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전 세계 신드롬,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 "루저들의 얘기, 세계가 열광"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10-04 18:00 수정일 2021-10-04 18:00 발행일 2021-10-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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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EOPLE]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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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왼쪽)과 이정재(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신드롬에 세계가 열광했다. 지난 달 17일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발리우드’의 나라 인도시장마저 뚫으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창업자 테드 서랜도스는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비(非)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자신했다.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은 어떻게 세계인을 매료시켰을까. ‘오징어게임’의 설계자 황동혁 감독과 최후의 1인 성기훈 역의 이정재에게 그 비밀을 엿들었다.

◇황동혁 감독 “‘오징어게임’은 루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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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다른 게임물이 영웅을 내세워 위너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오징어 게임’은 천재도, 영웅도 없는 루저의 이야기입니다.”

‘오징어게임’을 설계한 황동혁 감독은 본보와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인기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평범한, 그렇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막장인생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 건 ‘마라맛’ 게임이라는 점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다. 자동차 회사의 해고노동자 출신으로 이혼 뒤 경마장을 전전하는 주인공 기훈(이정재), 서울대 수석입학에 빛나는 쌍문동의 자랑이지만 주식투자로 큰 빚을 진 상우(박해수), 새터민 출신 소매치기 새벽(정호연) 등은 모두 우리 사회가 설치한 최소한의 안전망 밖 인간들이다. 사회로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가자들은 결국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게임에 참가한다.

이는 ‘오징어게임’을 설계한 황동혁 감독의 심경과도 비슷하다. 그가 2008년 처음 이 작품을 기획했을 때만 해도 투자사와 제작사들은 ‘난해하다’며 손을 내저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오징어게임’이 빛을 보게 된 배경에는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OTT 넷플릭스와 코인, 가상화폐,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 했다.

황 감독은 “처음 촬영할 때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데 10년이 지나 서바이벌에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서글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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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룰은 대체로 단순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시작해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등 한국인이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해봤음 직한 놀이들이 ‘오징어게임’을 타고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황 감독은 “방탄소년단·싸이·봉준호 감독에게서 볼 수 있듯,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죠. 처음 게임을 정할 때 남녀노소가 30초 안에 이해할 수 있는 게임 위주로 선정했어요.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지만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징검다리 게임’은 9회에 걸친 시리즈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가짜 강화유리와 진짜 강화유리를 구분해야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이 게임에서 주최 측은 유리감별 기술사의 능력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불을 끈다. ‘공평한 게임’이라는 주최 측의 룰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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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사진제공=넷플릭스)

황 감독은 “승자들은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누군가는 타인의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 관점의 차이가 이 작품의 주제다”라고 강조했다.   

극이 인기를 끌면서 정치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주인공 기훈이 쌍용차를 연상시키는 ‘드래곤 모터스’ 해고자로 설정되면서 실제 쌍용차 해고자인 이창근씨는 페이스북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업체에서 일하던 곽상도 전 국민의 힘 의원 아들이 자신을 “‘오징어 게임’의 말”이라고 표현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쌍용차 사태를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맞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어느 순간 기훈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어요. 잘 다니던 직장이 도산하거나 해고되는 일은 지금도 많죠. 기훈이 이후 치킨집을 하다 망하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위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이미 창작자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 수용자의 세상이 되니 어느 국회의원 아들이 자신을 말이라고 하는 걸 갖고 제가 입장을 표명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네요.”

 

서울대학교 신문학과 출신인 황 감독은 실제로 도봉구 쌍문동 출신이다. 그는 “내게는 게임의 설계자 일남(오영수)과 기훈 그리고 상우의 모습이 모두 섞여있다”면서도 “실제로 서울대 출신이다 보니 상우의 냉정함이 엿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고 했다. 모두가 기대하는 시즌2는 언제 볼 수 있을까? 황동혁 감독은 “지금은 너무 지쳐 당분간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연출하는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이가 6개나 빠졌어요. 그렇다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데 안 한다고 하면 난리날 것 같고…(웃음) 일단 준비 중인 영화를 먼저 촬영 뒤 시즌2를 제작할 것 같습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