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몸소 경험한 코로나19 시대를 위로하다…‘해피랜드’ 시인 김해자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11-09 18:30 수정일 2021-06-12 04:07 발행일 2020-11-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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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작소]

신작 ‘해피랜드’를 출간한 김해자 시인(사진제공=아시아)

어쩌면 그의 삶은 치열했고 진보적이었으며 그럼으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문학도이던 젊은 시절은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인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암으로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로 인해 드나들던 병원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사태를 목도했고 스스로 ‘생체험’했다. 

이명이 이어지고 약으로 인한 상상의 세계들이 펼쳐지는가 하면 세상의 아픔들이 유독 더 예민하게 몸으로,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스며든 시대의 아픔은 시로 승화됐다. 전태일문학상, 백석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만해문학상, 구상문학상 수상자인 김해자 시인은 스스로를 ‘백수’이자 ‘초보 농사꾼’이라 지칭하며 해맑게도 웃는다. 

“농사 경력으로는 12년차지만 동네 어매들은 ‘쟤는 만날 풀 농사만 짓는가벼’ 할 정도로 초보죠. 흙과 가까워지면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암’이라는 시련과 함께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그는 해맑고 쾌활하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고 ‘말로 주고 되로 받으면서도 마냥 해실대는’ 시골 아낙들의 이상한 셈법에 위로받으며 천안과 아산을 잇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저를 이만큼 돌려놔 준 이들은 동네 어매들이에요. 매일 먹을 걸 올려주고 한 계절 농사 지은 작물들을 수시로 가져다 주면서도 커서 입지 못해 건넨 바지 5벌에 ‘돈 벌었다’고 웃는 사람들이죠.” 

김해자 신작 시집 ‘해피랜드’(사진제공=아시아)

이어 “그런 동네 어매들, 하루 동안 번 몇 페소를 나눠 갖는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 등을 보며 양가감정이 들고 교란되는 코로나시대를 살면서 망가져가는 대로 내버려두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엎드려 시를 썼죠. 우리의 아름다운 세계가 망가져 가는데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요.”

◇가장 큰 일은 삶 그 자체

“시적 장치나 미학 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아픔에서 벗어난다는 것, 산다는 것이 큰 일이었거든요.”

코로나19가 보통사람보다 좀 특별하게 다가오는 데에 대해 이렇게 전한 시인은 “시에서는 때로 가면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의 동시에 앓게 되면서 그 가면을 벗어 던졌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 확산 전후로 암 진단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그의 표현대로 “현대 의료체계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에 의존했다.” 이를 시인은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의 반복으로 여기기도 했다.

“MRI(자력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해 생체의 임의 단층상을 얻을 수 있는 첨단의학기계)를 찍는 것이 관속에 들어가는 기분이었고 수술을 받기 위해 전신마취를 하며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겪었어요. MRI 통 속에서는 톱니 갈리는 듯한 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요. 3, 40분 가량 지속되는 그 소리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그 소리를 내는 자기장이 나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스스로 공명하는 소리이자 세계가 내지르는 소리 같이 느껴졌던 당시의 경험은 ‘자기공명’이라는 시에 담겼다. 마취제도, 혈압약도 듣지 않는 몸을 그저 지켜만 봐야하는 심정은 ‘무명’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화학약품에 의지 하지 않고 먹거리로 해결하면서,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며 식재료를 연구하면서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을 떠올렸어요. 매일 아침 용감하게 직장에 나가지만 그 과정에 무의식적인 불안함에 겁에 질리기도 할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사는 수많은 딸뻘의 젊은 세대 이야기는 ‘돌미역귀’, 90도 언덕길을 밤낮없이 오르내리며 집 앞 택배를 말없이 두고 간 사람들, 30톤짜리 백화점 납품차량 바퀴에 끼어서도 치킨배달만 걱정하는 오토바이 배달부의 실화는 ‘둘 다 휘딱갔다’에 담았죠.”

신작 ‘해피랜드’를 출간한 김해자 시인(사진제공=아시아)

그는 “수술까지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저는 오토바이가 빠르게 질주하는 상황이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껴졌다”며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공포에 질린 상태로 납작 엎드려 메모한 것들, 제 고통에 파묻혀 언어화되지 못한 것들을 시집에 담았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가면을 벗고 미학적 표현을 싹 뺀, 최근 6개월 동안 쓴 시로 도배한 시집”이 ‘해피랜드’다.

“독자들을 고문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를 이만큼 놀려놔 준 동네 어매들, 그들과 먹고 노는 매일, 땅의 힘에서 오는 해학과 먹거리, 수다 등이 있어서 독자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겠다 싶었죠.”

◇양가감정이 드는 시대 그럼에도…

그의 귀농은 전북대 사범대학을 다니던 딸이 “애들이 무섭다”고 하면서였다. 그는 “제가 서울에서 무슨 위대한 일을 하나 싶어 귀농을 결행한 때가 2008년”이라며 “딸 덕에 시골로 오면서 제가 완전 바뀌었다”고 밝혔다. 

“몸으로 먼저 왔고 시절에 따라 스승이 나타났죠. 제가 발아할 씨앗이 생기면 흙을 제공해주고 바람도 그 방향으로 불어주는 것 같았어요.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 박성준 선생님…너무 많죠. 그분들 덕에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앙드레 고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등을 읽으면서 ‘왜 아직도 노동의 고용만을 고민하나’ 싶어 50대에 공부를 엄청나게 했어요.”

그리곤 “스승들을 만나면서 배운 이상하게 촌스러운 흙 얘기가 시로 들어온 것이 ‘해자네 점집’부터”라며 “몸이 소거돼 가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발로 생각해야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머리가 성한 시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발을 가진 사람들을 그까짓 것들로 치부하면서 부리는 신인류의 시대예요. 근대문명에 밀려난,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근대문명의 한계를 생각해야할 때죠. 자기답게 살지 못하면서 인간이 부서지고 고립되고 있어요. 젊은 청년들은 전화를 걸면서 음소거를 해요. 연결은 하고 싶은데 직접 얘기는 듣고 싶지 않은 거죠. 우리 삶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신작 ‘해피랜드’를 출간한 김해자 시인(사진제공=아시아)

그리곤 코로나19 시대를 담은 첫 번째 시 ‘마스크, 假面, 탈’에 대해 “마을에서는 맘껏 걸을 수 있는데 서울에 오면 겁난다”며 “마스크를 두 개씩 쓰고 본 인류의 풍경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멀리 사람을 피해가거나 돌아가는 등 아주 조신해졌어요. 그간 너무 직선으로, 최단거리로만 살아온 세상이 우회해서 돌아가고 있어요. 정말 공포스럽고 답답하지만 우리가 쉴 수 있는 휴식을 주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 묘한 양가감정이 생겨요.”

◇세상의 모든 백수여, 당당하라!

“저는 늘 얘기해요. ‘세상의 모든 백수여, 당당하라!’고. 아직 세상에 나오진 않았지만 네 안의 뜨거운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이 언젠가는 세상으로 쏟아질테니. 코로나19로 냉장고에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처박혔던 것들이 세상에 나와 쓰이곤 하잖아요.”

그리곤 “지금 사람들도 놀고먹고 얻어먹으면서 사는 재미를 좀 준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태기도 했다.

“제가 사는 집에서 쫓겨나게 돼서 이사를 가야하는데 청소를 해주겠다는 분이 있어요. 찰밥을 쪄서 솥째 들고 오는 분도 있어요. 이분들 중에는 전재산이 1000만원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있죠. 이 양반들이 몸으로 일깨워 주고 있으니 제가 엄살을 떨 수가 없어요. 인류의 가장 큰 재미는 나눠먹고 챙겨주고…머리가 아닌 발로 생각하고 사는 거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