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자산을 대하는 은행의 두 얼굴

김상우 기자
입력일 2021-05-26 14:24 수정일 2021-05-26 15:05 발행일 2021-05-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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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산업IT부 차장

최근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이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계획이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실명계좌 발급이 급한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이 있는 중소거래소들은 해당 발언을 달리 해석했다. 정부가 ‘가상자산=투기’라는 잠정 공식을 세워두고 몽둥이를 들고 있는 마당에, 잠시 몸을 사리는 부자 몸조심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기자 개인에게도 은행들의 이번 발언이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다는 인상이다. 밑에서는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면서, 위에서는 “가상자산이 뭐죠”라고 능청을 부리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해치랩스, 해시드와 손잡고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한 바 있다. 고객 요청에 따라 장외거래로 비트코인 등을 구매한 뒤 수탁까지 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다. 신한은행도 올해 1월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으며, 농협은행은 블록체인 전문업체 헥슬란트와 함께 지난해부터 가상자산 커스터디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시중은행 대부분이 가상자산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가상자산에 러브콜을 보내는 와중에, 그거랑 별개라고 손을 휘젓는 모습은 스스로 ‘관치금융’을 입증하는 격이 아닐까 싶다. 한편에서는 은행들이 특금법 개정안을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설도 나온다. 이참에 거래소 중심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그 키를 은행이 잡겠다는 시나리오다. 정부가 가상자산을 금융 영역으로 인정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관치금융의 힘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던 은행들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산업과 기업의 육성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가면은 벗어던져야 한다. 금융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강단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김상우 산업IT부 차장 ks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