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세종은 부동산 세금을 어떻게 해결했나… ‘조선의 위기대응노트’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8-24 18:00 수정일 2021-08-24 18:00 발행일 2021-08-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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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조선의 위기대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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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 | 김준태 지음 | 민음사 | 1만 6000원 |사진제공=민음사

“두려워하되 모든 역량을 도모하여 일을 성사시켜라.”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이 평소 즐겨 인용했던 공자의 말이다. 섣부르게 결론을 내거나 무작정 밀어붙이지 말고 빈틈없이 추진하라는 의미다.
신간 ‘조선의 위기대응노트’는 현대적인 관점과 이론으로 조선의 20가지 사례(史例)를 통해 역사 속 리더들의 위기 대응을 분석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사료가 비교적 명확하게 남은 조선 임금들의 성공과 실패를 복기해 ‘기출문제집’처럼 반면교사로 살피라는 게 저자의 의도다. 
세종은 한글창제, 집현전 설립 등 후대에 알려진 여러 업적 외 ‘공법개혁’을 실시했다. 공법은 토지조세제도로 토지 1결당 세금을 얼마나,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를 담고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부동산 세금’인 셈이다. 세종은 공법개혁에 앞서 정책을 시험하고 시행에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공법을 처음 제안한 시기부터 최종 확정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5년이다. 이 기간 동안 협의와 찬반 토론을 통해 민심을 수렴했다. 
저자는 세종이 정책을 도입하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을 ‘위기 경영’의 권위자로 알려진 에드워즈 데밍의 ‘계획, 실행, 점검, 조치(PDCA) 사이클’에 빗대며 우수한 정책 품질 관리의 사례라고 풀이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잡겠다며 졸속으로 보유세 강화, 양도세 중과세 도입, 대출수요 억제 등으로 전세난민이 속출했던 현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사례다. 
세종은 재난 대응에서도 앞서갔다. 예방을 강조해 큰 비가 내리면 수재 발생 우려 지역을 점검하게 했고 겨울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의 얼음이 얇아져 사람이 빠지는 사고를 대비해 각 나루터에 얼음을 깨라고 지시했다. 효과적인 구휼 제도를 위해 종1품 재상급 대신을 최고구율 책임자에 임명하며 컨트롤 타워를 세웠다. 화재(火災)는 인재(人災)라 여겨 철저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금화도감을 설치해 대비했다. 감염병 사태에 대비하지 못하고 백신 도입이 뒤쳐져 우왕좌왕 하는 지금의 모습과 비교된다. 
저자는 외교 문제에 있어 빼어난 리더는 남 탓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조선의 제7대 왕인 세조는 국경지역에서 조선을 위협한 여진족의 위험을 파악한 후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아울러 적극적인 외교전을 병행했다. 우호적인 부족인 확실히 보상하고 위협적인 부족은 정벌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했다.
반면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여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이 발발했지만 인조는 남 탓으로 일관하며 체면만 지키려 했다. 저자는 이러한 인조의 자세가 위기와 같은 불안요소를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통제환상’에 빠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전쟁이라는 위기가 닥쳤을 때도 대응력과 복원력을 키우는 일에 무관심해 피해를 키웠다. 
이러한 인조와 세조의 차이는 이들이 남긴 한마디 말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인조는 “대신들이 우물쭈물하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 반면 세조는 “경은 스스로 품고 있는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라”고 말한다.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계가 떠들썩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후보 선출을 앞두고 흑백선전이 난무하다. 태종이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이 과정을 오늘날 기업이나 정부가 리더 부재 시 마련한 대체계획, 승계계획에 비유하며 ‘승계는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세스다’라는 격언이 충실히 구현된 경우라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의 효용에 대해 ‘지나간 것을 살펴 다가오는 것을 밝힌다’는 한(漢)대 학자 동중서(董仲舒)의 말을 인용하며 “시대라는 옷만 달리 입을 뿐 본질은 그대로다”라고 강조한다. 책을 읽다 보면 옛 선조들의 지혜에서 지금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적용되는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