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폐지 줍는 어르신 손에 색연필… 함께 내일을 그리죠"

전혜인 기자
입력일 2020-07-08 07:00 수정일 2020-07-08 07:00 발행일 2020-07-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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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노인 일자리 만드는 예비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
"폐지수거 어르신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청년과 노년이 공존할 수 있는 회사 목표"
[아립앤위립] 심현보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 (사진제공=아립앤위립)

2000년 고령화사회(고령인구 비율 7% 이상)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17년 뒤인 2017년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율 14% 이상)로 들어섰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5년에는 한국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지만, 아직 노인 일자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립앤위립’은 폐지수거 노인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과 새로운 어르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3년 차 스타트업이다. 2018년 서울시와 고용노동부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바 있다.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개인의 경험을 더해 창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창업 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 하루는 할머니 댁을 찾았는데, 할머니께서 폐지를 줍고 계셨어요. 소일거리로 좋다고 하셨는데, 가족들은 당연히 말렸죠. 그때부터 할머니께서는 일을 그만두셨지만, 폐지를 생계로 삼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 분들께 어떻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어르신 한 분 한 분께 장갑이나 물, 간식 같은 것을 전달하는 활동을 했죠. 그러다 이런 분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고, 기업의 형태로 해결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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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아립앤위립의 굿즈. (사진제공=아립앤위립)

아립앤위립은 제품 제작과 교육 활동 두 가지 부문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젊은 날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될 수 있는 어르신들의 인생 교훈, 삶의 소소한 지혜 등을 담아 만든 굿즈를 ‘인생꿀팁’이라는 브랜드로 선보이고 있다.

“우리 청년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 ‘좋은 직장에 취직해라’ 같은 말은 어른들께 많이 듣고 있잖아요. 물론 좋은 의도가 있는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이죠. 하지만, 가끔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그저 ‘모든 것을 잘했다’, ‘잘하고 있다’라고 격려해주는 게 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추억이 깃든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매개체들을 직접 그리고, 아립앤위립은 이를 통해 창작된 창작물을 활용해 굿즈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포장 작업 역시 어르신들의 몫이다.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리고 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1차 일자리가 창출된다. 창작물은 아립앤위립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구매해 제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다시 제품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2차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어르신들이 폐지를 수거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심 대표의 설명이다.

“폐지를 수거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정말 적거든요. 리어카 한 대를 채워도 1만원을 채 못 받습니다. 어르신들의 노동량을 생각해 보면 최저임금조차 충족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아립앤위립의 일자리는 어르신들에게 일하신 만큼의 대가를 지급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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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립앤위립의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아립앤위립)

아립앤위립은 기업을 상대로 하는 B2B 제품 제작도 시도하고 있다. 올해 4월 SK텔링크의 알뜰폰 브랜드인 SK세븐모바일과 함께 진행한 친환경 패키지 제품이 그것이다. 휴대폰 배송박스와 유심봉투를 친환경 재생지를 사용해 제작하는 한편, 해당 박스 외부와 설명이 담긴 엽서에는 어르신들이 작성하고 그린 글과 그림을 담았다.

아울러 아립앤위립은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자체 제작한 사회적 보드게임 ‘동네 한 바퀴’를 통해 사회적경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폐지 수거를 통해 자원 재활용에 앞장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새로운 형태의 쓸모를 만드는 업사이클을 결합해 학교·기업·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쓸모 프로젝트’라는 업사이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 다섯분의 어르신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계시는데, 정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조금씩 더 마음을 여는 걸 느낄 수가 있었죠. 처음엔 그림 그리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던 분들이 지금은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뿌듯합니다. 다섯 분 모두 독거노인분이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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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제품 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아립앤위립)
심 대표는 업무 가치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창업에 있어서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티고 지속할 수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작은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지고 있는 중심, 그리고 가치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아립앤위립은 심 대표와 제품 디렉팅을 담당하는 팀원, 그리고 파트타이머로 5명의 어르신과 함께하고 있다. 어르신들과의 협의를 거쳐 이달 중으로 이들 중 한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계획이다. 정규직으로 채용된 어르신은 콘텐츠 제작에 더 무게를 둘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청년과 노년이 함께 공존하며 일하는 회사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각자의 직무는 다를지라도 한 공간에서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하며,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는 것이 저와 아립앤위립이 바라는 지향점입니다.”

전혜인 기자 hy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