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포스트코로나를 향한 공연계 발걸음…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8-11 17:00 수정일 2020-08-11 17:38 발행일 2020-08-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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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작소]
스테이지 무비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 시사회현장(사진제공=예술의전당)

스크린으로 간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 생계지원 기부금 마련을 위한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8월 29,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로 고사 직전에 이른 연극·뮤지컬을 비롯한 공연계가 저마다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객과의 ‘대면’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인 공연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 ‘비대면’ 등으로 지난한 시기를 보낸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시도들을 시작했다.

◇스크린으로 간 연극,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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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를 제작한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 시사회현장(사진제공=예술의전당)

2013년부터 ‘싹온스크린’(SAC on Screen)이라는 공연 영상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예술의전당은 ‘늙은 부부이야기’를 시작으로 ‘스테이지 무비’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 첫발이 19일 개봉을 앞둔 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지난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위성신 작·연출, 김명곤·차유경 주연의 동명연극을 바탕으로 한다.

연극을 위한 희곡을 영화적 시나리오로 변주하거나 공연 장면만을 편집한 것이 아닌, 공연 현장과 영화적 요소를 버무린 장르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영국 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 )의 NT라이브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영상, 중국의 오페라 영화 등 공연영상화 작업은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다”며 1억 2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인 ‘늙은 부부이야기’를 통해 “공공극장으로서 공연영상화의 퀄리티를 높이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론칭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공연실황이 다양한 카메리워크를 담는다면 스테이지 무비는 소비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도 입히고 편집도 하고 외부 영상을 촬영해 삽입하는 등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차별점을 부연했다.

배우 김명곤은 “연극에서도 오랜 기간 활동하고 영화로도 나름대로 많은 경험을 했다”며 “늘 아쉬웠던 건 연극계에서는 영상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부족했고 영화계는 연극이나 공연예술에 대한 기초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서로 만나고 충돌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재밌는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고 ‘늙은 부부이야기’ 론칭 의미를 짚었다.

더불어 새로운 영상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명곤은 “연극과 영상이 어디까지 만날 수 있는지 ‘늙은 부부이야기’가 첫출발이 된 것 같다. 공연을 영상화할 때는 감독부터 촬영, 녹음 등 일반 영화 전문가들과는 다른 공연영상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위성신 연출은 “전세계가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공연 역시 1회성에서 벗어나 기록과 공유 문화로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장성과 속도감”을 난제로 꼽았다. 그는 스테이지 무비에 대해 “공연기록과 공유의 의미를 비롯해 영상매체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속도감 조절이 더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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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무비 ‘늙은 부부이야기’ 시사회에 참석한 신태연 감독(왼쪽부터), 김명곤, 차유경, 위성신 작·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공연·영화와는 차별화되면서도 품질이 보장되는 영상화와 더불어 수익모델로서의 가치, 정확한 관객 타깃팅도 풀어야할 숙제다. 공연의 영상화는 적지 않은 제작비를 투자해야 한다. 예술의전당 공연실황 콘텐츠인 싹온스크린의 경우 회당 1억원을 들여 제작하고 있고 유인택 사장이 예로 든 영국 국립극장의 공연 영상 콘텐츠인 NT라이브의 편당 순제작비는 4억원(기자재, 인건비 등 제외, 이하 출처 지난해 영국 국립극장 발표 자료)에 이른다. 1년에 10편 정도를 촬영해 전세계로 배급·유통시키고 있지만 1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유인택 사장은 “상업영화처럼 와이드릴리즈 흥행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사회공헌사업으로 소외계층, 전국 230개 지자체 문화원, 32개 해외문화원 등에서 상영하는 공공목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며 “IPTV 등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익이 나면 어렵게 대학로에서 연극하고 있는 창작자들, 극단 쪽에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선순환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실천적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에 따르면 19일 개봉될 ‘늙은 부부이야기’를 시작으로 오페라 ‘춘향2020’ 등 다양한 공연예술이 스테이지 무비로 촬영될 예정이다.

더불어 타깃팅은 ‘스테이지 무비’로 제작할 작품 선택, 마케팅 및 홍보 방향 등에 영향을 미친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노년층을 겨냥했지만 그들이 영화관을 찾아 연극 영상을 볼 것인지, 애초 스테이지 무비가 노년층에 적합한 장르인지, 실버 문제는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 사회 전반의 문제임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현재의 영상구성이 공연 및 영화 관객들에게 어떤 차별적인 매력으로 다가갈 것인지 등을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6년만에 한 자리에 모인 대표 뮤지컬 제작사 프로듀서들 ‘쇼 머스트 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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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르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스태프, 배우들을 위한 기금 마련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 포스터(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코로나19로 많은 공연들이 취소됐습니다. 20년 동안 공연되던 저희 프로덕션의 ‘난타’도 6개월 전 극장문을 닫고 재개하지 못하고 있고 올해 공연 예정이던 어린이 뮤지컬 공연도 무산됐죠.”

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르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스태프, 배우들을 위한 기금 마련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자 모인 자리에서 ‘난타’ ‘난쟁이들’ 등의 PMC프로덕션의 송승환 회장은 공연계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공연은 계속 어려울지 모르겠다. 코로나19 극복 후에도 오프라인 공연은 온라인에 밀려 더 나아질 확신이 없다”며 “이후 지속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뮤지컬 공연의 앞날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이제 마련됐다”고 알렸다.

11일 ‘쇼 머스트 고 온’ 기자간담회에는 송승환 회장을 비롯해 신시컴퍼니 박명성, 클립서비스 설도권, 오디컴퍼니 신춘수, EMK뮤지컬 엄홍현, CJ ENM 예주열, 에이콤 윤홍선 등 8명의 프로듀서들과 세종문화회관 김성규 사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무려 16년만이다. 참석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듯 “공연계는 그만큼 절박한 위기에 처했다.”

‘렌트’(8월 23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의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8명의 프듀서가 모인 것은 16년만에 처음”이라며 “뮤지컬 시장과 제작환경을 발전적으로 가꿔나가기 위함이다. 반성할 건 없는지, 자생할 건 없는지, 현재의 제작시스템에서 스스로 거품을 걷어낼 방법은 없는지…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제작시스템의 혁신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뮤지컬 제작시스템은 고질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한회 공연 제작비에 해당하는 스타 배우 한명의 개런티, 선입금돼야 하는 극장 대관료,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제작비, 이로 인한 제작비 돌려막기와 2, 3개월 앞선 티켓예매 시스템 그리고 배우 개런티 미지급 사태, ‘원금보장’을 전제로 한 투자자의 유입 등이 그렇다. 공연 흥행 여부에 따른 리스크는 온전히 제작사의 몫으로 남아 스타 캐스팅, 기형적인 배우 개런티, 배우 및 스태프 페이 미지급 사태와 부조리한 처우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돼 왔다.

박명성 대표는 “제작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올리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들이 불거지곤 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생길 것”이라며 “지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 좋은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진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역할이 업계 선배들의 책임이고 사명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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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르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스태프, 배우들을 위한 기금 마련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을 위해 모인 8인의 프로듀서와 세종문화회관 사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그간 기형적인 제작시스템의 그늘에서 신음했고 설상가상 코로나19라는 난적을 만나 지친 배우 및 공연계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는 “한국프로듀서협회, 뮤지컬협회 중심으로 열정페이 문화를 타파하고 도덕적 잣대가 높아지면 좋겠다”며 “8명의 프로듀서 및 단체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그야 말로 시발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모차르트!’(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제작사 EMK뮤지컬의 엄홍현 대표는 “올 1월부터 투자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투자자들이 전부 떨어져나갔고 투자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드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할 문제다. 지금 당장의 기부 콘서트 한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쳐나갈까가 더 큰 문제”라고 모임의 취지를 전했다.

남경주와 최정원을 비롯해 김준수, 옥주현, 차지연, 마이클리, 아이비, 정선아, 홍지민 등 내로라 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동원되는 ‘쇼 머스트 고 온’은 5억원 모금을 목표로 한다. 500명의 배우, 스태프 등을 선발해 100만원씩의 생계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회계전문가인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기금운영위원회를 조직해 투명하게 운영할 예정이다. 저희도 900만원 정도를 기부했고 여기 모인 여덟 제작사와 몇몇 배우들에게서도 기부를 약속 받았다”며 “사실 모금보다 분배가 더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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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르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스태프, 배우들을 위한 기금 마련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프로듀서들. 왼쪽부터 PMC프러덕션 송승환, 오디컴퍼니 신춘수, EMK뮤지컬 엄홍현, 신시컴퍼니 박명성(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김 사장은 “기금 운영위원회를 운영하고 외부에도 오픈해 심사할 예정이다. 투명하게 하려다 보니 서류가 복잡해지고 지급까지의 시간 길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방법, 세금과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논의돼 다른 장르까지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위기를 극복해 기회로 삼는 모습들 보여주는 것이 포스트코로나의 최고 극복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여정에도 여전히 숙제는 산적해 있다. 두루뭉술한 “고사 직전”이라는 표현이 아닌 정확한 피해 규모에 대한 리서치, 스스로가 걷어내야 할 ‘거품’으로 일컫는 한국 공연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의 정확한 파악,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 8개 제작사나 대극장 뮤지컬 뿐 아니라 중소극장 작품 제작사 및 다른 장르로의 전이 전략,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부터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할 문제까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 정부 및 관련 기관과의 협의 및 공조 방안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송승환 회장은 “앞으로의 문제는 사실 이 8명이 모이기도 쉽지가 않다는 것”이라며 “현재는 어떤 문제부터 의논할 것인가 아젠다를 지금부터 정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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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대에 오르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스태프, 배우들을 위한 기금 마련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세종문화회관 김성규 사장(왼쪽부터)과 클립서비스 설도권, CJ ENM 예주열, 에이콤 윤홍선 프로듀서(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정부에 요청 드린 것도 있고 스스로가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도 있고 극장 및 배우들과 협의할 것도 있어서 여러 가지 아젠다 정하기를 지금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시스템 개선을 위해 극장, 배우들과 협의해야할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하나씩 의논해 나가겠습니다.”

이어 “8명의 프로듀서들은 이후 한국뮤지컬협회 제작분과 프로듀서들, 연극과 뮤지컬 프로듀서들이 모인 한국프로듀서협회 등의 단체들과 연계해 공연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발전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쇼 머스트 고 온’ 추진위원장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배우와 공연업계 종사자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기 위해 8명의 프로듀서와 세종문화회관이 의기투합했다”며 “뮤지컬 생태계 조성, 공연업계 단초를 위한 바람직한 제작환경 만들고 코로나19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16년만에 한 자리에 모인 8명 프로듀서의 의지들이 현안인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오래도록 기형적으로 악순환을 반복하던 뮤지컬 제작시스템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