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책]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아날로그를 그리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7-04 14:10 수정일 2020-07-04 14:10 발행일 2020-07-0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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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아날로그를 그리다 | 잔잔하게 스며드는 추억으로의 여행 | 유림 지음(사진제공=행복우물)

기술은 최첨단화되고 인공지능(AI)이 상용화된 시대일수록 귀중해지는 것들이 있다.

지글거리며 돌다 이따금 튀기도 하는 LP판 소리, 연필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 달동네 어딘가에서 느슨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 필름카메라와 흑백사진, 일렁이는 촛불, 누군가의 뒷모습, 골목 앞 포장마차….

글 쓰는 사진작가 유림이 여성 잡지에 연재했던 글과 사진들을 엮어 ‘아날로그를 그리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想(상)-기억 속 어딘가’ ‘情(정)-가끔은, 온기’ ‘悲(비)-삼킬 수 없었지만’ ‘嬉(희)-아직은 낭만’ 감성적인 4개의 감정 아래 낡은 서랍 속에서 꺼냈음직한 48개의 기억과 정서들이 흑백사진과 함께 실렸다.

사라져서 만나기 힘든 사물들과 공간들을 찾아다니는 작가는 때로는 예민하고 날카롭게 또 때로는 따뜻하게 추억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것들로 위안을 전한다.

책 속 풍경들은 누군가에게는 촌스럽게 또 어떤 이에게는 별나게 혹은 궁상맞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풍경들은 유림 작가가 적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글귀처럼 “느리게 걷고 싶거나 혹은 주저 앉고 싶은 날” 찾게 되는 은신처처럼 잊혔던 과거의 나, 이별한 누군가, 당시에는 아팠고 미웠고 서러웠지만 그 마저도 그리움이 되는 순간들을 잔상처럼 남기며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