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니브, 인종차별 받던 한인소년, 케이팝 뮤지션으로 우뚝 서다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7-31 07:00 수정일 2021-07-31 07:00 발행일 2021-07-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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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브
<p>싱어송라이터 니브(사진제공=153 엔터테인먼트)

소년은 수줍음이 많았다. 말이 어눌해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한국에서 살다 낯선 호주로 떠났다. 낯을 가리는 동양인 소년은 그 자체로 핸디캡이었다. 어머니가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도시락 2개를 싸줬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화장실 변기 위에서 홀로 꾸역꾸역 도시락을 먹곤 했다. 외롭고 고독한 나날이었다.

장기자랑 시간, 소년은 노래를 불렀다. 게리 줄스의 ‘매드 월드’(Mad World). 가만히 눈을 감고 한 음, 한 음을 음미했다. 3분 여 시간이 흐른 뒤 눈을 뜨자 갑자기 모든 게 변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학교의 ‘슈퍼스타’가 됐다.

“장기자랑 이후로 제 인생이 변했어요. 반에서 인기가 높아져 반장을 맡게 됐고 친구들도 사귀게 됐어요. 밴드, 합창단 등 과외활동도 8개나 하게 됐죠. 원래 말을 잘 못했는데 반장을 맡아 리더십이 생기면서 말하는 방법도 터득했어요. 음악을 통해서 이뤄낸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졌죠.”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최애 뮤지션’으로 꼽히는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니브(28·본명 박지수·28)는 음악에 빠진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연히 친구들 앞에서 부른 단 한곡의 노래가 인생을 변화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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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니브(사진제공=153 엔터테인먼트)

미국 뉴욕의 메네스음악대학에 클라리넷 전공으로 진학한 뒤 우연한 기회에 Mnet ‘슈퍼스타K6’에도 출연했다. 10대 시절을 호주와 미국에서 보냈던 니브는 치열한 경쟁 위주의 한국의 오디션 문화에 적지않게 충격 받았다. 그는 “‘슈퍼스타K’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며 “하지만 음악을 위해 무형의 자산을 쌓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박이라는 미국에서 사용하던 이름으로 출전한 그는 기타로 편곡한 엑소의 ‘으르렁’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심사위원들의 구제로 톱10 탈락위기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로 인해 ‘톱10’이 ‘톱11’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슈퍼스타K’를 마친 뒤 약 4년간 스스로를 갈고 닦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에서 어깨너머로 곡을 쓰는 법을 배웠다. 서서히 뮤지션들 사이에서 “음악 잘하는 젊은 친구가 있다”는 입소문이 났다.

2018년, 엑소 첸의 ‘4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로 K팝 아티스트의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경쟁이 치열한 K팝 신에서 신인 프로듀서가 최고 주가를 올리는 팀 멤버의 솔로 타이틀곡을 맡는 건 드문 경우다. ‘4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는 니브에게 프로듀서의 명성과 ‘벚꽃연금’까지 안긴 ‘효자곡’이 됐다.“당시만 해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리고 그 곡이 차트에서 1위를 할 줄은 더 몰랐죠. 시간이 흘러 이제 좀 실감이 나네요. (웃음)”

이후 박혜원 신곡 ‘아무렇지 않게, 안녕’ 헤이즈의 ‘2이지’, 폴킴의 ‘나의 봄의 이유’,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E 앨범 수록곡 ‘블루 & 그레이’(Blue & Grey) 등 유수의 케이팝 스타들과 작업했다. 인종차별을 받던 동양인 소년이 케이팝 스타들의 프로듀서로 우뚝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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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니브(사진제공=153 엔터테인먼트)

니브는 지난 27일 첫 미니 1집 ‘브로큰 컬레이도스코프’(Broken Kaleidoscope)를 발표하며 가수로 대중 앞에 나선다. 지난 2018년 미국에서 디지털 싱글 ‘겟어웨이’(Getaway)를 발표했지만 앨범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부서진 만화경’이란 뜻을 지닌 앨범 제목은 2020년부터 자신의 SNS에 편지 형식으로 쓰던 일기의 주제다.5곡의 수록곡 중 선공개곡인 ‘이스케이프’(ESCAPE)는 무기력한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을, 타이틀곡인 ‘아임 얼라이브’(I‘m Alive)는 거친 세상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렬한 록비트에 담아냈다. 그간 니브가 프로듀싱한 다른 가수들의 달콤한 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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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니브(사진제공=153 엔터테인먼트)

“그간 작업한 곡들이 몽글몽글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며 이번 미니앨범에는 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근 몇 년간 인간관계와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죠. ‘이스케이프’와 ‘아임 얼라이브’를 만들 때는 감정의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였어요. 그런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음악이라 당시 제 진심을 담아냈죠.”

그렇다고 수록된 모든 곡이 화가 난건 아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메이비 아이 워나 다이’(Maybe I Wanna Die)에서 체념의 정서를 노래했다면 ‘퍼펙트 댄서’(Perfect Dancer)와 ‘투 마이 디어 프랜드’(To: My Dear Friend)에서는 다시 희망을 향한 날갯짓을 시작한다.

니브는 첫 앨범에 대해 “벌거벗겨진 느낌”이라면서도 “걱정이 되지만 나 자신을 고백하고 싶었다”고 평가했다 .

“저라는 사람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싶었어요. 제 음악 속 감정이 부정적이긴 하지만 이 음악을 듣는 청자들이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나’ 싶을 때 듣는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이르긴 하지만 다음 앨범을 낸다면 다시금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낼 계획이다. 그는 “아티스트의 의무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