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겜' 성공 뒤엔 10년 뚝심 있었다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2-09-18 14:18 수정일 2022-09-19 11:18 발행일 2022-09-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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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문화부 차장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 K콘텐츠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해 이 즈음 할로윈 파티의 코스튬 의상이 ‘오징어게임’ 캐릭터로 도배됐을 때만해도 배우들의 수상이나 작품이 쌓아갈 수많은 트로피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오징어게임’은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이정재)과 감독상(황동혁 감독)을 수상했다. 앞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 여우게스트상(이유미), 싱글 에피소드 부문 특수시각효과상(정재훈 외), 스턴트 퍼포먼스(임태훈 외), 프로덕션 디자인상(채경선 외) 등 기술부문을 포함해 총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최초로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그야말로 휩쓴 것이다. 배우들과 감독에게 시선이 쏟아지는 이 시기에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 김지연 대표의 벅찬 표정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소설가 김훈의 딸로 지난 2008년 이든픽쳐스를 차린 뒤 ‘헤드’ ‘맛있는 인생’ ‘10억’ 등을 제작하며 충무로에서 쓴맛을 제대로 봤다. 금수저 출신이란 시기심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딸이라는 차가운 시선도 한몫 했다. 
그가 아버지의 소설을 영화화 한 ‘남한산성’은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이 출연했음에도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실패는 글로벌 제작자로서의 자양분이 됐다. 영화 ‘10억’으로 다룬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버라이티쇼라는 소재, ‘남한산성’으로 만난 황동혁 감독과 의기투합한 것.
그는 지난 주 기자회견에서 ‘남한산성’ 실패 후 “이제는 돈이 되는 걸 해보자”며 황 감독과의 ‘오징어게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화제성은 K콘텐츠로 끌고 돈은 다 넷플릭스가 가져간다’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이 경험 역시 지적재산권의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표본이 됐다. 
김 대표는 넷플릭스와 시즌2 계약과 관련해 “서로에게 좋은 ‘굿딜’”이라고 근황을 알렸다. 김 대표는 황동혁 감독과 함께 미국 최대 규모 소속사인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reative Artist Agency, CAA)와도 계약해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나선다. 
‘오징어게임’에서도 잔머리 쓰고 불평만하다 탈락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수저타령을 떠나 맨땅에 헤딩하기를 10년 넘게 해온 그에게 경배를. 어쨌거나 이 세상은 버티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희승 문화부 차장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