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눈감기 전까지 '폰아일체'… 인류, 뜻밖의 퇴화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0-04-08 07:00 수정일 2020-04-08 09:51 발행일 2020-04-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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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정신까지 지배… 스마트폰 폐해 경고한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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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아침마다 ‘아이는 기분이 어때요?’라고 물어보는데 아이의 기분이 어떻겠어. 하루 종일 핸드폰 하고 있는데.”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은 이스라엘 학부모의 분노 영상 중 한 장면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재택수업을 받는 아이와 종일 씨름을 벌이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려 전 세계 학부모들의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냈다.

특히 눈에 띄는 발언은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하고 있는데”다.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국적 불문 필수 놀이 도구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마치 20세기의 TV와 같은 도구랄까.

그렇다고 아이들만 스마트폰을 종일 끼고 사는 건 아니다. 2015년 2~3월 미국에서 8~18세 자녀를 둔 부모 17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부모들은 매일 평균 9시간 22분을 디지털 미디어로 시간을 보낸다고 응답했다. 이 중 일과와 관련된 사용시간은 1시간 39분. 나머지 7시간 43분이 여가와 관련된 활동이었다. 하루 24시간 중 삼분의 일을 스마트폰과 함께 지낸 셈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인류의 문명 발전과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손 안의 작은 도구는 메시지 전달이라는 기본 역할 외에도 웹서핑, 미디어 시청, 게임, 교육, 쇼핑, 금융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준다. 그 결과 스마트폰이 없으면 5분도 견디지 못하고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2018년 이를 ‘노모포비아’(Nomophobia) 현상이라고 정의내렸다. ‘노모포비아’는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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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더난출판사 | 1만 6000원 | 사진제공=더난출판사

독일의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가 집필한 신간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는 지난 10년간 스마트폰이 미친 영향을 돌아보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해 경고한다. 책의 원제는 ‘스마트폰 전염병’. 저자는 스마트폰의 편리함이 주는 부작용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건강적인 부분이다. 특히 스마트폰 과사용으로 인해 야기되는 ‘근시’는 코로나19 못지않은 새로운 ‘팬데믹’(전세계적인 대유행)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한국 청소년의 90% 이상이 근시 판정을 받았고 유럽도 최근 들어 30%의 근시환자가 발생했다는 게 그 근거다. 근시 환자의 10%는 시력상실의 위험까지 안고 있다.

스마트폰의 또 다른 건강 부작용은 정신적 해악이다. 저자는 스마트폰이 주의력 장애, 불안, 중독, 치매, 우울증 등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영국에서는 13세 때 하루에 3시간 넘게 페이스북을 이용한 18세 여자 청소년의 우울증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두 배가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시간이 증가할수록 자실 충동 역시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저자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스마트폰 사용자의 60% 이상이 겪고 있으며 나아가 학업성취도 하락, 디지털 치매, 공감능력 저하, 주의력 결핍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적었다.

가짜 뉴스 창궐이나 개인신상 정보의 무분별한 확산도 스마트폰 부작용의 하나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IT기업들은 갈수록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용자들의 시선을 붙들려고 한다. 전세계 15억 인구가 매일 10억 시간씩 시청하는 유튜브에서 ‘조깅’을 검색하면 ‘울트라 마라톤’을 추천하고 ‘도널드 트럼프’를 검색하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동영상을 추천하는 식이다. 좀 더 세게, 과격한 영상을 추천해 사용자들을 극단적인 사고로 이끈다.

페이스북은 ‘좋아요’ 9개만 있으면 타인의 기초적인 신상정보를 알 수 있고 125개면 정치 성향 같은 내밀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SNS를 이용하면서 기초적인 신상을 공짜로 제공한 대가다. 이렇게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질수록 가짜뉴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정치조작을 체계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빌미를 안긴다.

이 책은 익히 알고 있는 스마트폰의 ‘과유불급’ 편리함의 폐해를 직설적으로 지적한다. 저자는 스마트폰은 결코 대중을 똑똑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21세기에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포기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책 속에 나와있지 않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