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태영호의 서울생활> 태영호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4-14 07:00 수정일 2020-05-29 10:50 발행일 2020-04-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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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얼마 전 신간 가운데 <월북하는 심리학>(김태형 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필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북한에 대해 상상 이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내용과 수위의 책도 이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민주화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차에 <태영호의 서울생활>이라는 책이 나왔다. 언론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저자가 전해주는 북한 생활에 관한 정보가 <월북하는 심리학>에서 읽은 정보와 적지않이 대비가 되었다. 북한의 최근 상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듯 하다.

* 북한에선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전기와 수돗물, 난방 - 평양시에서는 중심 구역인 중구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구역에서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한 두시간 정도씩만 전기가 공급된다고 한다. 수돗물은 전기가 들어올 때만 나온다고 한다. 고층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장도 전기가 들어올 때만 작동되니 하루이틀에 한 번씩만 나온다고 저자는 전한다. 전기가 없으니 고층 아파트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 북한에서 일등 신랑감 ‘운전기사’ - 북한에서는 운전을 공식적으로 배우려면 당 조직의 추천을 받아 운전사 학교에 가야 한다. 1년 정도 다니고 졸업하면 자격증이 부여된다. 북한에서는 운전사 학교에 가는 것이 일류대학 들어가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자기 생산 수단이 생기는 것이어서 인기가 많단다. 김일성 대학 졸업생보다 운전기사가 더 사위감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김일성 대학을 나와도 10년 안에 자기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지만 택시 기사는 몇 년 만에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평양에서 대박난 아메리카노 - 평양에서 커피숍은 대체로 젊은 남녀가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는 곳이다. 2008년 초 평양시 중심부, 그것도 김일성광장 옆 조선미술박물관 건물 한 모퉁이에 커피 숍이 처음 들어섰다고 한다. 커피 한 잔 가격은 3달러 정도. 상류층 자제인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돈을 받아 구름 같이 몰려왔다고 한다.

* 사회적 지위 평가 기준이 되는 ‘귤’ -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후 김일성 생일(4월15일)과 자기 생일(2월16일)에 일본 조총련을 통해 일본 귤을 수입해 간부들에 지급했다. 이 후 명절 때마다 김정일로부터 귤 박스를 받는 지 여부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 아무나 못들어가는 평양외국인학교 - 북한의 영어 교육은 주입식에 기초한 스파르타식 회화 위주 교육이다. 한국이 취업용이라면, 북한은 외국인과의 소통용인 셈이다. 평양외국어학원은 수업시작 전 30분 동안 아침읽기를 진행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부모나 가까운 친척 중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평양외국어학원이다. 가슴에 배지를 달아주어 차별적 우월감을 심어준다.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 평양 지하철역은 도서관 - 북한의 자랑 중 첫째로 꼽히는 것이 평양 지하철이다. 핵전쟁을 준비하다 보니 평양지하철은 지하 100m 깊이에 건설되었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구간도 없다. (서울은 평균 20m 깊이다.) 반공대피훈련을 하면 100만명은 들어간다고 한다. 지하철 운임은 10원으로 거의 공짜다. 역 마다 미술박물관으로 조성해 학생들에게는 도서관 같은 역할도 한다. 정전 염려도 없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가장 좋은 학습 장소다.

* 북한의 부동산 거래 - 이름 뿐인 북한의 연금제가 무너지자, 간부들은 힘들게 벌어들인 외화로 주택 건설을 시작했다. 북에서는 국가가 주택을 건설해 주민에게 무상으로 주는데, 소유권은 주지 않고 사용권만 부여한다. 그런데 장마당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불법으로 돈을 주고 좋은 주택 사용권과 교환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간부들이 슬며시 사용권 교환을 합법화시켰고, 이후 정식 부동산 거래소도 없지만 불법 브로커와 불법 주택거래장소가 생겼다.

* 철저한 신분사회 북한 - 북한은 철저한 신분사회로 인구 1%도 안되는 핵심 상층 계층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 엘리트층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수평식 좌우 이동만 존재한다. 고시 같은 제도도 없어 신분상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신분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 하층 계급 자녀가 국가 지도층으로 대거 들어오면 북한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원천 봉쇄되고 있다. 신분은 물론 직업 결정의 자유도 사실상 태어날 때 박탈되는 셈이다.

* 평양판 SKY(스카이) 캐슬 - 평양의 스카일 캐슬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외국어학원 같은 명문대를 나온 여학생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시집 잘 가는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선 어릴 때 무조건 음악유치원 등에 보낸 후 외국어학원이나 제1중학교와 같은 수재 교육과정에 입학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다고 한다.

* 스펙 쌓으려 김일성 동상 청소까지 - 북한의 대학 입시에서도 ‘스펙’이 중요하다고 한다. 가계표에 적힌 조상의 출생 성분이나 부모 계충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핵심계층에서도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을 함께 한 ‘백두산 줄기’면 혁명가 유자녀로 분류되어 가산 점수를 받는다. 가장 높은 점수 받으려면 김정은 친필 서한이 있으면 좋다. 어릴 때 노래나 악기 춤 그림 등 예능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칭찬받거나 감동시키는 편지를 올려 “그 애를 나라의 휼륭한 역군으로 잘 키우시오”라는 친서라도 받으면 ‘접견자’로 분류되어 최상의 가산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은퇴자들 생계수단 옥류관 국수 표 - 옥류관은 낮 12시와 오후 6시 하루 두번 냉면을 판다. 하지만 국수의 양이 제한되어 있어 사전에 표를 사야 한다. 그래서 오전 9시부터 줄 선 이들에게 표를 나눠준다. 표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낮 12시가 되면 옥류관 정문 앞에서 시장 가격으로 국수를 먹으려는 사람들에게 표를 되팔아 차액을 챙긴다. 표를 사서 먹으면 국정가격으로 3000~4000원이면 되는데, 시장가격으로 사 먹으려면 1만원은 주어야 한다. 연금이 보장되지 않는 북한에서 은퇴자들에게 짭짤한 수익원이 되고 있다.

* 은행에 저금 않는 북한 사람들 - 북한 사람들은 집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은행에 저금을 하지 않는다. 북한 돈이든 외화든 모두 집에 보관한다. 무역은행 같은 곳에 저금했다가 찾아 쓰려면 은행 간부에세 20% 정도를 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돈 빌려주는 사람은 1등 바보, 돈 갚는 사람은 2등 바보, 빌려준 돈을 받겠다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3등 바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 세금 없는 과세제도 - 김일성은 1974년 세습 통치 구조에 들어가면서 세금 제도를 철폐했다. 공산주의로 가는 길에서 세금 철폐는 필수 과정인데,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을 제일 먼저 한 소련보다 먼저 시행했다고 자랑한다. 당시엔 국영기업의 거래 수익금이나 기업 이익금으로 국가 예산을 충당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그 돈으로 핵무기 생산 등 국방비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세외 부담’ 이라는 독특한 세금 없는 과세 제도가 생겼다. 기관이나 기업소들에서는 자체 자금이 없으면 직장 성원들로부터 돈이나 물건을 걷어 관련 비용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 한국보다 나은 북한 맥주 - 저자는 맥주만큼은 북한이 낫다고 자신한다. 북한 노동당에서 운영하는 룡성맥주 공장에서 나오는 ‘룡성맥주’가 최고라고 평가한다. 군대에서는 매봉맥주와 제비맥주를 생산하는 데 후자의 경우 비행사들만 먹는다고 한다. 독일 전통맥주에 가까운 것이 대동강맥주다. 영국에서 중고설비를 들여와 제조한데다 양강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홉을 사용하고 맥아가 많이 들어가 맛이 좋다고 한다.

* 김 씨 일가가 키운 마약산업 - 북한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마약은 ‘아이스’로 우리의 필로폰(메스암페타민)과 같은 종류다. 북한에서 마약 문제의 기본 책임은 김 씨 일가에 있다고 저지는 비판한다. 초기에는 중동 등에서 가져온 마약을 스웨덴이나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에 밀매해 외화벌이를 했다. 하지만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김정일은 1980년대 후반 마약 밀매 외화벌이 중단을 지시한다. 대신 북한에서 아편을 대대적으로 재배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양강도 대홍단 종합농장과 함경북도 백암종합농장에서 대규모 아편 농사가 이뤄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양귀비 재배사업을 백도라지 사업이라고 부른다.

* 노동당에서 파견하는 북한의 승려들 - 북한에는 보현사 광법사 안국사 등 유명 사찰이 전국에 60여 곳에 이른다. 북한 사찰은 불상을 모시고 승려가 거주하면서 불법을 설파하는 종교 시설이 아니라 민족 유산 혹은 문화재에 가깝다고 한다. 당국에선 스님이 300여명, 신도가 1만여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승려는 사실상 북한 노동당에서 파견한 종교계 일꾼이다. 대외적 교류를 위해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부에서 양성하며, 대부분 결혼해 가정을 이룬 대처승들이다.

*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 북한에선 자기 직업을 자기가 선택할 수 없다. 전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대학 당국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당에서 직종을 결정해 배치하면 그 직업을 따라야 한다. 취업 시장도 따로 없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대학생 임명 배치 담당자들이 ‘뇌물의 왕초’라고 알려져 있다.

* 당에서 배치하는 북한 기자 - 기자가 되려면 일단 출신성분이 좋아야 한다. 취재 기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형직사범대학 등 중앙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해야 한다. 사진기자는 영화연극대학 사진촬영부 졸업생들이 대부분이다. 김정은이 직접 참석하는 이른바 ‘1호 행사’는 극소수만 현장 취재가 가능해 그 어느 때보다 충성심 경쟁이 심하다고 한다. ‘공훈기자’나 ‘인민기자’가 되기 위함이다.

* 말로만 반일 - 평양시 중심 구역인 모란봉 구역 북새거리(일본말로 히타치거리)에는 일본 상품만 전문으로 파는 류경상점, 북새상점이 있다. 가격이 엄청 비싸지만 부유층에 큰 인기라고 한다.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일본 제품은 중고 자전거라고 한다. 가격은 50~150 달러 수준이다.

* 북한의 대학 신입생들 -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으로 진학한 ‘직통생’이 30% 정도를 차지한다. 군대에서 8~10년 복무 후 25~28세 사이에 대학에 진학하는 제대군인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현직생은 고중 졸업 후 취직했다가 입학하는 학생들로 10~20% 정도라고 한다.

* 북한에서는 ‘삭발’이 충성심의 표현 - 우리나라에서는 삭발이 저항의 표상이지만, 북한에서는 삭발이 당국의 요구에 복종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초중고 남학생들도 의무적으로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

* 김정은의 ‘패기 머리’ - 김정은이 지도자가 된 후 당국에선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을 모방한 속칭 ‘패기 머리’를 하라고 요구했다. 옆과 뒷머리를 짧게 올려 자르고 앞과 윗머리만 길게 남긴 스타일이다.

* 백두산과 백마 - 북한에서 백두산과 백마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 혈통, 주체의 혁명 위업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최고의 상징으로 숭상된다. 2011년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김정은이 아버지를 위해 제일 먼저 세운 동상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기마 동상이었다.

* 북한의 5대 범죄 - 북한에서는 마약 성매매 도박 밀수와 함께 미신을 믿는 행위가 주요 범죄에 해당한다. 형법상 ‘사회주의 공동생활 질서를 침해한 범죄’로 분류되어 최고 7년의 교화형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암암리에 점집 등이 존재한다. 점을 한번 보려면 보통 쌀 5~15킬로 정도 살 수 있을 정도는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평양의 열악한 항공 노선 - 평양 공항의 국제선 정기 항로는 중국의 베이징과 선양,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뿐이다. 여름 한 철 외국 관광객이 많아지면 국제선으로 상하이와 다렌 편, 국내선으로 삼지연(백두산)과 갈마(원산 송도원 금강산), 신덕(함흥 흥남), 어랑(칠보산)편도 운항되곤 한다. 하지만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기껏해야 하루 평균 2,3대 불과하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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