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멈춰야 할 '아니면 말고'

손현석 명예기자
입력일 2021-07-15 15:31 수정일 2021-07-15 15:33 발행일 2021-07-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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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손현석기자
손현석 명예기자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두 가자의 부끄러운 말이 있다. 첫째는‘내로남불’이라는 말이다. 외신에도 보도된 바 있는 이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즉 자신의 잘못에는 크게 관대하면서 남의 작은 잘못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잘못된 사회 지식인들을 풍자하는 말이다.

또 한 가지 부끄러운 말은 ‘아니면 말고’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다가 자기주장이 거짓인 것으로 판명되면 빠져나가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수치스럽기는 해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면 말고’다. 특히 선거 때 상대방의 약점을 잡기 위해 광분하다가 약점이 없으면 거짓으로라도 프레임을 짜서 국민을 선동한 후 선거에서 이긴 후 거짓으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라는 말로 넘어간다. 이미 선거에서 이겼으므로 사실이든 아니든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니면 말고’가 부정적인 말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친절한 금자 씨’ ‘올드보이’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찬욱 감독이 2005년에 발간한 ‘몽타주’라는 책을 보면 ‘가훈’이라는 글이 있다.

거기서 그는 자기 집 가훈을 ‘아니면 말고’라고 정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먼저 시작해 본 후 안 되면 그만이지만, 아예 안될 것이라고 가정해서 시도조차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 ‘아니면 말고’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라는 말은 결코 긍정적인 말은 아니다. 사려나 분별없이 경솔하게 일을 저지르거나, 남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나서 그 말이 거짓인 걸로 밝혀졌을 때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기변명을 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2019년 초에 광주의 모 지역 언론은 항일운동으로 유명한 광주일고의 교가가 이은상이 작사한 것을 친일 인명사전에 오른 이흥렬이 작곡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광주시교육청은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친일 잔재 청산을 한다는 명분으로 교가를 교체하기로 했다.

이후 재학생들을 상대로 가사를 공모한 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을 작곡자로 위촉해 새 교가를 완성했다. 광주일고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새 교가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광주일고와 함께 1920년에 설립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뿌리로 하고 있는 광주서중의 1960~1972년 졸업 앨범을 확인해 보니, 교가 작사가는 똑같은 이은상이지만, 작곡가는 친일 작곡가로 알려진 이흥렬이 아니라, 항일운동 가문인 박태현으로 표기된 사실이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당시 광주시교육청은 상세한 조사와 확실한 근거도 없이 교가 교체를 밀어붙였다가 뜻깊은 광주일고 교가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작사하고 작곡한 사람들의 노고를 사라지게 만들고, 100년이 넘는 학교 전통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런 잘못된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라는 말로 넘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제 몇 개월 후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지금도 ‘아니면 말고’의 프레임을 짜려고 광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잔꾀로 선거에서 이긴들 그런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이제 더는 정치인들이 ‘아니면 말고’로 국민을 우롱하는 그런 장난질이 발붙이질 못하도록 국민의 각성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

손현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