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리뷰+오브제] 천을 활용한 다양한 의미와 상징들, 뮤지컬 ‘웃는 남자’, 연극 ‘알앤제이’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8-09-08 18:30 수정일 2018-09-10 17:21 발행일 2018-09-0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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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신매매단이 탄 배의 침몰, 두 주인공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판타지, 결투와 유혈 그리고 비극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 드레스…. 천 한장 혹은 여려 겹 천의 교차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의미와 상징들을 구현한다. 

지난 8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의 공연을 끝내고 지난 5일부터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로 극장을 옮긴 뮤지컬 ‘웃는 남자’(10월 28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는 천을 활용한 장면이 맨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연극 ‘알앤제이’(9월 30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는 붉은 천이 극 내내 활용되며 현실과 환상 속 공허한 꿈, 연극의 역할 전환 등을 표현한다. 두 작품은 각각 문학거장인 빅토르 위고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웃는 남자’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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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웃는 남자’의 천  

뮤지컬 ‘웃는 남자’는 어린이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납치돼 입을 찢긴 그윈플렌(박강현·박효신·수호,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과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데아(민경아·이수빈), 그들의 아버지이자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양준모·문종원·정성화), 깊은 결핍을 가진 조시아나 여공작(신영숙·정선아) 등이 엮어가는 이야기다.

생채기투성이, 가시덤불 같은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삶을 구현한 화려한 무대로 무장한 이 극은 천을 활용한 장면으로 시작해 마무리된다.

극의 시작은 콤프라치코스가 어린 그윈플렌을 버려두고 바다로 향했다 풍랑에 휩쓸려 난파되고 침몰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오프닝-태풍’(Opening-The Tempest), ‘기도’(The Prayer), ‘고요한 죽음’(A Gentle Death)으로 이어지는 첫 장면은 짙은 푸른색 계열의 천 4장을 교차시키며 표현된다. 4장의 천이 흔들리며 바다를, 풍랑을 표현하며 쉽지 않은 주인공의 이후 여정을 예고한다.  

롤러코스터 같은 풍파를 겪은 그윈플렌과 데아의 판타지로 마무리되는 엔딩 넘버인 ‘2막 피날레’(Finale Act Two) 역시 천 한장으로 완성된다.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을 가진 데아를 잃은 그윈플렌이 둘만의 천국으로 향하는 장면은 우주공간을 연상시킨다. 

01. [2018 웃는 남자] 기도_앙상블_EMK제공
네 장의 천을 교차시키며 표현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기도’ 장면(사진제공=EMK뮤지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별무리 배경에 은은하게 빛나며 너울지는 천은 판타지에 방점을 찍는다. 엄홍현 EMK뮤지컬 대표이자 ‘웃는 남자’의 프로듀서의 전언에 따르면 이 한 장면은 하남아트센터를 대관해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했다.

첫 장면과 마지막 뿐 아니라 ‘웃는 남자’에는 천을 활용한 인상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윈플렌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꾸린 무대 ‘대혼란을 무찌르다’(Chaos Vanquished), ‘나무 위의 천사’(Angels in The Tree)는 흰 천 위에 영사되는 영상으로 아름다운 배경을 만들어낸다.

 

또한 조시아나가 그윈플렌을 불러들여 유혹하는 강렬한 천막, 제 삶을 떠나 귀족을 연기해야하는 무대에 발 디딘 듯한 그윈플렌의 침실에 드리워진 새파란 무대 커튼 등 역시 천을 활용한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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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연극 ‘알앤제이’의 또 다른 주인공 붉은 천(사진제공=쇼노트)

◇연극으로 이끄는 매개체, 역할전환, 비극적 사랑을 상징하는 핏빛 드레스 그리고 초야! 연극 ‘알앤제이’의 붉은 천 

연극 ‘알앤제이’는 보수적인 가톨릭학교를 배경으로 4명의 소년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접하면서 꿈꾸는 자유와 탈출에 대한 이야기다. 

학생 1(손승원·문성일), 2(윤소호·강승호), 3(손유동·강은일), 4(송광일·이강우)는 금기시됐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장난처럼 읽게 되면서 검열과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 ‘소네트’, 가톨릭 교리 등에서 발췌된 시적 언어들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억압된 현실과 연극처럼 연기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교차시키며 소년들의 내적 혼란과 변화를 표현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구텐버그’ ‘킹키부츠’ ‘신과함께-죽음편’ 등과 연극 ‘프라이드’ ‘엠 버터플라이’ ‘햄릿-더 플레이’ 등의 김동연 연출작 ‘알앤제이’는 현실과 연극을 넘나드는 소년들은 붉은 천으로 다양한 상징들을 표현한다. 벤볼리오와 티볼트의 피를 뿌리는 격투, 연인의 사랑을 시험하는 독약, 비극을 상징하는 줄리엣의 핏빛 드레스, 이별을 앞둔 연인들의 절절한 초야 등은 천을 통해 표현된다.

책상과 의자로만 구성돼 다소 빈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무대는 부지런하게도 움직이는 배우들과 그들에 동선에 따라 펄럭이는 붉은 천들로 신비로움을 더한다.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이나 무대 장치가 별로 없어서 서로의 눈빛과 천에 의지하게 된다”는 학생 3 손유동의 말처럼 붉은 천은 연극 ‘알앤제이’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 중 하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