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꼭꼭 눌러 쓰거나 회상하거나…헤르만 헤세 ‘데미안’ 발표 100주년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6-05 07:00 수정일 2019-06-05 09:52 발행일 2019-06-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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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0~20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 헤르만 헤세 ‘데미안’ 발표 100주년, 방탄소년단(BTS)과 아미 필독서로 더 알려져
‘데미안’을 기억하는 사회명사 58인의 ‘내 삶에 스며든 헤세’, 필사책 ‘데미안 테라피 라이팅북’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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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사진제공=헤르만 헤세 재단)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회계사 출신으로 예술경영, 문화예술 분야의 회계, 조직 등의 전문 컨설턴트로 자리매김한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대표작 ‘데미안’(Demian, 1919) 중 이를 가장 인상에 남는 글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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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데미안’ 초판본

“그 과정에서 문학, 예술, 인문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도움을 얻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예술로 이끌었던 강한 울림이었던 책은 ‘데미안’입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이 출간된 지 100주년이 됐다니 독자였던 저로서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 사장의 말처럼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평화를 그린 화가이기도 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발표 100주년을 맞았다. 

‘데미안’은 지난해 교보문고가 주요 10개 세계문학전집 브랜드의 10년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연령대별 선호하는 소설’ 결과 10~20대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방탄소년단(RM·슈가·진·제이홉·지민·뷔·정국, BTS)이 정규 2집 앨범 ‘윙스’(WINGS) 기획 당시 모티프로 삼았던 책이라고 알려지면서 더욱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19년 소설 속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라는 필명으로 쓰인 ‘데미안’은 내 안의 세계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 지속적인 화해 시도와 저항의 궤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나치즘 등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밖에 없었던 헤르만 헤세를 둘러싼 시대상, 그의 소설 ‘데미안’에 열광했던 청춘들의 공감대와 연대는 단단하고 깊었으며 오래도록 끈끈함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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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테라피 라이팅북 |헤르만 헤세 지음 | 미르북컴퍼니(미르북스)

발표 100주년을 맞은 ‘데미안’을 기억하는 이 시대 사회명사들의 회상을 담은 ‘내 삶에 스며든 헤세’와 꼭꼭 눌러 쓰며 문장 사이, 행간 사이에 깃든 고뇌와 희망을 곱씹는 필사책 ‘데미안 테라피 라이팅북’이 출간됐다.

‘데미안 테라피 라이팅북’은 그런 ‘데미안’을 제 손으로 꼭꼭 눌러쓰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도록 기획된 필사본과 1919년 출간됐던 초판본 표지 디자인을 하나로 묶었다. 

읽기와는 다른 차원의 깊이와 친밀함, 내밀함 등으로 무장한 ‘쓰기’는 제3자의 입장인 아닌 내 이야기로 온전히 이입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렇게 쓰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의중을 새삼 깨달으며 지친 마음의 치유는 물론 문장력 향상, 사고의 깊이 등도 얻을 수 있다. 

‘내 삶에 스며든 헤세’는 누구나 지났을 청춘시절, ‘데미안’의 문구를 가슴에 새겨 넣은 사회명사 58인의 ‘헤세와 나’를 콘셉트로 한다. 영화 및 문화콘텐츠 비평가이자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전찬일 기획으로 꾸린 책이다. 강은교 시인부터 허필수 한국케냐협회장, 91세의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까지 58인 저마다가 헤르만 헤세와 그의 작품들에서 얻은 깨달음, 그들에 얽힌 일화, 밑줄을 그었던 명문 등을 담고 있다. 

“열 다섯, 외롭고 가난한 소년의 가슴에 어느 날 헤세가 걸어왔다. 헤세를 읽으며 보낸 그 겨울밤의 맑고 시린 바람 소리는 지금도 내 안에 살고 있다.”

박노해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헌시로 문을 여는 책은 그를 비롯한 강은교, 김경주, 이외수, 이해인 등 문인들을 비롯해 오성균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주연 문학평론가, 김누리 한국독어독문학회장, 정현규 한국헤세학회장, 정경량 노래하는 인문학 연구소장,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인문학자 이현우 등의 학자들 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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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스며든 헤세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기획 양장본 |강은교 외 , 전찬일 (기획) 지음 | 라운더바우트

오거던 부산시장,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 등 정계인사, 법명스님, 곽효근 목사, 조정래 감독, 영화평론가 심영섭, 음악평론가 임진모, 뮤지션 양지훈, 피아니스트 임현정,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등이 헌사, 깨달음, 독후감 등의 형식으로 헤세에 대해 풀어낸다. 

기획자의 표현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를 ‘헤세 실크로드’에는 오아시스처럼 화가 이영희, 한희원의 ‘산동성 가는 길’ ‘산티아고 가는 길’ ‘삶의 길’ ‘북한산 가는 길’ 등과 ‘밤’ ‘빈들’ ‘바이올린 켜는 사람-양림 골목길’ ‘푸른길’ 등의 작품들이 배치된다. 

‘데미안’은 김경주 시인이 “인간의 격조에 가장 가까운 비명이 담겨 있다”고 평했고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가 “어느 시절의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싱클레어였고, 어느 시절 어느 누군가에게 나는 프란츠 크로머였다”고 고백하게 했는가 하면 오거돈 부산시장이 “알을 깨고 재탄생해야할 세대는 정작 성인 세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기획자 전찬일이 ‘세계 문학사의 변곡점적 성장소설이자 시대 소설’이라고, 곽효근 목사가 “젊은이들의 자아 성장교과서”라고 표현한 ‘데미안’은 저마다의 상황, 가치관, 삶의 방식에 따라 행해지는 영혼의 ‘우아한 분투’를 함께 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 ‘우아한 분투’의 실행자이기도 한 세종문화회관 김성규 대표는 ‘데미안’을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작품 속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자신의 길을 가도록 자극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존재라면 제 인생에서 ‘데미안’은 예술이에요.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계사의 길을 걸었지만 예술과 관련해 다양한 자문을 맡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기관으로 오게 됐죠. 예술의 공간인 이곳 역시 예술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와 관객들의 삶에 있어 데미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