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뷰] 무엇이 과묵한 넬을 수다스럽게 만들었나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9-15 07:00 수정일 2021-09-15 07:00 발행일 2021-09-1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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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콘서트 ‘넬스 시즌 2021 모멘츠 인 비트윈’의 한장면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헬스장에서 120 BPM 이상의 음악을 틀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잖아요. 저희도 오늘 방역당국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해 그 이하 BPM으로 신나게 즐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밴드 넬의 보컬 김종완(42)은 지난 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콘서트 ‘넬스 시즌 2021 모멘츠 인 비트윈(NELL‘S SEASON 2021 Moments in between)’ 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소리를 내지 못하니 너무 적막한 것 같아서 신보에 대한 설명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공연으로 급박하게 공연 구성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과묵한 성격의 김종완은 평소 공연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것보다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게 좋다는 소신을 드러내곤 했다.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은 건 1년 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이 크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10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넬스 시즌 2020 렛 더 호프 샤인 인’(NELL’S SEASON 2020 ‘LET THE HOPE SHINE IN’) 이후 1년 만에 열린 콘서트다. 당시에도 떼창, 함성, 기립이 전면 금지된 상황 속에서 오롯이 밴드의 음악만으로 150분을 채웠다.

일반적으로 연극의 3대 요소를 희곡, 배우, 관객으로 꼽는데 대중음악 콘서트는 음악, 가수(밴드), 관객으로 치환할 수 있다. 가수와 관객이 주고받는 에너지를 통해 함께 희열을 느끼는 게 콘서트의 묘미인데 관객의 입에 재갈을 물렸으니 밴드가 음악과 수다로 관객반응을 대체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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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콘서트 ‘넬스 시즌 2021 모멘츠 인 비트윈’의 한장면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이번 공연의 구성은 크게 ‘감성과 이성’, ‘냉정과 열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3집 수록곡 ‘마음을 잃다’, 4집에 실린 ‘멀어지다’, 6집에서 선보인 ‘그리고 남겨진 것들’, ‘지구가 태양을 네 번’, ‘백야’ 등 초반에 들려준 음악은 현악기와 밴드 사운드로 빚어진 감성적인 멜로디의 결정체다. 넬에게 ‘감성록밴드’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준 곡이기도 하다.

김종완은 “공연에 처음 온 관객들은 ‘기억을 걷는 시간’을 듣고 싶어 하겠지만 신보에 수록된 곡들 외 평소 공연에서 많이 듣지 못한 ‘신나는’ 곡들 위주로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정책과 현 시국을 시니컬하게 풍자한 소개다.

따뜻한 현악기 위주의 곡들이 ‘감성과 이성’이라면 8집 수록곡 ‘러브 잇 웬 잇 레인즈(Love It When It Rains)’나 7집 수록곡 ‘드림캐처(Dream catcher)’, 6집 수록곡 ‘오션 오브 라이트(Ocean Of Light)’는 록밴드다운 ‘냉정과 열정’을 장착해 달리는 역동적인 구간이다.

음악을 빛으로 치환한 듯 강렬한 레이저 조명이 객석의 곳곳을 내리쬈다. 관객들은 떼창과 함성의 유혹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 라이브 무대를 공개한 ‘글로우 인 더 다크(Glow in the dark)’와 록밴드다운 박력을 마음껏 과시한 ‘올 디스 퍼킹 타임(All This Fxxking Time)’을 부를 때는 현장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객석은 고요했지만 소리없는 에너지가 요동치며 천장으로 분사됐다.

그렇지만 역시 공연의 백미는 신보 ‘모멘츠 인 비트윈’ 수록곡의 첫 라이브를 들려주는 순간이었다. ‘크래시’(Crash), ‘파랑주의보’, ‘돈 세이 유 러브 미(Don’t say you love me)’, ‘유희’ 등 탄탄한 서사를 자랑하는 곡들이 보컬 김종완의 입을 통해 객석으로 전달되는 찰나는 관객에게 새로운 ‘유희’를 경험하고 ‘위로’를 안기는 순간이었다. 앨범의 허리부분에 위치한 ‘돈 허리 업’(Don‘t hurry up)은 라이브로 들을 때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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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콘서트 ‘넬스 시즌 2021 모멘츠 인 비트윈’의 한장면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김종완은 베이스 연주가 돋보이는 밝은 템포의 ‘듀엣’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장 씁쓸한 곡”이라고 설명했고 ‘정야’를 부를 때는 “화자가 세명인 경우를 상상해보라”고 조언했다. 또 객석에서 말없이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휴대폰에서 함성소리를 검색해 들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앙코르 공연 전에는 드러머 정재원이 모델로 분해 굿즈 상품을 소개하는 특별 이벤트도 선보였다. 불혹을 넘긴 장신의 사내가 길쭉한 팔다리를 유연하게 휘두르며 머그컵과 에코백, 모자, 티셔츠 등을 소개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웃음을 안겼다. 음악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진지한 넬의 공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코믹한 장면이다.

앙코르 곡은 ‘숨’과 ‘12세컨즈’. 2016년 방송된 드라마 ‘굿와이프’ OST인 ‘숨’은 공연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곡이다. “괜찮아 질 수 있을까/노력해보지만 참 고달퍼/어떤 것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구나/그래도 버텨 내야겠지/모두 제자리로 돌려 놔야겠지”라는 가사가 코로나 시대의 촌극을 풍자하듯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여러분의 에너지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저희는 다시 ‘말이 없는 밴드’로 돌아갈게요.”(김종완)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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