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선을 넘는 어른들… 직위 남용은 범죄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1-06-29 07:00 수정일 2021-06-29 20:51 발행일 2021-06-2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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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세대 제대로 이해해야 할 '성인지감수성'

(사진출처=게티이미지)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남녀 성별 불균형을 인식하고 성차별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성폭력상황과 연관해선, 가해자보다 피해자 입장을 더 배려하자는 것이 성인지감수성이다. 2차 피해가 발생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의 어른인 일부 5060 세대 지도층의 어처구니없는 작태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부하 직원 성폭력, 길거리에서의 만취 성추행 등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이답지 않게 자기절제를 못하고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킨 탓이다.

◇ 성폭력과 성폭행, 성희롱 제대로 알기

성과 관련된 육체적 정신적 폭력행위 일체를 성폭력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는 ‘성을 매개로 상대방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를 말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 간음뿐 아니라 공연음락, 음화 반포, 음행 매개 등이 모두 성폭력이다.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성폭행은 상대와 동의없이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관계를 맺는 일을 말한다. 형법상 강간이 해당된다. 성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 용어로 강제추행이다. 추행이란 성욕을 만족시키거나 자극하기 위해 상대방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성희롱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또는 성적 요구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언어적, 시각적 행위도 포함된다.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범죄가 될 수 있다. 

◇동의없는 가벼운 아이 볼 터치도 이젠 범죄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있지 못하면 사회의 어른으로서 처신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어디까지가 성추행이고 성폭력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전의 관행적인 행동이나 표현이 범죄가 되곤 한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추행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60대 어르신이 장난으로 어린 아이의 몸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도 법에서는 성추행으로 간주해 징역형을 부과한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성적 정체성 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귀엽다고 쓰다듬는 다거나 볼을 비비거나 뽀뽀를 하는 행위도 이제는 엄연한 불법이다. 길을 가다 지나가는 어린아이가 너무 예뻐 볼을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이 부과된 판례가 의외로 많다. 5060 세대에게는 어릴 때는 단순한 장난이었던 ‘똥침’ 조차 이젠 벌금형 대상의 범죄행위다. 상대방이 다치기라도 하면 상해죄까지 적용될 수 있다.

◇법은 ‘갑을 관계’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한다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현행법은 업무나 고용관계 등에서의 ‘갑을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자칫 ‘위계(속임수)’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가 씌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지자체장들의 잇단 범죄 행위도 자리가 주는 권력과 권위에 취해 ‘선’을 넘은 경우다. 형법에서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처해질 수 있다. 직장 상사로서 승진이나 급여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칠 자리에 있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직위를 남용해 벌이는 일체의 행위도 범죄다.

법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도 이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아내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부인과 관계를 맺은 경우에 ‘강간죄’가 성립된다. 성 범죄 피해자가 현장에서 웃었다거나, 잠자리 후에 손을 잡고 나왔다거나, 관계 후 문자를 보냈다거나 하는 것도 최근에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가까운 사람들에게부터 예의를 지켜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0년 전체 성폭력 상담 건수는 715건이다. 피해자의 93.6%가 여성이었고 남성은 6.1%였다. 가해자의 93.1%가 남성, 그 가운데 성인이 77.2%였다.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9.1%로 압도적이다. 피해 유형별로는 강제추행이 34.5%, 강간 및 강간미수가 34.4%. 성희롱이 13.8%였다. 성인의 경우 직장 관련이 38.9%로 가장 많았고, 이어 친밀한 관계가 14.3%였다.

형법 제299조에 따르면 술이나 약물 등으로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간음 또는 추행을 준강간, 준강제추행이라고 한다. 2020년에는 전체 피해 유형 가운데 18.5%가 이런 경우였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강제추행인 경우가 43.6%인 반면 강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56.4%로 더 많았다. 회식이 많은 우리 직장 문화에서 더더욱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가 정확하게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면 법적 처리가 어렵다. 반대로 기억을 한다면 오히려 항거불능이나 심신상실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이래저래 서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돼

최근 사회고위층의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 가해자들 대부분이 일단 “그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우긴다. “피해자 같지 않다”고 몰고 가는 경향도 많다. 그 근저에는 “상대가 동의했다. 문제 될 것이 무엇이냐”는 안이함이 자리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직장 내 성폭력은 ‘성폭력 특례법’으로 처벌되는 중대 범죄다. 간과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사회 이슈에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강준만 교수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의전문화가 문제”라고 일갈한다. 기존 조직의 질서, 즉 권력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약자들로선 위계와 위력을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시 미디어 비서관 이 모 씨의 “아무리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았더라도 힘을 가진 사람은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언급하며, 성 문제에 임하는 사회 지도층의 바른 자세를 강조한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하고 “피해자면 피해자답게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나대고 다니느냐”는 식으로 ‘피해자다움’을 암암리에 강요하는 2차 가해도 큰 문제다. 조직의 힘을 이용해 진실을 외면케 하는 ‘침묵의 카르텔’도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다.

조진래·안상준 기자 jjr20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