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 “나도 펀드 사기 피해자”

유혜진 기자
입력일 2020-06-30 13:39 수정일 2020-06-30 16:07 발행일 2020-07-0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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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이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감원이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를 해결하라”고 외치고 있다. ‘옵티머스 부실 관리, 판매사는 무슨 죄냐’고 묻는 글판이 보인다. (연합)

# 나근면(가명)씨가 자주 가던 백화점으로부터 어느 날 연락을 받았다. “아주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고, “우수 고객(VIP)에게만 알려준다”고, “이미 여럿이 샀으며 조금 있으면 동 날 것 같으니 얼른 와서 사가라”고. 백화점에서는 그 물건에 대해 ‘정부가 보증하는 지역 특산물’이라고 했다. 그럴듯하게 선물 포장돼있었다. 근면씨는 백화점 점원에게 “진짜로 정부가 보증했느냐”고 되묻고 “안전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까지 오가기 번거로우니 집 앞 가게에서 살까’ 하다가도 ‘백화점 물건이 더 좋겠지’ 싶어 구매를 결정했다. 그런데 집 와서 보니 선물 상자에 벽돌이 들어있다. 화가 난 근면씨는 백화점 가서 따졌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성실하게 돈 모아 산 건데 이게 무엇이냐”고, “내 돈 돌려 달라”고. 백화점에서는 “우리도 당했다”고 했다. ‘포장지에 싸여서 그 안에 다른 게 들었는지 몰랐다’나. 이윽고 백화점 점원들은 정부 청사 앞에서 “정부가 감독을 잘못해 이상한 물건이 왔으니 정부가 해결하라”고 시위했다.

백화점도 사기 피해자일까. 그렇다면 근면씨가 백화점은 건너뛰고 물건 생산업체 사장 멱살을 잡아야 할까. 일단 정부에 소비자 보호 민원을 넣었지만 속상하기만 하다.

금융투자업계에 이런 일이 줄줄이 터졌다. 일부 사모펀드에 넣은 돈을 되찾기 힘들어졌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넣겠다며 투자자로부터 돈 끌어왔다. 하지만 서류를 위조해 실제로는 대부 업체와 부실 기업 등에 투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직원들은 회사 관두고, 환매 못하는 투자금이 1000억원 넘는다.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케이프투자증권, 대신증권 등이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를 팔았다. 투자자들은 “판매사가 상품을 검증했어야 할뿐더러 우리는 판매사 믿고 가입했다”며 “판매사가 우선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팝펀딩 사모펀드 환매도 막혔다. 팝펀딩은 개인간거래(P2P) 대출 회사다.

투자자는 “내 돈만 날렸다”고 하는데, 증권사마저 “우리도 피해자”라고 나섰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판매사들이 운용사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운용사가 펀드 자산을 바꾸고 서류까지 위조한 줄 몰랐다는 항변이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과 NH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들은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의 상환 불능 사태를 금감원이 해결해야 한다”고 외쳤다. ‘옵티머스 부실 관리, 판매사는 무슨 죄냐’고 묻는 글판을 들고 있었다. 금감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사모펀드 실태를 살펴보며 옵티머스자산운용까지 점검 대상에 넣었지만, 이번 문제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또 당국이 사모펀드 규제 푼 게 화근이라고 짚었다.

당국은 운용사부터 검사해 시비 가리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모펀드 파는 과정에 불법이나 투자자 보호 문제가 있는지 최선을 다해 검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사모펀드 검사하는 데 차질을 빚었다”며 “현장에 못 가서 서면으로 점검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유혜진 기자 langchemist@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