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CBDC’ 발행 검토… 손바닥 뒤집은 사연?

김상우 기자
입력일 2020-01-02 11:27 수정일 2020-01-02 11:37 발행일 2020-01-0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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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를 통해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 나서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2020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CBDC 연구 전담조직 구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기술 발전으로 지급결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지급결제의 중추기관으로 관련 인프라를 지속 확충·개선하고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감시체계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급결제 혁신 기술에 대한 연구와 CBDC와 관련한 연구 전담조직의 구성, 전문인력의 보강, 국제기구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지급결제의 근간이 될 차세대 한은금융망 구축사업도 금년 중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고 전했다.

한은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결제은행(BIS)이 각국 중앙은행에 CBDC 도입을 권장하고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중국 인민은행이 CBDC 활시위를 당긴 뒤로 프랑스, 스위스,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CBDC 프로젝트를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에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이슬람 국가들을 위한 암호화폐를 만들자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의 달러 패권을 막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역시 달러 패권을 간접적으로 견제하고자 CBDC 발행에 나섰다는 관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편 한은은 그동안 CBDC 발행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 2018년 1월 발행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보고서’에서 CBDC 발행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해 2월에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이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CBDC가 금융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비판까지 가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CBDC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자 기존 입장을 전면 선회한 것이다. 이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와도 비슷하다. 

지난해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에 나섰으며, 같은 해 5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가상통화(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국내외 규제 환경 변화 등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투자 금지를 간접 압박했다.

그러다 그해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정부는 현재 암호화폐 제도권 수용안 마련에 나서는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암호화폐나 CBDC를 탐탁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뒤쳐진다는 비판을 의식해 하는 흉내만 낼뿐 이도저도 아닌 실효성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김상우 기자 ks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