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모디 리더십'에 보내는 경고… 병든 세상을 치유한 역사의 교훈 '성실과 연대'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6-21 07:00 수정일 2021-06-21 07:00 발행일 2021-06-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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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전염병과 차별의 역사(하) 코로나가 심화시킨 경제적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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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에 가장 심각하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계층은 경제적 기반이 약한 불가촉천민들이다. 사진=Live Mint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195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출생 때부터 그들에게 부여된 2000년 된 굴레는 아직도 그들의 삶 곳곳에 존재한다.

카스트 제도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정의한다. 브라만(제사장과 교사), 크샤트리아(전사와 통치자), 바이샤(상인)와 수드라(노동자)로 크게 나뉜다. 이 카스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계층을 흔히 ‘불가촉 천민’ 혹은 ‘달리트(Dalits, 억압받는 자)’라고 부른다. 인도 인구 13억 8000만 중 약 25% 정도에 이른다.

인도 헌법 규정에 따르면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 16.6%) 혹은 지정 부족(Scheduled Tribes 8.6%)은 수세기 동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원주민이 대부분이다. 이 두 그룹은 오랫동안 사회적 고립을 견뎌왔지만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과 이를 막기 위한 정부 조치로 인해 이들의 삶은 더욱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그들이 수세기 동안 맡아온 청소나 폐기물 처리, 시체 처리, 하수도 청소 등의 직업은 코로나에 걸릴 위험이 큰 일이다.

전염병이 진행되는 동안 인도 정부는 그들의 직업을 필수 서비스로 간주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장비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리더라도 빈곤에 빠져 들지 않도록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인도를 휩쓸며 거의 1700만 명이 사망했을 당시에도 카스트는 생과 사를 결정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하위 카스트는 인구 1000명 당 61명, 상위 카스트는 19명, 유럽인은 5명 이내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당시 하위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 훨씬 더 질병에 취약했다면 2020년 코로나는 사회 계층보다 경제 계층에 따른 영향이 압도적이다. 물론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인도의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불가촉 천민들은 청소, 배수관 정비, 벽돌 가마일, 가죽 공예 등 더럽거나 불명예스러운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병원 청소를 도맡아 하는 이들은 하루 7~8시간 동안 병원 청소와 쓰레기 처리에 매달리고 있지만 충분한 양의 보호 장비는 주어지지 않는다. 한달 평균 14만 원 내외의 급여를 받는 이들에게 개인 위생 도구는 남의 일인 것이다.

인도 최대 축제인 홀리(Holi)가 끝난 7일 후 북인도 도시와 마을에서는 시타라(Shitala) 여신에 대한 예배가 진행된다. 여성들은 이른 아침 찬물로 목욕을 하고 여신의 사당에 참배한다. 이 날은 요리를 할 때 불을 사용하지 않고 전날 만들어둔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 시타라는 천연두의 여신으로 천연두를 비롯해 많은 질병에 걸린 환자의 열을 식혀 병을 시원하게 치유하는 힘을 가진 여신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한국 언론에서는 인도에는 ‘코로나 여신’까지 모시고 있다는 비아냥이 섞인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인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낸 것이다. 천연두의 여신으로 대표되는 시타라 여신을 그렇게 보도한 것이다. 시타라 여신이 치료하는 대상이 코로나까지 넓어진 것 뿐이다. 참고로 인도의 종교 사상은 병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람의 무능력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병의 고통을 기억하고 공존하려는 자세를 갖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전염병은 아무리 주의해도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중요한 것은 이 병을 대하는 리더십이다. 스페인 독감이 미국에서 유행했을 때 필라델피아와 샌프란시스코의 대응 방향은 정반대였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흑인 등 특정 집단은 포기하고 ‘괜찮다’, ‘안심해라’는 공허한 메시지를 남발했고, 결국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반대로 샌프란시스코는 거리 두기와 셧다운을 하고, 보이스카우트 등이 도시락을 싸서 식사하러 나오기 어려운 감염자들을 도왔다. 사회적 결속과 협력이 감염병 재난을 해결한 것이다. 구성원의 그런 의지를 모으고 결속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인도 모디 총리와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리더십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느슨한 조치를 남발했고 심지어 백신을 주변 가난한 나라에 기증한다는 발표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오만이 자국민을 코로나 위기로 몰아넣어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지방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렇다면 감염병이 만든 차별의 역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더욱더 암울하게 만들까, 아니면 뭔가 새로운 삶으로 우리를 이끌까?

중세 농민들은 영주들에 의해 엄청난 노동에 시달렸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그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도 나왔다. 수천만 명이나 목숨을 잃은 사태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몇 개의 국가들이 탄생하는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흑사병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자 소작농이 크게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토지를 소유한 이들에게는 노동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러자 농업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커졌다. 힘의 균형이 달라지자 영주 소유의 땅에서 지대를 내며 일하던 낡은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서유럽을 보다 근대적이고, 상업화된, 화폐 기반의 경제로 이끌었다. 일 할 사람을 고용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염병의 발생이 유럽의 제국주의를 가속화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중세 시대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망률이 높은 전염병이 대륙 곳곳에서 창궐하자 사람들은 장거리 항해에 나섰다. 이것이 유럽 식민 팽창의 동인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전염병은 경제의 근대화, 기술 투자 증가와 해외 팽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서유럽 국가들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여건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중세 팬데믹 상황은 르네상스 탄생도 가져왔다. 이 때 문화와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문학을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에도 흑사병이 얽혀 있다. 줄리엣이 쓴 편지를 가진 수도사가 흑사병 환자와 함께 격리되어 편지가 로미오에 전달되지 못한 내용이 나온다. 문학 작품 하나에도 펜데믹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다.

당시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 공기로 감염되지 않도록 코 속에 여러 가지 약초를 채운 페스트 마스크와 모자와 안경을 착용하고 망토를 쓰고 진찰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의 죽음에 대한 공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런 변화 말고 전염병이 변화 시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이상이다. 예를 들면 아이작 뉴턴은 흑사병의 유행으로 대학이 휴교하자 시골에 가서 그곳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시간의 사용 방법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흑사병 잠복기가 10일이고 발병 5일 이내 사망하기 때문에 40일간의 격리 기간을 둔 것은 전염병을 막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검역’을 뜻하는 영어 ‘검역(Quarantine)’이 40일이라는 의미인 라틴어 ‘쿠안테라리아(quarantena ria)’에서 유래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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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불가촉천민들은 가장 더럽고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사진=Live Mint

종교에서도 흑사병으로 고통받던 암울한 시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타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심지어 자격이 안되는 불량배들에게도 사제직을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불신은 1517년 시작된 종교 개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신과 봉건 영주의 권위가 하락하면서 중세적 세계관이 몰락해가며 인간 중심의 사고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책을 1978년에 펴냈다. 암 투병을 계기로 그녀는 암이라는 질병이 죽음의 은유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암은 사형이 선고되듯 선고된다. 반면 19세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표 질병인 결핵에는 언제나 낭만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결핵은 시인과 예술가들의 질병이며, 습한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화창한 날씨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낭만적인 병이었다. 고뇌와 열정의 질병인 결핵과 반대로 암은 냉담하고 의기소침한 사람들이 주로 걸린다고 여겨졌다. 1944년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나온 이후 결핵은 치료 가능한 평범한 질병으로 바뀌었고, 과거의 치명적이었지만 낭만적인 은유의 힘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다. ‘병에 대처하려면 은유인 병에 대한 관점을 없애는 것, 질병은 그저 질병이고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수전 손택은 기술했다.

이 말은 전염병에 대해서도 적용시킬 수 있는데, 건강하게 유행에 대처하기 위해서 ‘은유와 신화’는 필요 없다. 아직도 전 세계는 피부색, 성별,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세상에 차별이 없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병이 유행하게 되면 차별 받는 상대는 매우 약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이자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말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이다.” 건강하게 전염병의 유행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아닌 성실함,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인도든 한국이든 세계 어디든.

권기철 국제전문 기자 speck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