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무엇을 위해 살죠?’ 30년 ‘딴따라’ JYP박진영의 고백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0-09-01 17:00 수정일 2020-09-01 17:00 발행일 2020-09-02 11면
인쇄아이콘
[Book] 박진영 인생 탐구 에세이 '무엇을 위해 살죠?'
2020090201010000352
박진영.(사진제공=JYP)

가수, 작사·작곡가, 프로듀서….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에게는 이외에도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90년대 신세대 대표가수, JYP 설립자, 원더걸스·2PM·트와이스의 아버지 그리고 일본 3차 한류의 보이지 않는 손까지.

1993년 파격적인 비닐 바지 의상으로 전 국민의 눈을 사로잡았던 연세대학생은 30여년만에 시가총액 1조원 규모의 기업 CCO(Chief Creative Officer)로 자리매김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인기 가수로 군림하며 젊은 나이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체를 일군 그의 발자취를 보면 오로지 성공외길을 걸었을 것 같지만 박진영은 신간 에세이 ‘무엇을 위해 살죠?’에서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박진영은 무너지지 않았다. 신앙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보기 드문 ‘제이웨이즈’(J-Ways)를 만들어 후학을 양성한다. 그 자신도 60살까지 무대에 서기 위한 혹독한 자기 관리를 병행 중이다. 가수 박진영의 커리어는 현재 진행형이다. ◇ “연대생이 왜 딴따라처럼 굴어” 한마디에 바뀐 삶

K822631455_f
‘무엇을 위해 살죠? ’ |박진영 지음 | 은행나무 | 1만 5000원 |사진제공=은행나무

1990년대 박진영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개성 강한 외모, 지금도 소화하기 힘든 비닐 의상, ‘연세대 지질학과’ 재학 중이라는 엘리트 배경까지. 당시에는 보기 드문 인지 부조화였다. 

박진영은 책 속에서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의 열혈 팬이었다고 고백한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했던 끼 많은 학생이었다.

연세대 진학 뒤 우연히 클럽에서 스타 작곡가 김창환을 만나 가수 데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작곡가 김형석에게 작곡의 기본을 배웠고 1993년 취입한 1집 ‘날 떠나지마’가 이듬해 큰 인기를 끌며 스타덤에 올랐다.

단순히 당시 인기에 취했다면 지금의 박진영은 없었을지 모른다. 일찌감치 여자친구의 존재를 고백한 뒤 인기가 떨어지는 현실을 겪으며 “20년 뒤를 바라보자” “인기를 인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만일 열성팬의 인기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의 박진영은 없었을 것”이라며 “인기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력을 쌓아 대중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K팝 가수들에게 꼭 필요한 명제기도 하다.

20대의 박진영은 권위에 맞서는 청춘이기도 했다. 각종 규제로 점철된 방송사의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파격적인 비닐 바지를 입었을 때 한 방송사 국장으로부터 “연세대 다니는 엘리트가 왜 딴따라들처럼 굴어?”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후 발표한 2집 앨범 제목을 ‘딴따라’로 지으며 가수들의 사회적 인식 개선에 앞섰다. 박진영은 지금도 각종 방송에서 ‘영원한 딴따라’로 불린다.

◇JYP설립… 성공 그리고 실패

1996년에는 JYP를 설립했다. 지금은 BTS(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의장이 초대 설립 멤버다. 수많은 인기가수를 발굴했다. 박진영은 “진주는 꿈을 향한 열정이, 김태우는 밝고 총명한 성품이 사랑스러웠다. 비는 우직하고 성실한 태도가 반하게 만들었다”고 적었다.

JYP 소속 가수들의 성공 요인은 ‘패키징’이었다. 박진영 자신이 작사·작곡·편곡·안무에 능했기에 일관성있는 프로듀싱이 가능했다. 소속가수의 이미지를 관찰하고 지금의 세계관에 달하는 종적 일관성을 갖춘 것도 성공에 한몫했다.

2003년 미국 진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맨몸으로 미국땅을 밟았다. 당시 주주들이 “1년 안에 빌보드 톱10 앨범에 곡을 수록하라”는 조건을 내걸자 11개월만에 빌보드 4위 앨범인 메이스의 ‘웰컴백’ 앨범에 ‘더 러브 유 니드’라는 곡을 수록했다. 첫 미국 진출 주자인 비는 2006년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이후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도모했지만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결국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첫 결혼 역시 파경의 아픔을 겪었다. 2000년대 말은 박진영에게 실패의 시간이었다.

◇신앙으로 극복…제이 웨이즈로 후학 양성

책의 전반부가 박진영의 살아온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박진영의 신앙 고백에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한때 신앙관 논란을 겪기도 했던 박진영은 책 속에서 자신이 왜 종교를 갖게 됐고 지금 자신의 삶과 JYP 기업 이념에 신앙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다. 이를테면 의사결정의 민주화, 직함없는 호칭, 탄력근로제, 인맥을 통한 인턴채용 금지, 룸살롱 출입금지, 친환경 사무실, 유기농 식당 등 업계에서 보기 드문 JYP만의 독특한 기업 이념 역시 신앙에 기초한 ‘제이 웨이즈’의 일환이다.

박진영은 책 속에서 “사람들 앞에서 조심하려고 하지 말고 조심할 게 없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그는 “멋진 말을 하는 건 쉽지만 멋진 삶을 사는 게 어렵다”며 “휴대폰이 해킹돼도 문제될 게 없는 삶을 사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기준”이라고 적었다. 업계에서 연습생들의 인성 교육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진 JYP만의 기업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