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엄친딸' 아닌 '이방인' 서동주의 고백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0-08-04 17:00 수정일 2020-08-04 17:00 발행일 2020-08-05 11면
인쇄아이콘
[BOOK] 에세이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낸 방송인 서동주
서동주
서동주 (사진제공=나인본스튜디오)

부모는 시대를 호령한 톱스타였다. 어릴 때부터 명석한 두뇌로 1등을 도맡아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으니 유학은 당연한 코스였다. 가족과 떨어져 살던 예민한 사춘기 소녀는 방학 때 돌아온 한국 집의 공기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점점 강압적으로 변해가는 아버지 밑에서 겪은 고통과 타지의 외로움은 일기를 쓰며 갈음했다.

톱스타 서세원·서정희의 딸이자 세계적인 로펌 ‘퍼킨스 코이’(Perkins Coie) 변호사가 된 서동주(37)의 이야기다. 서동주는 최근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을 발간했다. 그는 책 속에서 낯선 타국 땅에서 겪은 ‘이방인’의 삶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8994893377_f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 나로 돌아오는 시간들 ’| 서동주 지음 |실크로드 | 1만4,500원 |사진제공=실크로드

웰즐리 대학에 순수미술 전공으로 진학했지만 더 좋은 스펙을 원했던 부친의 강요로 MIT 편입 후 와튼 스쿨에 진학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가 결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마저 순탄하지 못했다. 부모도, 자신도 이혼했다.

어머니를 때린 부친과는 인연을 끊었다. 20대와 30대를 웬만한 막장 드라마 주인공 못지 않게 롤러코스터처럼 보냈다.

“제가 블로그에 써왔던 일기를 재구성했어요. 사람들 눈에는 ‘엄친딸’로 보였던 서동주도 나름의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죠. 힘든 시기를 겪으며 혼자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나만 힘든 게 아니다, 힘든 건 지나간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면을 공개한 건 과거가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동주는 “제 가정사는 지금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이라며 “TV에서 어떤 교수가 강연하는 모습을 보니 수치스러운 일이나 창피한 걸 드러낼 때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 그 뒤로 조금 더 마음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디어나 블로그를 통해 서동주의 이야기를 접한 팬들이 그의 SNS계정으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 팬은 1년 넘게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동주는 “상담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가능한 꾸준히 답을 주려고 한다. 힘든 시간을 먼저 겪은 언니의 입장에서 대화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작 서동주가 힘들었던 시기에는 누구에게 의지했을까. 그는 “주변의 멘토와 학교 선배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SeoDongJoo001
서동주 (사진제공=나인본스튜디오)

“로스쿨에 진학한 첫 학기에 C를 받았어요. 당시 이혼하고 혼자 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죠. 하지만 선배들이 졸업 전까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어요. 변호사 개업을 한 한인 선배는 제가 명절 때 혼자 있는 걸 알고 종종 식사에 초대해주시곤 했죠. 제 이혼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도 저를 딸처럼 아껴주셨어요. 늘 너무 말라서 안쓰럽다고 스테이크를 사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죠. 이런 따뜻한 분들이 주변에 있어서 지금의 변호사 서동주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서동주는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환경과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부친을 비난하기 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레코드판을 들고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연민의 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서동주 이미지_03
서동주 (사진제공=나인본 스튜디오)

“자식은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는 게 가장 좋지만 때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저 역시 그랬죠. 가족은 소중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지금의 형태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서동주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바쁜 나날을 예약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 변호사들도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지만 ‘본캐릭터’에 충실해야 하는 만큼 연말까지는 미국에서 변호사 업무에 충실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방송인 서동주’라는 부캐릭터로 대중과 호흡한다. 연인과의 사랑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다만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쯤 되면 서동주를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동주는 “이방인이어도 외롭고 쓸쓸할 필요는 없다”며 ‘이방인’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누구든 이방인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방인이 아웃사이더나 왕따의 의미는 아닙니다. 저 역시 이방인으로 살아왔지만 외롭고 쓸쓸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의 저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려움도 많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삶을 위해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