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이드] “나도 한때는 진기한” 뮤지컬 ‘무한동력’ 김동연 연출의 현재진행형 꿈 그리고 차기작 ‘알앤제이’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8-06-15 22:08 수정일 2018-06-15 22:24 발행일 2018-06-1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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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연출
뮤지컬 ‘무한동력’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는 꿈을 좇다 보니 선재 보다는 진기한처럼 그랬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것에 열중하는 그런 시기요.”

10년 동안 연재됐던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무한동력’’(7월 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김동연 연출은 진기한 같은 시기를 지나왔다고 털어놓았다. 그 시기의 한 예로 김동연 연출은 대학 졸업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나서 딱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진기한(임철수·안지환, 이하 관람배우 우선)은 수의학과 출신의 공무원 고시 준비생이지만 도피하듯 게임에 빠져 지내는 청년이다. 뮤지컬 ‘무한동력’은 그런 진기한을 비롯해 마냥 힘들기만한 취업준비생 장선재(김바다·오종혁), 고3 수험생 수자(박란주·정소리), 수자·수동의 아빠이자 하숙집 주인이며 발명가인 한원식(윤석원·김태한), 수자의 동생 수동(신재범), 무용수의 꿈은 좌절됐지만 유쾌한 김솔(정우연·김윤지) 등의 이야기다.

◇한때는 진기한처럼! 그때 만든 연극 ‘햄릿-더 플레이’ 

햄릿 더플레이
진기한 시절 김강우와 만들었던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연극 ‘햄릿-더 플레이’(사진제공=연극열전)
“배우, 연출, 작가 중 뭘 할지,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를 전혀 몰랐어요. 배우를 하려면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하지만 연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짜 막막했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위해 해야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할 시기에 김동연 연출은 학교로 향했다.

“다시 학교로 가서 연극을 했어요. 마치 진기한이 게임에 빠진 것처럼요. 학교에서 연극하면 진짜 너무 재미있거든요. 밖의 세계랑은 전혀 상관없이 거기서 저는 여전히 선배고 아직 아는 척도 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도 분명 알았던 것 같아요. 그게 도피라는 걸.”

당시 “저기 두려운 세상이 있는데 학교에서 또 대장놀이를 하려고?”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학교에서 만든 연극이 2016년 초연됐던 ‘햄릿-더 플레이’다. 당시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연극에 햄릿으로 출연했던 김강우는 ‘햄릿-더 플레이’로 배우 데뷔 후 첫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저도 (김)강우도 둘 다 졸업생이었어요. 진기한의 게임과는 다르지만 두려운 세상 앞에서 도피성으로 딴 짓을 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깨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2001년, 류승룡·김원해 등이 배우로 활동한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연출부로 세상에 첫발을 디딘 김동연 연출은 3명의 광대를 내세운 ‘환상동화’로 본격 작·연출의 길로 들어섰다.

◇감성적인 김바다·직진 오종혁의 선재부터 고군분투 신재범의 수동까지
무한동력
<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무한동력’의 전혀 다른 매력의 배우들. 왼쪽부터 김솔 역의 정우연, 수자 정소리, 수동 신재범, 선재 김바다, 진기한 임철수(사진제공=아도르따요)

“(김)바다의 선재는 부드럽고 약해보이는 이미지예요. 세상이 다 허물어진 양 감성적이고 금방 상처받을 게 보이는 선재죠. (오)종혁이의 선재는 직진인 아이에요. 절대 안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상처받으면 크게 꺾이겠다 혹은 부딪히면 부러지겠다 싶은 선재예요. 전혀 다른데 끝에 가서는 신기하게도 만나지죠.”

김동연 연출은 수동을 제외하고 더블캐스팅된 인물들에 대한 특징을 조목조목 짚기도 했다. 초연부터 수자로 출연 중인 박란주에 대해서는 “밝고 씩씩한 ‘수자의 장인’ 같은 느낌”이라며 “(정)소리는 감성이 수자 나잇대랑 더 가깝다. 약해 보이고 혼자 있을 때 외로워 보이는 수자”라고 설명했다.

“(김)솔이들은 신장과 외모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진짜 4차원이에요. 윤석원의 원식은 우직하고 무거운 느낌이라면 김태한의 원식은 좀더 밝고 따뜻한, 장난기 있는 동네 아저씨죠.”

무한동력
뮤지컬 ‘무한동력’의 전혀 다른 매력의 배우들. 왼쪽부터 진기한 역의 안지환, 김솔 김윤지, 선재 오종혁, 원식 윤석원, 수자 박란주, 수동 신재범(사진제공=아도르따요)

이어 이지혜 작가가 각색 과정부터 진기한으로 염두에 뒀던 임철수에 대해서는 “배우 자체가 가진 느낌과 호흡이 워낙 좋다”며 “(안)지환이는 평상시에 진기한 같은 느낌이다. 배우 자체가 어디 하나 빠진 듯 약간 풀어져 있는, 재밌는 캐릭터”라고 밝혔다.

“수동이만 원캐스트로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분량도 많은데 노래도, 랩도 잘해요. 군 제대 후 첫 작품이다 보니 에너지가 충만하죠. 군 제대 전부터 연습을 했어요. 남은 말년 휴가를 몰아서 보름 정도 연습하다가 하루 다시 (군대에) 다녀왔어요. ‘민간인이 돼서 오겠다’고 하고는 다녀왔죠.”

 

신과함께
김동연 연출의 ‘신과함께-저승편’(사진제공=서울예술단)
◇‘풍월주’ ‘엠. 버터플라이’ ‘신과함께-저승편’ ‘무한동력’, “저에겐 초연!”“하다 보니 그리 됐는데 어려운 지점들은 분명 있어요. 전 시즌에 좋았던 부분을 기억하는 관객들까지 만족시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확률이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들에 대한 부담이 없으면 거짓말이겠죠. 그렇다고 너무 그것만 신경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지난해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부터 ‘신과함께-저승편’ ‘무한동력’까지 각각 김광보, 김광보·성재준, 박희순 연출에 이어 4연, 3연, 재연의 연출을 맡으면서 겪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전의 뮤지컬 ‘풍월주’도 이종석·이재준 연출에 이어 세 번째 시즌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한테는 초연이에요. 그 전 시즌이 이랬으니 이래야지 할 수는 없어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들에 맞춰 지금 해야 하는 의미와 이유를 찾아가면서 만들죠. 각 작품들마다 접근하고 싶은 방향들이 있어요. 하지만 전에 있던 것과 다르다 보니 그 자체가 먼저 읽히기 어렵다는 점이 우려되긴 해요.”

이렇게 말한 김동연 연출은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은 원작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들을 저만의 해석으로 무대에 올린 것들”이라며 “전작과의 비교로 원래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일상적인 말이라곤 없는” 일탈에 대한 차기작 ‘알앤제이’
알앤제이
김동연 연출의 차기작 ‘알앤제이’. 왼쪽부터 학생 1, 2, 3, 4 역의 손승원, 윤소호, 손유동, 정욱진(사진제공=쇼노트)

“구체적인 것들이 다 들어가 있지는 않아요. 모든 대사들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소네트’이거나 가톨릭 교리 등에서 발췌된 것들이거든요.”

한참 연습 중인 차기작 ‘알앤제이’(R&J, 7월 10~9월 30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이렇게 설명했다. ‘알앤제이’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네명의 가톨릭학교 남학생들의 이야기다.

학생 1(문성일·손승원, 이하 가나다 순), 2(강승호·윤소호), 3(강은일·손유동), 4(송광일·정욱진)가 엮어가는 이야기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2003년 영국 웨스트엔드, 네덜란드, 호주, 브라질,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공연되며 주목받은 작품이다. 

김동연 연출가  인터뷰7
뮤지컬 ‘무한동력’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주된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긴 한데 네 아이들을 둘러싼 세계관은 가톨릭 교리이거나 요즘은 말도 안되는 옛날 윤리 교과서 같은 것들이죠. 게다가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인 언어들로 전달되다 보니 일상적인 말이 없어요.”

극은 이 가톨릭 학교에서 금기된 책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장난처럼 읽기 시작한 학생들이 이야기에 빠져 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로맨스 극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남자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스를 표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요. 금지돼 있는 것에 대한 탈출과 검열 그리고 그에 대한 반항이 더 큰 이야기예요. 억압돼 있는 것에 대한 반항과 탈출, 이 세계에서 탈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에 대한 이야기죠.”

그렇다면 왜 ‘로미오와 줄리엣’인가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금지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금지된 이 세계에서의 탈출을 감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로 세팅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아닌 ‘금지된’에 무게중심을 두는 작품인 셈이다.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연기하는 데서는 그의 전작인 ‘구텐버그’를,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점에서는 ‘난쟁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엄격한 가톨릭학교를 배경으로 한 남학생들의 이야기, 극 중 극 형태로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윤소호·손승원 등이 교집합을 이루는 ‘베어더뮤지컬’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책을 통해 깨려는 건 ‘죽은 시인의 사회’ 같기도 하고 학생들이 억압된 것들에 대한 반항으로 본능과 원망을 표출하는 데서는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닮은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알앤제이
김동연 연출의 차기작 ‘알앤제이’. 왼쪽부터 학생 1, 2, 3, 4 역의 문성일, 강승호, 강은일, 송광일(사진제공=쇼노트)

이렇게 소개하고는 “형식적으로 양식화된 연극적인 공연”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더불어 극의 핵심에 대해서는 “우릴 가두고 있는 세계의 표현과 그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가장 순수한 에너지”라고 밝혔다. 

“10대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이 아이들을 둘러싼 틀과 굴레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연극적 언어로 표현되죠. 극 중 아이들이 느끼는 일탈의 심리, 경험 등을 관객들이 같이 느끼게 하는 게 궁극적 목표예요.”

그리곤 “등장인물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과 동시에 느낄” 감정에 대해 “일탈의 해방감”이라고 표현했다. 따뜻하고 유쾌한 ‘구텐버그’ ‘어쩌면 해피엔딩’ ‘프라이드’ 등 연출했던 그는 “학생이고 ‘일탈’이라는 감정 자체를 다뤄야하니 에너제틱하게 풀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와 가장 다른 연출 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의 전언에 “연극 ‘트레인스포팅’ 같은 일탈이냐”고 질문하자 “연극이라는 약을 먹는 거니 비슷하다”며 “가톨릭 교리만 배우던 아이들이 연극이라는 약을 먹고 일탈을 꿈꾸며 미쳐가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나만의 무한동력 “공연하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꿈?” 

김동연 연출
뮤지컬 ‘무한동력’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현재 육관 사관학교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그 곳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연극 ‘알앤제이’와 동시에 준비 중인 새로운 국방부 뮤지컬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김동연 연출은 “강하늘, 지창욱, 아이돌그룹 멤버 등 군 복무 중인 배우, 연예인 가운데 두세 명이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무한동력’ 공연, ‘알앤제이’ 연습, ‘신흥무관학교’ 기획·개발, 뮤지컬 ‘심야식당’ 중국 레플리카 공연(10월 초 상하이 예정) 준비, 연말의 ‘어쩌면 해피엔딩’ 재연을 위한 오디션 및 회의 등 확정된 스케줄을 비롯해 계획은 있지만 공식발표 전인 작품들까지 그의 남은 2018년도 분주하기만 하다.

“저는 꿈을 좇다 보니 밥을 먹게 된, 제일 좋은 경우예요. 하지만 작품을 많이 하다 보면 가끔은 밥을 먹기 위해 꿈을 꾸는 건가 싶을 때도 있죠.”

뮤지컬 ‘무한동력’의 핵심 메시지가 담긴 대사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김동연 연출은 “자기 걸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남의 잣대에 자신의 꿈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해요. 저 역시 그에 대한 고민을 정말 오래, 많이 했어요. 남들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행복한 꿈으로 밥까지 먹고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 당시 그가 “공연하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게 꿈”이라고 했을 때 선배들은 “너무 거창하고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었단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도 그 꿈을 찾아가는 중”이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공연하는 게 좋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공연을 하는 것 자체에 지치거나 힘들지 않고 재밌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행복을 느끼면서 작업을 해야하는데…꿈을 쫓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경우들이 너무 많거든요. 아직은 좀 두렵지만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요. 시대와 같이 호흡하면서 그 가치를 오래도록 인정받고 사랑받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