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예식장은 '보잉777'… 하객 여러분 탑승해주세요

채현주 기자
입력일 2021-05-10 07:00 수정일 2021-05-10 17:33 발행일 2021-05-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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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주의 닛폰기] 날개 꺾인 항공·멈춰선 철도 변신중… 코로나 탈출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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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NA)
Q.“항공기 모델은 선택 가능합니까?”  

A.“보잉 777-300ER 항공기만 가능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인기 모델 항공기를 통째로 빌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Q.“결혼 50주년 기념 금혼식도 가능한가요?”

A.“기념일, 환갑, 승진 파티 등도 모두 환영합니다.”

Q.“결혼식은 어떤식으로 진행되나요?”

A.“선상에서 은하수 조명과 함께 플루트 하프의 라이프 연주까지, 승무원의 기내 메세지 시작과 함께 신랑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죠. 평생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 될 것입니다.”

◇ ‘기내 결혼식장’ ANA 항공사

일본 최대 항공사 전일본공수(ANA)가 국제선 여객기를 결혼식장으로 내놨다. ANA는 웨딩 전문 업체와 협업을 통해 하네다 공항에 세워둔 여객기(보잉 777-300ER)를 결혼식장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오는 23일부터 6월 30일까지 총 9회 실시한다.

기내 결혼식 하객들은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통해 호화로운 결혼식을 감상할 수 있다. 예식은 은하수 조명과 함께 플루트, 하프의 라이프 연주로 신랑 신부를 맞이하고, 승무원의 기내 방송 메세지를 통해 이들의 출발을 알리며 축하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문 사진작가의 촬영부터 웨딩드레스 턱시도, 헤어·메이크업까지 서비스로 제공한다.

또 신랑·신부와 하객들은 하네다 공항 제2여객 터미널의 ANA 국제선 라운지를 통째로 이용할 수 있다. 승무원이 하객들을 국제선 라운지에서부터 동행해 출국 게이트를 안내하는 것은 물론 전용 셔틀 버스를 이용해 여객기에 탑승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해 준다.

원할 경우 기내 결혼식이 끝난 후에 하네다 공항 제1터미널 갤럭시홀에서 웨딩파티나 피로연도 열어준다. 결혼식은 비공개로 치러지며, 여객기 탑승 가능한 최대 인원은 30명이다. 철저한 코로나19 방역을 통해 탑승객에게 쾌적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요금은 기내에서 결혼식만 올리는 경우 155만엔(1600만원)가량이 든다. 피로연까지 이용할 경우 300만엔(3100만원)이다.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 있지만 차별화 된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부부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ANA 항공 측은 “평생 한번 있을 추억의 결혼식이 될 것”이라면서 “많은 예비 부부들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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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NA)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4046억엔(약 4조1373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회사 역사상 최악의 실적이다.

ANA는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2022년까지 자사 직원 3500여명의 감원 발표를 하고, 직원 750명을 기업과 지자체에 파견하기도 했다. 아울러 90% 이상이 항공 사업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2024년까지 비항공 부분에서 매출을 두배 이상 올리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비항공 부분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기내식을 외부에 판매하고 있으며, 올해 3월부턴 국제선 항공기 내 레스토랑 서비스도 시작했다. 최근엔 ANA 슈퍼앱을 통해 항공사 마일리지 비행기표 외에도 쇼핑, 외식, 금융상품 가입, 대출 등도 판매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ANA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대형 항공기 30여대를 내놓기도 했다. 이중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부품을 떼어서 판매하고 있다. 최근엔 조종간과 기내식 카트까지 뜯어서 내놨다. 가격은 80만엔(800만원) 가량이다. 엔진 스로틀 레버도 4대나 판매했다. 가격은 120만엔(1200만원) 이다. ANA는 심지어 식사를 제공할 때 사용하는 기내식 카트(11만5000엔)까지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적자 만회를 위해 한푼이라도 더 수익을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ANA는 이 같은 총력전을 통해 내년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ANA 측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올해 5100억엔(5조원) 가량 적자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1000억엔 가량 손실이 줄었다”면서 “백신 공급 기대 등 여객수요가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대지진에도 끄떡 없었는데… 코로나에 무릎 꿇은 대형 호텔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일본에선 ANA와 같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업종들이 새로운 수요를 개척하기 위해 나섰다. 코로나 쇼크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간토대지진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일본 대표 호텔인 제국호텔이 코로나19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제국호텔은 해외 유명스타는 물론 정치인이나 기업임원 등이 많이 찾는 호텔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객실 가동률이 10%까지 하락했다. 10개 방 중 9개가 놀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 2월 한달 간 월세를 받는 형식의 아파트먼트 사업을 실시했다. 한달 간 머물면서 수영장, 스파 등 부대시설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세탁과 룸서비스 등도 거의 반값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30박 기준으로 30㎡(약 9평) 객실은 36만 엔(약 370만 원), 50㎡(15평)는 60만 엔(610만 원)이다.

도쿄 부도심의 주거지 기준 평당 월세가 1만 엔(약 11만 원) 가량된다. 호텔 측은 “코로나19로 재택 근무가 늘면서 호텔을 일터로 이용하려는 직장인 전문직들을 타깃으로 했다”면서 “전체의 10%인 99개 객실에 대해 예약을 받았는데, 하루 만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제국호텔의 성공적인 새로운 시도에 일본 호텔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출시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생각치도 못한 호텔리빙족을 탄생시켰다고 지난 22일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신주쿠에 있는 게이오 플라자 호텔도 30박에 16만엔(약 165만원)의 플랜을 내놔 2시간 만에 완판됐다. 제국호텔과 함께 대표적인 도쿄 3대호텔로 꼽히는 뉴오타니 호텔도 최근 장기플랜 모델을 출시했다. 30박에 97만엔 한화로 약 1000만원 가량의 고가이지만, 2인기준에 일일 청소·세탁 서비스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 총 3회 식사도 포함된 가격이다.

도큐 호텔은 전국 39개 계열 호텔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30박에 18만엔(약 186만원)이다. 평일엔 도심 호텔에서 머물고 주말엔 지방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이들을 타깃으로 했다.

철도회사 게이큐선 전철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입으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이에 통째로 열차를 빌려주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 새 열차를 선보였는데 자석마다 콘센트 설치는 물론 화장실도 넓게 마련돼 있다. 콘서트나 이벤트를 이용하려는 기업, 개인고객에게 임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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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부세마치 호쿠사이관)

◇ 이외의 장소, 이외의 변화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탁아소, 철도, 미술관 등 이외의 장소에서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맛보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쉐어 오피스 등을 선보이고 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JR동일본 치바지사는 ‘움직이는 쉐어 오피스’를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말 나리타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나리타익스프레스를 쉐어 오피스로 사용하는 실증 실험을 실시했다. 공항 승객 감소로 이 같은 시도를 펼친 것이다. 2일간 총 400명이 이용했는데, “이외로 조용해서 놀랬다. 계속 이용하고 싶다”는 평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지바현의 한 보육시설은 재택근무를 하는 부모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타깃 삼아 아이를 맡기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무료 공간을 마련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어 마쓰도시 등 잇따라 보육시설에서 이 같은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미술관을 사무실로 빌려주는 곳도 생겨났다. 나가노현 오부세마치 호쿠사이관은 관내 일부를 빌려주는 뮤지엄 오피스를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휴가도 즐기는 워케이션 수요를 노렸다. 이 미술관은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면서 지역활성화 연결을 목적으로 이 같은 시도를 펼치고 있다.

채현주 기자 183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