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소준섭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9-12-30 07:30 수정일 2020-05-29 11:30 발행일 2019-12-29 99면
인쇄아이콘
마지노 민주주의 끝판왕, 국회의원과 국회공무원의 부끄러운 현실
‘마지노 민주주의의 끝판왕’, 국회의원과 국회 공무원의 부끄러운 현실
2019121919163273131_l
< 총평 >

저자는 현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재직 중이다. 국회 현장에서 우리 국회와 국회 관련 기관들을 관찰해 내놓은 아픈 성찰의 결과가 이 책이다. 저자는 ‘변이 국회의원’이라는 제목을 달았을 정도로, 제 몫 챙기기 급급한 우리 국회의원들의 난맥상을 고발한다. 여기에 더해 그들보다 어쩌면 더 권력적이고 권위적인 국회사무처 등 국회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매섭게 질타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른바 ‘마지노 민주주의’를 한껏 향유하면서도 제 역할과 임무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이들 세력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다. 그래서 부제도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이다. “다시는 20대 국회처럼 되어선 안된다”며 기업관련 법안 통과를 눈물로 호소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이 왜 나왔는지 이 책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 한국 권력사회에 만연한 ‘마지노 민주주의’

* 마지노 민주주의 - 자신이 가진 권한을 마지노선까지 행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저자는 ‘마지노 민주주의’라 부른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한 현실을 반영하는 용어다. 저자는 국회가 그 대표적 기관이라고 비판한다.

* 미국보다 독일에 가까운 국회 시스템 탓에… - 미국식 의회시스템은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이들의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독일의회는 의원들의 외회 진출이 우리처럼 정당에 좌우되며, 정당 간에는 거의 모든 정책에 대립한다. 의원들도 소속 정당의 정책에 순응하며, 당론에 배치되는 발언을 하기는 어렵다.

* 독재권력에 의해 왜곡된 우리 국회 -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독재권력의 가장 핵심적 관심과 지향점은 언제나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권력의 압도적 우위라는 조건 속에 갈수록 위축되고 종속화되었다. 정권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권력 나눠먹기에 급급해 결국 ‘적대적 공존’을 향유했다. 독재권력의 피해자일 뿐아니라 편승자 였으며 동시에 적극적 공범자였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소수의 특권 향유 시스템부터 바로잡아야 - 인구 천 명 당 의사수는 OECD 평균이 3.2명인데 반해 우리는 1.8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 변호사 수는 인구 5000명당 1명 꼴로 영국이나 독일의 10분의 1,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의사와 변호사를 늘려 그들로 하여금 경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및 법률 서비스를 더 잘하게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를 유지함으로써 독점적 특권을 유지한다는 그룻된 권위주의적 상식이 존재한다고 일갈한다. 국회의원 역시 같은 문제라고 파악한다. 아무리 국회가 불신의 대상이라 해도, 특권화되고 성역화된 국회의 문턱을 대폭 낮춰 그 수를 늘리고 특권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훈련된 무능력 관료사회 - 관료집단의 무능력에 관해 저명한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린은 ‘훈련된 무능력(trained incapacity)라고 정의했다. 공정과 효율 합리성을 추구해야 할 관료사회가 제도와 규칙을 준수하도록 훈련받으면서 독선과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전가, 규제만능 등의 병리적 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저자는 5급 공채로 이름만 바꾼 고시제도를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상 기수로 묶여지면서 관료집단 내 패권 세력으로 자기 세력 확대재생산의 조직적이고도 재도적인 토대로 기능해 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관료 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며 일반 국민들의 공무원으로의 진입이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공무담임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위직 공직을 전면 개방하고, 고위직에 대한 관료집단의 독점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 국회의원보다 힘이 센 전문위원 등 국회 공무원들

* ‘검토’ 권한으로 로비 대상이 된 ‘국회 전문위원’ - 국회 전문위원은 의원보다 더 큰 입법권한을 행사한다. 이른바 검토 보고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58조에 ‘위원회는 안건을 심의할 때 먼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명문화되어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서도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반드시 국회 공무원 검토를 받도록 하는, 본말이 전도된 규정은 없다. 법안 발의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끝나고 이후는 전문위원 몫이다. 정치 후진국이라는 일본 국회도 법안에 대한 검토는 당연히 의원들 몫이다. 미국에선 당연히 전문성 있는 의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한다. 전문위원들은 전문성도 사실상 없다. 단지 공무원시험을 통해 선발되어, 대부분 2년을 단위로 순환근무하게 되니 전문성을 축적할 시간이 부족하다.

* 국회 전문위원의 ‘월권’ -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갖는다. 국회사무처법에는 ‘정원의 20% 이내에서 개방직을 임용할 수 있는 직위’에서도 배제시켜 외부 전문가 진입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법안 검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으나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는 사실상 결정문이고 판결문이다. 부정적 검토 의견이 나오면 그 법안은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상임위 회의 논의대상에서 배제된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지다 보니 전문위원들에게 로비 사태가 속출한다. 상임위에 전문위원이 새로 임명되면 소관부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줄을 서서 업무보고한다. 때문에 분야별 외부 전문가를 개방직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당이 전문위원을 모두 가져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 상임위 지원 정책전문위원을 200명 정도로 구성해 전문위원을 대체토록 하자는 것이다.

*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도 ‘유신의 산물’ - 본래는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토록 되어 있었으나 박정희 유신정권 때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토록’ 바뀌었다고 한다. 결국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케 됐다.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로써 한 동안 행정부 관료로 거의 충원되기도 했다. 현재는 입법고시 등을 통해 등용된 국회 공무원들이 ‘입법’을 독점하고 있다. 유능한 전문위원이라기 보다 의회관료집단으로 변질됐다.

* 어느덧 의원을 제치고 국회 주인이 된 국회사무처 - 입법관료들의 힘은 일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로한다. 사실상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비롯해 국회 예산과 운영에서도 실질적 지배자가 바로 입법관료라는 얘기다. 실제로 조웅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11월 국회운영위원회에서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자는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했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원들도 국회사무처에서 월급과 특활비를 받고, 각종 활동에 대한 각종 명목의 비용 역시 이곳에서 수령한다. ‘우수’라는 평가 여부도 사실상 사무처 권한이니 의원들이 사무처에 잘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국회기관을 감독 감사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저자는 “국회사무처는 감사 무풍지대”라고 질타한다.

* 고시 출신이 군림하는 국회사무처 - 사무처 주요 보직 가운데 고시 대비 비고시 출신 비율은 2006년 48대 52에서 2014년에는 58대 42로 역전되었다. 2016년에는 80대 20으로 독점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5급 공채로 관료사회에 진입하면 30대에 벌써 3급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 국회 난맥상

* 특수활동비에도 상임위별 차이, 왜? - 2018년 7월에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자출결의서 보면,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월 50만원씩 더 수령해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국회사무처 법사위의 수석전문위원의 특수활동비 수령액은 매달 150만 원에 이른다. 법사위 의원의 무려 3배다.

* 법안 발의는 많아도 ‘허당 국회’ - 20대 국회 전반기, 즉 2016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2년 동안 우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는 무려 1만 2968개에 이른다. 거의 하루에 20개 꼴이다. 시민단체 등도 이 건수를 보고 우수의원 등을 선정해 발표한다. 각 정당 공찬 기준에서도 법안 발의 건수 중요 지표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연한 건수주의로 인해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인력과 예산 낭비도 심각한 수준이다. ‘선입선출’ 방식에 따라 먼저 발의된 법안이 먼저 검토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다. 의원들은 전문위원들이 모두 검토해 주니 법안 발의만 해 놓고는 뒷짐이다. 아무런 부담없이 법안만 제출하면 된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터지면 언론의 관심을 받을 간단한 내용만으로 법안을 구상해 발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법안을 서로 베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 국회 상임위 2년 임기제 버려야 - 제헌국회 때는 상임위원의 임기가 4년으로 의원 임기와 같았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그나마 박정희 때 2년으로 연장되었다. 제헌의회 때 4년이었던 국회의장 임기도 2년으로 줄었다. 업무 취약성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도 2년 마다 상임위가 바뀔 뿐만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이 50%를 넘는다.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 맡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나눠먹기 식이 만연한 것이다. 현역 의원이 재선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 미만이다. 미국 재선 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저자는 상임위 임기를 의원 임기와 일치시켜야 하며, 재선 시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정당 국고보조금 어떻게? - 2017년 한 해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에 준 국고보조금이 무려 421억원이다. 2017년초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개헌 자문 보고서에서 헌법의 정당 국고보조금 규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해외에서도 실제 헌법에서 정당 국고보조금 규정 둔 사례가 없고, 정당보조금제가 구시대적 국가주의적 사고에 기인한다는 지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정당에 대한 국보보조금 50% 삭감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도 했다.

◇ 입법과 감시 기관에 대한 허술한 감시체제

* 지나치게 많은 국회 보좌관 - 스웨덴의 경우 당에서 파견된 보좌직원 1명이 같은 당 소속의원 4명을 보좌한다. 우리는 공무원 신분의 보좌직원 7명과 인턴 등 평균 9명이 국비로 월급을 받으며 1명의 국회의원을 보좌한다. 스웨덴 등은 보좌진의 도움 없이 스스로 법안을 만든다. ‘보좌진 발의’가 상당수인 우리 국회와 사뭇 다르다.

* 선진국 대비 과도한 국회의원 지출비용 - 세비는 우리 의원들이 월 1100만원 수준으로 스웨덴보다 훨씬 많다. 여기에 회기 하루당 3만원 이상의 특별활동비를 받고 정근수당 및 명절휴가비 명목으로 매년 네 차례 일반수당의 50~60%를 추가로 받는다. 배우자와 자녀 수에 따라 가족수당이 추가되고, 자녀학비 보조수당도 지급된다. 1인당 GDP 대비 봉급 격차를 보면, 한국은 이탈리아 일본 다음으로 격차가 크다. 스페인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국회의원 봉급이 1인당 GDP 대비 3배 미만이고, 호주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4배 미만이다. 우리는 5배가 넘는다.

* 반드시 필요한 통제 수단 - 국회의원에 대한 통제와 견제 수단이 철저히 결여된 것에 대해 저자는 “의원 국민소환제가 가장 중요한 통제와 견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의회의 경우 2015년에 국민 소환법이 통과되어 공식적으로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2019년에 첫번째 소환된 의원이 나왔을 정도로 신중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 제 기능 못하는 국회도서관 - 국회도서관을 책 빌려보는 곳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은 국회 입법 활동 지원을 핵심 업무로 하는 입법지원기관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도서관은 본래 목적과 의미와 달리, 거꾸로 일반 열람객들에 대한 봉사와 개방의 측면만 특수하게 성장하면서 운영되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와 한다. 국가 예산의 낭비와 오용의 상징적 현장이라고 질타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미국의 국회도서관은 의원 입법활동 지원을 위해 일반인 출입도 금지시키고 있다. 도서관장도 미국처럼 수 십년 자리를 지키는 입법 전문가가 되어야 마땅하나 우리는 정치권의 ‘자리 나눠먹기’ 대상일 뿐이다.

*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이 어불성설 - 우리나라처럼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나라는 없다. 감시와 견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제헌국회 때는 미국처럼 의회에 감사원을 두고 1년 내내 상시 감사하는 시스템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인 한국의 특성 탓에 결국 미국 방식을 포기하고 현재와 같은 체제로 이어져 왔다. 그 결과가 대통령 감사인 ‘감사원’과 의회감사인 ‘국정감사’의 이원화다. 이것이 세계 유일의 기형적 국정감사가 출현한 배경이다. 저자는 감사원의 독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감사원은 정치와 행정, 의회와 행정부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에 있고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보장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