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연다” 사업 접은 아빠도 세 아이 엄마도 폴리텍대에서 구슬땀

김성서 기자
입력일 2023-05-16 16:49 수정일 2023-05-16 16:49 발행일 2023-05-1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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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텍대, 40세 이상 중장년 대상 ‘신중년특화과정’ 운영…올해 2500여명 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발맞춰 중장년 직업전환 교육훈련 선도 기관 역할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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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신중년특화과정 공조냉동 직종에 참여한 교육생들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사진=김성서 기자)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들던 16일 오후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작업복을 입은 한 무리의 중년들이 한창 용접 실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에어컨 가동을 위한 배관 용접작업을 연습하며 구슬땀을 흘리던 교육생들은 폴리텍대가 운영하는 신중년특화과정에 참석한 교육생들이다.

공조냉동 직종의 교육을 받고 있는 정성호(51)씨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개인 사업을 접고 신중년특화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공조냉동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실기시험 준비에 한창인 그는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고 교수의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에 문을 두드리게 됐다”며 “사설 학원도 있지만 정해진 계획에 따라 좋은 시설에서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 듯하다. 축구에도 전후반전이 있듯, 이제 인생 후반전 제2의 인생을 준비할 때”라며 “저같은 중년들은 많은 고민이 있다. 혼자 고민해 쓰러져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 폴리텍의 문을 두드리면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텍대의 신중년특화과정은 만 40세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3개월 또는 6개월 맞춤형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교육 이후에는 취업을 연계하는데, 올해 35개 폴리텍 캠퍼스에서 2500여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운영하는 공조냉동 직종(그린에너지설비과)과 자동차복원 직종(자동차과)은 올해 상반기 6개월 과정으로 교육생 50명을 모집했다. 모집 당시 경쟁률이 3대 1에 달할 정도로 중장년층이 몰리며 인기가 높았다는 것이 폴리텍대의 설명이다.

취업률도 높다. 지난해 12월 수료한 6개월 과정 교육생의 취업률은 지난 4일 기준 공조냉동 직종 63.0%, 자동차복원 직종 40.0%로 평균 취업률은 54.8%를 기록했다. 일례로 임성춘(60)씨는 기계설비와 시공관리 분야에서 35년 경력을 보유했지만, 직장을 그만 두고 신중년특화과정에 입학했다. 6개월 간 기술교육을 받은뒤 공조냉동산업기사, 배관기능장에 합격한 그는 현재 롯데월드몰타워 에너지센터 기계설비 파트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성희 한국폴리텍Ⅰ대학 학장은 “고령화 추세로 접어들면서 이와 관련한 교육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과정을 열어 중장년을 위한 직업 교육에 나서고 있다”며 “폴리텍대의 우수한 기자재를 활용해 실습을 진행하고, 산업 구조 변화에 발맞춰 중장년층이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공공훈련기관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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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신중년특화과정 자동차복원 직종에서 양연심씨가 실습을 하고 있다.(사진=김성서 기자)

같은 학교 자동차복원 직종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있던 양연심(41)씨는 실습용 자동차 옆에서 차량 연마작업에 한창이었다. 양씨는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어린이집 원장까지 지냈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이사를 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된 경력단절여성이다. 그는 아이와 함께 이동하던 중 차량 고장으로 멈춰서자 ‘차를 알면 아이들을 안심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폴리텍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는 “남편이 과정을 찾아 문을 두드리게 됐는데, 주변에서도 차량 관련 직종을 배운다고 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보여줘 놀랐다”면서 “학원을 통해 비용을 내고 배우는 것 보다는 시설이 잘 갖춰진 학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어 좋은 듯 하다. 생활에 활력이 생기니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는데, 커서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 했다.

양씨는 “처음에는 그저 배워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취업이나 창업에 나서볼까 고민하고 있다. 일이 자신과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집에 있으면 내가 없지만, 일을 하면 내가 있다. 그래서 일이 소중한 듯 하다”며 미소 지었다.

서울정수캠퍼스는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에 발맞춰 신중년특화과정의 학과 개편에 착수한다. 연말까지 개편 작업을 거쳐 자동차복원 직종은 친환경 미래 자동차 분야로, 전기설비시공관리 직종은 IT기술과 융합해 고도화한다. 또 다음달 12일부터는 공조냉동, 자동차복원 직종에서 각각 25명씩 하반기 교육생을 모집한다. 지원자격은 취업을 희망하는 40세 이상 미취업자로, 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박 학장은 “한 직종을 배워 오랫동한 일하는 것은 이제 쉽지 않은 듯 하다. 중장년의 경우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새로운 기술을 융합해 발전시키는 과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디지털 전환 시대의 중장년을 위한 직업전환 교육훈련 선도 기관으로 중점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서 기자 bible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