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세대 스타PD' 주철환이 말하는 색다른 인생담론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등을 연출한 1세대 스타PD 출신 주철환(64) 아주대 교수가 신간 에세이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를 발간했다. 정년을 앞둔 사회원로이자 오피니언 리더지만 꼰대 어르신의 ‘라떼는 말이야’ 식 회고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리듬감 넘치는 언어유희로 가독성을 높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관성에서 감성으로, 타성에서 지성으로 돌아가자”(115P), “몸에 때(垢)가 있다면 삶에 때(時)가 있다”(123P), “세상은 모범생이 아니라 모험생이 바꾼다”(149P) 등 운율이 딱딱 들어맞는 삶의 궤적들을 읽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말에 서툰 초중고교생들,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싶은 엄마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주 교수는 “아마 내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가수 지코 같은 래퍼가 됐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학창시절부터 유독 국어와 음악을 좋아했다는 그는 MBC 재직 중 ‘모여라 꿈동산’과 ‘퀴즈 아카데미’의 주제가를 직접 만들기도 한 재주 많은 문인이자 음악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MBC 입사 전에는 서울 동북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은 이색 이력도 갖고 있다. 2000년 2월 MBC 퇴사 후 같은 해 3월부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하나의 직업을 잘 해내기도 힘든 시대, 가장 창의적이면서 자유분방할 것 같은 PD와 엄격하고 보수적일 것 같은 교사라니.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직업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성공의 비결은 매일 글을 쓴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금도 매일 글을 씁니다. 이순신 장군도 전쟁 중 ‘난중일기’를 쓰셨고 안네 프랑크 역시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기를 계속 썼죠. 저는 ‘퀴즈 아카데미’ ‘대학가요제’ ‘테마게임’ 같은 프로그램을 할 때도 늘 글을 써서 기고했어요. 그게 제 보람이기도 했죠.”
주 교수의 이름으로 발간한 첫 책은 1988년 ‘MBC 퀴즈아카데미’. 에세이는 1991년 발간된 ‘주철환 프로듀서의 숨은 노래찾기’다. 자신의 재능을 십수년 직장생활 동안 활자로 계속 남기다 보니 이번 책이 벌써 16권째다.
교사 출신 PD였던 만큼 주 교수는 종종 교육현장에서 강의 요청을 받곤 한다. 주 교수는 “교육현장에서 강의를 제안받을 때 주로 하는 이야기가 ‘교실의 시청률을 높이자’다”라며 “강연은 공연처럼, 공연은 강연처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창의성을 죽이는 말이 ‘딴 생각하지 마라’는 말이죠. 사실 저는 평생 ‘딴 생각’만 하고 산 사람이거든요. 교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조용, 주목’ 혹은 ‘떠들지 마, 웃기지마, 까불지 마’ 잖아요. 저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손흥민 선수나 김연아 선수도 축구나 피겨 스케이트의 즐거움을 알기에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내지 않았을까요?”
창의력의 원천은 세심한 관찰과 관심이다. 그는 5세 때 작고한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웠고 늘 칭찬과 격려를 해줬던 고모와 중학생 시절 문학에 대한 재능을 알아본 은사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멘토’로서의 역할과 ‘독창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책 서두부터 “실력은 시력에서 나온다”며 “싹수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두 덕목 모두 교사와 PD에게 중요한 재능이기도 하다.
MBC 출신 선후배PD인 송창의, 김영희PD와 함께 스타PD시대를 열었던 그는 콘텐츠 과잉 공급의 시대에서 레거시(전통) 미디어의 PD가 살아남는 방법 역시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PD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어렵다고 해도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은 시청률 35%를 기록했다”며 “나영석PD가 ‘여행과 친구’라는 특정주제에 강하듯 자신의 주특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도 주 교수의 휴대전화엔 메모가 가득하다. 그는 며칠 전 적은 메모라며 “정년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청년이 된다”는 문구를 보여줬다. 주 교수는 2020년 1학기 강의를 마지막으로 아주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다. 주 교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을 연장하는 것”이라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는데 내가 죽어도 내 글은 남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40년 동안 정규직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곧 프리랜서가 되는 만큼 글쓰기와 함께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