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삶의 차용, 예술에 대한 숙고…연극 ‘마우스피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7-18 17:00 수정일 2020-07-18 15:59 발행일 2020-07-1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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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피스
연극 ‘마우스피스’ 부새롬 연출(왼쪽부터), 리비 역의 김여진, 데클란 장률, 리비 김신록, 데클란 이휘종(연합)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약간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렴풋이 저희가 느껴왔던, 한국 연극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태껏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이 이 연극을 향유할 수 있었나…그 고민을 계속 하게 됐죠.”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열린 연극 ‘마우스피스’(9월 6일까지) 프레스콜에서 리비 역의 김여진은 이렇게 전했다. 연극 ‘마우스피스’는 한때는 촉망받았지만 슬럼프에 빠져 있는 작가 리비(김신록·김여진, 이하 가나다 순)와 부모,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방치돼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펼치지지 못하는 데클란(이휘종·장률)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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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데클란 역의 장률(사진제공=연극열전)

◇만날 수 없는 이들의 만남, 감정의 경계에서 불거지는 질문들“만남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었어요. 물리적으로 어른인 사람과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하고 경계에 있는 사람이 만나 예술, 삶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만남이 잘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우리 삶과 맞닿아 있죠.”

2018년 ‘킬롤로지’ 이후 2년만에 무대에 돌아와 데클란을 연기하고 있는 장률은 이렇게 전하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뜨겁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여러 주제들이 많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부새롬 연출의 말처럼 연극 ‘마우스피스’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며 그들이 겪는 “감정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부새롬 연출은 리비와 데클란의 관계에 대해 “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에로틱한 사랑도, 동등한 친구도 아니지만 또 친구이기도 해요. 춤추고 놀 때는 친구 같지만 때로는 리비가 엄마 같기도 하죠. 서로 같은 일을 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영감을 주고 그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북돋워줘요. 둘의 관계가 좋을 때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감정을 주고 받았죠. 하지만 계급, 나이 등으로 조금씩 미끄러져 만날 수 없는 관계임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랑을 나눈다는 것도 본능적인 힘인데 그것도 잘 이뤄지지 않죠.”

부새롬 연출의 말처럼 동등하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가 함축한 사회,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여진은 “배우 입장에서는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리비가 미워지기도 했고 내 치부가 드러난 듯 수치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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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리비 역의 김여진(사진제공=연극열전)

“제가 맡은 인물임에도 미워했던 시기가 있었죠. 하지만 나는 작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볼 수 없는 사람이 분명 있고 극 중 데클란도 못봤을 가능성이 크죠. 그 괴로움이 쉽게 나아지질 않았어요.”

김여진의 전언처럼 극 중 데클란이 자신의 이야기기도 한 리비의 연극을 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김여진을 괴롭혔던 ‘(볼 수 없는 사람이 분명 있는)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진짜가 얼마나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 vs 정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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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리비 역의 김신록(사진제공=연극열전)
리비 역의 또 다른 배우 김신록은 “내용 자체가 예술의 소재가 되는 사람, 문화 자본이든 나이, 경험에서든 나보다 부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상화되는 이야기로 읽히기 쉬운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예술은 무엇인가, 연극은 인간의 삶, 인간 자체를 소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예술인데 (예술가가 소재로 삼은 인물)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너무 쉽게 리비가, 예술가가 대상화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진정성을 가지고 했지만 닿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어렵게나마 다가갈 수도 있죠. ‘진짜가 얼마나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라는 대사처럼 어떻게든 진실에 가 닿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채 차용돼 예술이 된 삶과 그 삶의 주인이 행하는 선택, 이를 차용해 이야기로 만들어낸 예술가가 항변하는 진정성 등은 예술계와 예술가들이 늘 숙고하고 탐구하는 있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동등하다고 믿었던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관계가 어떻게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와 권리를 결정짓는 사회·경제적 차이를 만드는지의 과정을 따르는 극은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화자본이라는 또 다른 권력과 차별, 계층간 문화 격차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 등을 담아내기도 한다.

‘마우스피스’는 리비의 “진짜가 얼마나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와 데클란의 “정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팔거든요”라는, 전혀 다른 말 같지만 일맥상통하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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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공연장면(사진제공=연극열전)

리비와 데클란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리비가 데클란의 삶을 소재로 쓰고 있거나 탈고 후 무대에 올린 작품을 소재로 삼은 연극 ‘마우스피스’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데클란 역의 장률은 “카페에서 리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중 ‘정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팔거든요’라는 대사가 가장 와닿는다”고 꼽았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가는 자체에 대해 충분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하면서 예술계 배우로서 현존하며 무대에 서는 제가 한번 더 사유해야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밝힌 장률에 이휘종은 “언덕 위에서 마리화나를 하면서 이야기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대사가 리비가 쓴 결말, (장)률 형이 말한 카페에서의 대화로 닿아있어서 좋아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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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우스피스’ 데클란 역의 이휘종(사진제공=연극열전)

“일, 관계,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등 지금 어떤 고민을 하든 공감대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어떤 지점이든 맞닿아 있을 것이고 관객 모두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김여진의 말에 이휘종은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신록은 “무대 위에 올라온 인물들이 삶의 의미가 있다는 걸 절박하게 믿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삶이 의미 없어지는 순간, 그럼에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내가 할 수 는 것들을 하면서, 남이 규정한 데서 뛰쳐나가서라도 살아보려는 용기를 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죠. 그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