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규제의 역설> 최성락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8-01 07:00 수정일 2020-08-01 07:00 발행일 2020-07-31 99면
인쇄아이콘
'규제'를 잘못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관한 고찰
rbwp

어느 나라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만든다. 규제의 많고 적음, 규제의 적합성 여부 등을 놓고 그 나라에 대한 평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규제는 선의(善意)로 시작한다. 국만을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개발되어 보편화되고 진화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규제의 역설’이 뒤따른다. 당초 기대했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 원래의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규제 도입으로 인해 엄청난 분란과 갈등이 조장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규제의 역설과 관련한 국내외 사례들을 소개한다. 정책 책임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 로베스 피에르의 ‘우유 파동’ - 프랑스 대혁명 후 집권한 급진파 자코뱅당의 로베스 피에르는 우유 값이 계속 올라 국민들이 힘들어하자 일정 가격 이상으로 유유를 파는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조치를 내렸다. 덕분에 가격은 내려갔다. 하지만 시장에서 우유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사료값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가격이 낮아 적자가 나니 목장 주인들이 시장에 우유를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들은 암시장에서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우유를 살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번에는 목초 사료 가격을 낮춰 목장주인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시장에서 사료가 사라졌다. 우유 값은 더욱 폭등했고 덩달아 치즈 등 유제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국민들에게 저렴한 유유를 제공하려던 선의가 오히려 국민들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이다. 결국 로베스 피에르는 길로틴 처형장으로 향하는 신세가 되었다.

* 코브라의 역설 - 영국 신민 정부는 인도 식민지에 코브라가 너무 많아 위험하다고 보았다. 이에 코브라 개체 수 감축을 위해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코브라를 잡아 와 포상금을 챙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고 수는 줄고 코브라 수는 더 늘어만 갔다. 알고보니 포상금을 노리고 집집마다 코브라를 사육해 키웠던 것이다. 결국 지원금 정책은 폐지되었고, 값어치가 없어진 코브라들은 숲속으로 버려졌다. 이후 오히려 코브라에 다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 옐로스톤 늑대의 패러독스 - 옐로스톤은 미국 중부에 위치한 자연공원이다.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면적이 한국 전체 11분의 정도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그런데 너무 많은 늑대가 사슴은 물론 목축 농가의 가축까지 해치는 바람에 골치거리였다. 정부는 늑대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총과 덫을 사용해 늑대몰이에 나섰고, 늑대는 결국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천적이던 늑대의 공포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사슴 수가 폭증했고, 마을 피해는 오히려 더 커졌다. 결국 공원 측은 13마리의 늑대를 다시 공원에 풀어놓기로 결정했다. 늑대가 다시 엘로스톤에 나타나면서 숲의 생태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 교통사고를 더 늘리는 교통표지판 - 영국 런던의 켄싱턴 하이스트리트는 유명 쇼핑가로 늘 교통이 붐비는 곳이었다. 온갖 교통표지판이 거리 미관을 크게 해쳤다. 지자체 정부는 과감하게 거리에 늘어져 있는 교통 표지판을 치워버리기로 결정하고, 거리에 있던 교통안전 시설물의 95%를 없애 버렸다. 그러자 교통사고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안내 표지판이 없으니 차들이 서행 안전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보행자들도 조심스럽게 거리를 다니게 되어 사고 전체가 줄어든 것이다.

* 건강을 해치는 건강 검진의 역설 - 건강 검진을 자주 하면 사람들이 더 건강해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라고 한다. 건강에 계속 신경을 쓰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마음 속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건강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다. 우리와 달리 유럽은 건강 검진이 많지 않다고 한다. 병을 발견하기 위해 해 마다 건강 검진을 하는 것과, 그냥 검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중에 후자를 택하는 것이 건강에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 2008년 금융위기 부른 클린턴 대통령의 ‘닌자론’ -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로 시작되었다. 집을 구매할 때 집값의 10%만 자기 돈이 있으면 나머지 90%를 은행에서 빌려 주었다. 당시만 해도 집값이 계속 오르던 상황이라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자와 원금을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결국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졌다. 2000년대에 은행들이 아무에게나 집 살 돈을 빌려준 것은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이 실시한 닌자 론(대출) 때문이었다. 클린턴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집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소득이나 직업, 자산이 없어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주택 버블 붕괴와 함께 재앙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 노동자 소득을 더 감소시키는 최저임금제 - 경제원론 교과서를 보면 최저임금에 관해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가시키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를 어렵게 하는 정책’이라고 기술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월급이 조금 오르는 이익과 일자리를 잃는 손실을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노동자 복지를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이 최저임금제를 엄격히 시행하지 않는 이유도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복지를 증진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본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8년에 최저임금을 16.4%나 올리자 실업률이 0.1%포인트 올랐다. 실업률 통계에서 0.1%는 5만명이다.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정부와 공공기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 실업자를 늘린 ‘비정규직 보호법’ - 외횐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자 2007년 7월에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이 만들어 졌다.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거나 최소한 무기계약직으로 바꾸어 주도록 의무화했다. 2008년 이후 확실히 비정규직은 줄고 정규직은 늘었다. 하지만 더 많은 비정규직들은 기간제나 파견제 비정규직에서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이동했다. 기업의 일자리 자체도 줄었다. 소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이익을 보는 결과 속에,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비정규직 일자리만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

* 특성화고 취업을 막은 ‘학생 안전대책’ - 2017년 11월 제주도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이듬해 3월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 실습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만들었다. 정부 심사를 받고 안전 기준을 통과한 기업에만 현장 실습을 허용키로 했다. 졸업 전 현장 실습 후 미리 취업하는 것도 금지했다. 6개월이었던 기업 현장실습 기간도 3개월로 줄였다. 더 이상 현장실습에 나갈 수 없게 되니 다칠 일도 없었다. 기업들도 도움이 안되는 학생들을 일부러 받아 일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이전에는 졸업 후 취업이라는 약속 하에 학생들을 받아 가르쳤으나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현장실습생을 받으려 정부에 신청하고 심사받는 기업이 나올 리 없었다. 결국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백수가 불가피해졌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 쪽으로 눈을 돌렸다. 2017년 32.8%였던 대학 진학률이 2019년에는 42.5%로 껑충 뛰었다. 특성화고에 들어갈 이유도 없어졌다. 진학자 수가 2017년 8만 1894명에서 2018년에는 7만 8630명으로 줄었다.

* 강사 일자리를 없애는 ‘대학 강사법’ - 계약직이라 신분 보장이 안되어 경제적 어려움이 컸던 시간 강사들을 돕기 위해 2018년 11월에 대학 강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4대 보험도 들어주고 신분 보장도 해 주고 방학 때 임금도 주자는 취지였다. 시간 강사는 4개월 정도 계약단위인데 강의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았다. 3학점을 맡으면 한달에 5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대학 강사법이 만들어지면서 시간 강사를 채용할 경우 1년 동안 임기가 보장되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3년까지 재계약을 보장해 주도록 했다. 하지만 강사들이 오히려 이 법을 반대했다. 2019년 8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자 실제로 8000명 정도의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대학 강의 구조를 간과한 탓이었다. 교원으로 대우받게 된 시간강사는 최소한 9학점을 맡아야 했다. 당연히 한 명은 3년 계약이 보장되지만 나머지 더 많은 강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가 대량해고 사태를 막으려 지원금까지 주었으나 전체 강사의 15%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 장애인들이 반대한 장애인 지원정책 - 2019년 7월 장애 등급제가 폐지되어 경증 장애인에게도 도우미 서비스가 제공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증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정부 규탄시위를 벌였다. 경증 장애인까지 8만1000명의 장애인들이 도우미 서비스를 받게 해 주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관련 예산이 그만큼 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중증장애인으로 도우미 서비스를 받았던 사람들이 보다 적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받아야 했고, 결국 서비스 부실로 이어졌다. 저임금으로 꾸리던 도우미들이 오전 혹은 오후로 나눠 중증 장애인을 돌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석유부국 베네수엘라를 빈국으로 만든 ‘마진 30%룰’ -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 정책의 대표적인 나라로 평가된다. 석유로 번 돈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마구 뿌려대다가 석유값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정작 베네수엘라를 빈국으로 내 몬 진짜 이유는 마구로 대통령이 만든 ‘마진 30% 룰’ 때문이었다. 원가에서 30% 이상 이윤을 붙여 팔면 기업주를 구속시키고 사업체를 몰수해 국유화토록 한 이 법이 문제였다. 마진 30%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 경우 기업이 생산한 모든 물건이 다 팔린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손실만 날 뿐임을 간과한 것이다. 유통 기한이 짧은 농수산물에서 이 제도의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마진을 챙기다간 구속될 상황이니, 기업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업활동을 접는 것 밖에 없었다. 실제로 3년 동안 무려 80%의 기업체가 사라졌다. 국민을 위하려던 규제가 국민의 삶을 망친 셈이다.

* 빈부격차 해소에 실패한 부유세 - 많은 유럽 복지국가들이 부유세를 도입했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소득세 최고세율이 87%에 이를 정도였다. 소득 증가에 따른 연금 추가징수 등을 감안하면 결국 세율이 100%가 넘었다. 순자산 자체에도 4%의 부유세를 부과했다. 견디다 못한 부자들이 엑소더스를 택했다. 유명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독일로 이주했고, 그러자 스웨덴 영화산업도 쇠락했다. 프랑스 부자들도 탈출 러시를 보였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부유세를 피해 떠난 사람들의 자산이 2000억 유로에 달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 정부가 거둔 부유세가 36억 유로였다. 36억 유로 벌자고 2000억 유로를 놓친 셈이다. 독일도 금융자산에 세금을 뭉터기로 내리자 이를 비금융자산으로 옮기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렀고 서민들의 월세난이 야기됐다. 이후 유럽 대부분 나라들이 부유세를 포기하고 있다. 2019년에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 스위스 4개 나라만 부유세를 운용하고 있다. 스위스도 세율이 0.1%에 불과할 정도다.

* 게으름을 퍼뜨린 ‘동일노동 동일임금’ - 1848년 2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프랑스 정권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임금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우선적으로 적용된 업종 중 하나가 재봉사들이었다. 하지만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나 농땡이를 펴나 똑같이 임금이 받으니 열심히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 일자리 줄인 푸드 트럭 활성화 조치 - 2014년부터 한국에서 푸드 트럭 허가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교통이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들은 대부분 불법 포장마차들이 들어서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 푸드 트럭 영업을 하니 당연히 수익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정부가 불법 포장마차를 푸드트럭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전에 7개 포장마차가 있었던 자리에 이젠 4대의 푸드트럭만 자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추첨으로 3개월 동안만 한 장소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바람에 경쟁률이 심했고 결국 3개월 짜리 임시 일자리가 되어 버렸다.

* 막걸리 시장을 축소시킨 ‘중소기업적합업종’ - 2010년에 중소기업을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부활했다. 대기업이 진출해 있던 막걸리 시장에도 변화가 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고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판매를 한 덕분에 우리나라 막걸리 경쟁력은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2007년에 17만㎘ 수준이던 출고량이 2011년에는 45㎘를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2011년에 막걸리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시장은 곧바로 하락세로 돌았다. 대기업은 더 이상 연구개발을 하지 않았고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도 없고 영업 루트도 없었다.

* 관세보복과 대공항 야기한 관세전쟁 - 경제학자들은 1929년 대공황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스무트-할리법’을 든다. 1929년 5월과 1930년 3월에 각각 미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은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올리자는 게 핵심이었다. 미국 산업을 지키려는 특단의 조치였다. 당시 미국 경제학자들이 파장을 고려해 극렬히 반대했지만 수입품 2만여개에 평균 59.1%의 고율 관세가 부과됐다. 그러자 다른 나라들도 미국 수출품에 대해 고율이 관세를 매기며 무역 보복에 나섰다. 수출이 어려워지니 미국 근로자들은 해고 당하고 수입은 줄고 상품 구매도 줄어 결국 대공황을 불렀다.

* 전통시장 매출을 줄이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 한국은 2011년부터 대형마트에 대해 한 달에 2번 의무휴업을 강제하고 있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이후 대형마트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급격히 감소했는데, 전통시장 역시 급격히 감소했다. 조춘한 교수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를 가지 못한 소비자들이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 대신 대형 슈퍼마켓으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대형마트가 의무휴업하는 날 주변 상가들의 매출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단말기 소비자 가격을 높인 ‘단말기유통법’ - 2014년 10월부터 단말기 유통법구조 개선법이 시행됐다. 과도하고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를 만들어 이용자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통신사들은 통화 품질이 비슷해 가격 외에는 소비자를 유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싼 가격으로 기기를 판매했고, 다른 통신사 고객을 빼오려 다양한 할인 혜택을 주었다. 단통법은 보조금 최대한도를 35만원으로 책정했기에 소비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정부는 당초 단통법을 시행하면 단말기 업체들이 가격을 낮춰 공급하리라 기대했지만 제조사들은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해외 판매가격과 비교해 국내에서만 낮춰 공급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가격은 낮아지지 않고 단말기 보조금만 줄었다. 이익을 본 것은 마케팅 비용이 크게 줄어든 통신사들 뿐이었다.

* 가격 폭등을 부른 비트코인 규제 - 비트 코인 광풍이 불자 2017년 10월에 정부의 규제책들이 발표됐다. 정부는 비트 코인을 사기 위한 해외송금을 금지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비트코인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다. 비트코인은 원래 나라마다 가격 차가 크지 않은 구조였음에도 한국만 예외적으로 크게 올랐다. 규제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고, 그래서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은 훨씬 비쌀 수 밖에 없었다.

* 실무능력을 도외시한 로스쿨 임용규정 - 현재 한국에서는 25개 대학에서 로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로스쿨위원회는 각 로스쿨에서 어떤 교수를 채용하는지를 보고 점수를 매긴다. 자질 미달의 교수를 뽑지 말고 실력있는 교수를 선발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2016년 당시 법조 경력 30년에 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을 15년 동안 역임했던 권오곤 국제법연구소장의 모 로스쿨 행이 좌절되는 일이 발생했다. 위원회가 만든 논문 연구 평가 점수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문 실적이 5년간 150점이 넘어야 하는데 권 소장은 80점이었다. 그를 채용하면 로스쿨 평가점수가 깎이기에 어느 대학도 그를 받아줄 수 없었다. 교육부의 법학교육위원회 논문 평가 기준을 그대로 베껴 온 것 탓에, 실무능력을 가르치는 로스쿨에서 이론점수만 집착해 일어난 해프닝이다.

* 산학 협력을 가로막는 ‘산학협력법’ - 대학 교수는 다른 곳에서 돈을 버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대학이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상업화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지적되자 정부가 산학협력법을 만들었다. 학교에 산학연 협력 기술지주회사를 허용하고,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려는 기업의 대주주가 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문제는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토록 한 규정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5년 이내에 주식을 모두 팔아야 했다. 기업이 다른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받게 되면 지주회사 지분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20년 1월에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였던 AI 스타트업 수아랩이 2300억원에 팔렸는데, 2015년에 이 회사에 1억원을 투자했던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한 푼도 벌지 못했다. 20% 룰 때문에 2017년에 이미 지분을 전량 매각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10%로 기준을 낮췄으나 별 차이는 없었다.

* 지키면 더 불리해 지는 ‘공정력 제도’ - 2012년 1월에 정부는 대규모 점포와 준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을 지정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각 지자체는 이 법에 의거해 조례를 만들고 해당 지역 대형마트들은 의무휴업에 들어갔다. 이 때 지자체 조례에는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한 반면, 법에는 ‘지정할 수 있다’로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대형 마트들이 지자체의 일방적 조치에 항의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코스트코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고 지침을 따랐다. 그런데 행정소송에서 지자체 의무휴업 규제가 위법으로 나왔다. 코스트코도 당연히 다시 예전처럼 휴일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이것이 위법이라며 영업정지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규제할 때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그 규제는 정당한 것으로 본다’는 행정소송법 상 ‘공정력’ 규정 때문이었다. 정부 규제에 토를 달지 않았던 코스트코이니 영업을 재개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공정력 제도는 규제에 순응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는 역설적 교훈을 알려준 사례로 기록된다.

* 빠져서 이득 본 대학평가 - 2015년에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대학을 평가해 그 결과에 따라 입학생 수를 조정하도록 했다. 각 대학을 특성화해 대학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 표면적인 목적이었다. A~E까지 등급을 매겨 A를 받으면 정원 유지, B는 10% 감축, C와 D는 30%와 50% 감축토록 했다. E등급은 퇴출이다. 교육부는 대학이 자원해 대학평가를 받으면 지원금을 주지만, 자원하지 않으면 정부 사업 참여나 지원금은 없다고 공고했다. 몇 몇 대학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평가가 이뤄졌고, 2015년 대학평가에서 D, E 등급을 받은 대학들이 지역사회 여론을 업고 거세게 저항했다. 특히 사립대학을 정부가 문 닫게 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거셌다. 2010년대 말이 되면서 더 이상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정원은 줄고 등록금 수입도 줄었다.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들은 이런 불이익에서 벗어나 정원도 그대로 유지하고 등록금도 줄지 않았다. 결국 2019년이 되어 이 대학 구조조정은 유야무야되었고 대학 정원 조정은 각 대학 자율조정으로 넘겨졌다. 정부 규제를 무시하고 따르지 않은 대학은 나아졌고, 정부 방침을 따른 대학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큰 어려움을 겪은 사례다.

* 파산자 늘리는 고리대금 이자규제 - 현재 은행 등 금융기관의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4%다. 20%인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많은 나라들이 고리대금 이자율을 규제하지 않는다. 이자율을 너무 낮추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은 대개 신용등급 7등급 이하다. 대부업자들은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고려해 적정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이자율을 정한다. 2019년부터 연 이자율을 27.9%에서 24% 로 낮추자 당장 대부업자들은 신규 대출을 줄였다. 2017년 하반기에 3조3640억원을 대출했다가 2019년 상반기에는 2조862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그 결과 파산 신청이 줄을 이었다. 2018년 파산 신청자가 4만3402명이었는데 2019년에는 4만5642명으로 5% 이상 늘었다. 개인회생신청자도 1300명 가량 증가했다.

* 도박 중독을 심화시키는 카지노 입장 제한 -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는 한 번에 10만원 이상 베팅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외에 입장 제한 규제도 있다. 도박 중독을 막기 위해 한 달에 15일까지만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2개월 연속해서 15일을 출입하려면 리조트 카드를 의무적으로 발급받고 중독예방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3달 사이에 30일 이상 출입하는 사람도 의무교육 대상이다. 하지만 이 규제 때문에 정선을 들어가지 못하는 중독자들이 가는 곳이 온라인 카지노 혹은 사설 카지노 같은 불법 카지노들이다. 실제 도박 중독자들은 합법 도박이 아닌 불법도박에서 대부분 나온다. 최대한 합법적인 도박 영역으로 묶어 두어야 도박 중독을 줄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