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임위 첫 회의부터 공익위원 간사 사퇴·위원장 사과 두고 설전

김성서 기자
입력일 2023-05-02 19:00 수정일 2023-05-02 19:21 발행일 2023-05-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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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위원 사과 요구에도 위원장 일축…권순원 “사퇴 있을 수 없어”
경영계에선 최저임금 차등 적용 재차 촉구…다음 회의 이달 25일 진행
시계보는 류기정, 다른 곳 바라보는 류기섭<YONHAP NO-4460>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연합)

내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할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첫 회의부터 근로자위원과 공익위원 측의 거센 신경전이 이어졌다. 근로자위원들이 지난 회의 무산을 두고 위원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다.

최임위는 2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를 본격화했다. 앞서 지난달 18일 첫 전원회의가 예정됐으나, 노동계 인사들이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채 무산된 바 있다.

이날 첫 전원회의에서 박준식 최임위원장(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은 “지난달 18일 전원회의가 개최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모든 위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며 “올해도 심도깊은 논의로 내달 29일까지 최저임금액을 의결,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역할을 다하겠다.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합리적이고 수용 가능한 최저임금액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인사말 이후 근로자위원들의 거센 맹공이 벌어졌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위원들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하고 싶었지만 지난번 첫 회의 파행과 최저임금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며 “최저임금은 2년 연속 공익위원안으로 결정됐는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안이다. 최임위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만큼 공정한 심의를 위해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박 위원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팻말을 붙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권 교수는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좌장과 상생임금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주 69시간 개악안을 만들고, 윤석열 정부를 대변하며 경영계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어떻게 공정하고 독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박 위원장은 이러한 불신과 우려를 가진 노동계에 어떻게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할지 설명했어야 하지만 회의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며 본인의 역할을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경영계에서는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적용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류기정 경총 전무는 “코로나 팬데믹이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상흔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1% 중반대라는 암울한 전망도 계속되고 있다”며 “최저임금 동결마저 어려운 소상공인도 있는 듯 한데, 올해 정부 용역을 통해 연구 검토가 있었던 만큼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업종별 구분적용이 이뤄지도록 논의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상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영상황은 가시밭길이다”면서 “자영업자의 노동소득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할 정도로 업무에는 차이가 없는 사업장도 많다.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적용 논의가 올해에는 진전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차 전원회의서 발언하는 권순원 공익위원<YONHAP NO-4504>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오른쪽)가 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

노동계의 사퇴 요구를 받은 권 교수는 이를 일축했다. 그는 “사퇴는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공익위원의 한 사람이자 간사로서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드린다”면서 “저는 노동문제에 대한 학식과 경험을 토대로 법령상 적법절차에 따라 임명됐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것에 기반해 최저임금의 수준과 관련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생각이 다른 것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거나, 위원회 운영 외적의 압력 가하는건 최임위 존재와 운영 자체 부정하는 것”이라며 “논의 외의 압력은 공익위원 전체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라고 생각하고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다. 더 이상 사퇴요구 자제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위가 최임위 틀 안에서 논의되길 노력해달라”고 덧붙였다.

모두발언 이후에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박 부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전원회의 무산에 대한 박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박 위원장은 “더 이상 사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하면서다.

그는 계속된 사과요구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노사공 위원이 합의한 사항에 의거해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 대한 배석을 허용하는 것인데, 자격 없는 사람들이 회의장에 들어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근로자위원들이 발언을 요청했지만 박 위원장이 배석자를 제외한 인사들의 퇴장을 요구하면서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날 재적위원 전원이 참석한 채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최임위는 지난 3월 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요청한 최저임금 심의요청서를 접수했다. 또 비혼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임금실태 등 분석, 최저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실태조사 분석 등 심의기초자료를 전문위원회에 심사회부했다.

이와 함께 위원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하헌제 최임위 상임위원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류기섭·박희은 근로자위원, 류기정·이명로 사용자위원, 권순원 공익위원 등 노사공으로부터 추천 받은 운영위원을 지명했다. 다음 전원회의는 오는 25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된다.

올해 논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 당 9620원(월급 고시기준 201만580원)으로, 3.95%(380원)만 오르면 시간당 임금이 1만원을 넘어서게 된다.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1만2000원을 주장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은 통상 6월 말에서 7월 초에 결정된다.

또 다른 관심거리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다. 최저임금법상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나, 최저임금이 처음 도입된 지난 1988년 이후 차등적용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세종=김성서 기자 bible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