모습을 목격하고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1998년 외환위기로 현대차 근로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당하던 때가 오브-랩 되더라”는 내용을 노조신문 방문기에 적은바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임금삭감 등 비상경영 절차와 관련해 노조의 극심한 반발에 시달리다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를 맞은 바 있다. 재계에서는 “당시 노조가 한 발짝만 양보해 회사와 노사상생의 대타협을 했더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파산’이었다”며 “뒤늦게 후회하다가 감축경영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분석한다.

최근 국내 산업의 기둥 역할을 하는 전자·자동차·조선업계가 침체기를 겪으며 이 같은 우려는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특히 상반기 영업이익 하락을 막지 못한 기업 노조들이 잇따라 부분파업에 돌입하거나 파업을 위한 조합원 투표를 진행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29일 오후 3시부터 23차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윤갑한 사장과 이경훈 노조위원장 등 교섭대표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3차 교섭을 가졌다. 지난 2일에 진행된 20차 협상에서 노사는 일정부분 합의를 이뤄내기도 했으나 현 집행부와 경쟁구도에 있는 강경파의 반발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간 바 있다. 이후 노조는 22일~26일간 2~4시간씩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사측은 이 기간 동안 “4만2200여 대의 차량 생산에 차질을 빚어 약 9100억원의 매출차질이 빚어졌다”고 밝혔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 파업여부를 두고 1만8000명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역시 조합원들 사이에서 파업의 당위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노조가 당초 26일 오후 마감하려던 투표시한을 무기한 연장한 것이 결국 조합원의 투표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경영진 교체와 일정수준의 급여인상안까지 나왔는데 너무 과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의견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저조한 투표율을 두고 노조 내부에서도 파업의 부당함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특히 2분기 실적공개 이후 투입된 ‘현대맨’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에 대한 내부의 기대감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울산 본사에 상주하고 있는 권오갑 사장은 출근길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 16일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취임사 중 “노(勞)와 사(社)라는 편가르기를 그만두자. 오직 현대중공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로 힘을 모아 다시 시작해보자”며 “고(故) 정주영 창업자님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길 바란다”는 말도 파업에 부정적인 조합원들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진 기자 sangjin845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