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지금 당신의 일자리는 의미있는가? ‘불쉿 잡’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9-07 18:00 수정일 2021-09-07 18:00 발행일 2021-09-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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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 |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긴이) | 민음사 | 2만 2000원 | 사진제공=민음사

요즘 패스트푸드점이나 소규모음식점, 관공서에서는 주문을 키오스크(무인단말기)가 대신한다. 대형마트나도 계산원 일부를 무인계산대로 대체했다. 업무자동화 추세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유통가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감염병으로 촉발된 기술가속화는 지금 당신이 속한 일자리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을지 모른다. 

2013년 8월 영국 진보 매체 ‘스트라이크’ 인터넷판에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On the Phenomenon of Bullshit Jobs)라는 기고문을 작성한 데이비드 그레이버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지난 2018년 출간한 ‘불쉿 잡’은 이 칼럼을 발전시킨 책이다. 당시 기고문은 조회 수 100만 건 이상을 기록하고 한국어를 포함한 17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 ‘화이트 칼라’ 전문직들의 공감을 샀다. 이에 그레이버 교수는 설문통계, 트위터 등을 통한 독자 반응을 모아 이 책을 집필했다. 제목에 사용된 ‘불쉿’(Bullshit)이란 단어는 ‘쓸모없는’ ‘엉터리’ ‘쓰레기 같은’ 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다. 
저자는 책 속에서 ‘불쉿 직업’에 대해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로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는”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불쉿 직업’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제복 입은 하인’ ‘깡패’ ‘임시 땜질꾼’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 ‘작업반장’을 들었다.
‘제복 입은 하인’은 누군가를 돋보이게 만드는 직업이다. 수위, 건물관리원, 비서 등이다. 은유적으로 사용된 ‘깡패’는 공격적 요소가 있는 직업 종사자다. 저자는 군대, 로비스트 홍보전문가, 텔레마케터, 기업변호사 같은 직업은 이들을 채용하는 이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일을 한다며 대체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한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가 12명의 홍보전문가를 채용한 사례를 꼽으며 “옥스퍼드가 일류대학교가 아님을 납득시키는 게 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시 땜질꾼’은 조직에 생긴 균열이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다. 저자는 ‘임시 땜질꾼’의 대표적인 사례로 허술하거나 무능한 상사들이 저지른 손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라고 했다. 그는 “수많은 임시 땜질군 일자리들은 아무도 시정하려고 애쓰지 않는 시스템 내의 틈새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적었다.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은 어떤 조직에서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정부의 진상조사단처럼 보이기 위해 사용되는 보고서 작성자를 일컫는다. ‘작업반장’은 업무를 배당하는 일만 하고 나아가 ‘불쉿’ 업무를 생성하는 이들이다. 대학에서 형식적인 서류작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략적 비전보고서를 제출하는 중간 관리자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갑자기 사라져도 큰 무리 없는 직종으로 사모펀드 CEO나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집행관, 법률 컨설턴트 등을 들었다. 반면 교사, 간호사, 쓰레기 수거 요원, 음악가, 항만 노동자, 정비공들이 사라진다면 ‘재앙’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의미한 직종이 유의미한 직종보다 고액의 연봉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며 이는 근 100여 년간 전체 판도를 바꾼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4차 산업인 금융, 보험, 부동산이 성장하면서 돌봄 노동자, 청소 및 경비 노동자, 제조업 공장 노동자 등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일자리 대신 회계 직원, IT 전문직, 컨설턴트 직종이 늘어나면서 불쉿 잡도 증가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생산성 없는 업무를 지속하는 화이트칼라의 무의미함을 ‘불쉿 잡’이라고 정의한다. ‘불쉿 잡’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해 생계와 노동을 분리하자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자신을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한 저자는 기본소득 도입이 불쉿 직업으로 가득 찬 정부 관료 기구 폐쇄로 이어질 것으로 적었다. 논리의 널뛰기가 심하지만 4차 산업시대 형식적인 서류작업의 불필요성에 진절머리가 났다면 “(불쉿 잡을 줄이자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강력한 주장이다”라는 이 책의 기획의도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