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감, 주고받는 에너지의 순환이 바로 ‘무한동력’ 김동연 연출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8-06-09 18:00 수정일 2018-06-09 17:07 발행일 2018-06-0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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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연출
뮤지컬 ‘무한동력’의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꿈을 강요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힘든 걸 참고 견뎌라, 옛날에도 그랬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잖아요.”

김동연 연출은 뮤지컬 ‘무한동력’(7월 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한동력’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휘청이는 취업준비생 장선재(김바다·오종혁, 이하 관람배우 우선), 공무원 준비생 진기한(임철수·안지환), 고3 수험생 수자(박란주·정소리), 수자·수동의 아빠이자 하숙집 주인이며 발명가인 한원식(윤석원·김태한), 수자의 동생 수동(신재범) 등의 이야기다.

연재 10주년을 맞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신과함께-저승편’ ‘프라이드’ ‘난쟁이들’ 등의 김동연 연출, ‘더 데빌’ 등의 이지혜 음악감독이 넘버를 꾸렸다.

김동연 연출가  인터뷰
뮤지컬 ‘무한동력’의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제가 느낀 ‘무한동력’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그 자체였죠. 거창한 꿈을 가지고 견디라고 하기 보다는 현재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하기,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감 등으로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에너지들이 순환되는 것이 무한동력이라고 느꼈어요.” ◇따뜻함을 추구하는 연출이 전하는 차가운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 따뜻한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무한동력’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무대로 올리는 거잖아요. 이야기 자체가 너무 평범하고 평이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막연하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기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였으면 했죠. 현실에서 주는 스트레스, 개인의 고민과 역경이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기를 바라면서 강조했어요. 그러다 보니 현실의 좌절이 더 크게 혹은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렇게 의도를 전한 김동연 연출은 “현실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가 선재의 면접이나 악몽을 꾸는 장면 등으로 표현된다”며 “그 스트레스 자체가 공감돼야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

“원작 웹툰이 가진 메시지가 자칫 꿈만 강조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반대로 생각하려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자 혹은 훌륭한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시대잖아요. 본인들 삶의 가치 하나하나를 찾아가는 것이 사회적 의미로도 확장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혀 달라 보였던 ‘신과함께-저승편’과 ‘무한동력’의 교집합… 평범한 사람, 현실의 투영
2018 신과함께 (4)
뮤지컬 ‘신과함께-저승편’(사진제공=서울예술단)

“언뜻 보기에는 전혀 다른 작품 같았어요. 하지만 뮤지컬 연출을 맡으면서 면밀하게 들여다보니 비슷한 점이 있더라고요.”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신과함께-저승편’의 세 번째 시즌, ‘무한동력’ 재연까지 김동연 연출은 연달아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무대에 올리는 데 새로 합류했다. 전혀 달라보였던 두 작품은 ‘평범한 사람’ ‘현실의 투영’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었다.

 

무한동력
뮤지컬 ‘무한동력’(사진제공=아도르따요)

“김자홍, 선재 등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들을 도와주는 진기한, 강림 등 신과 가까운 인물들을 굉장히 인간적으로 그렸죠.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 신과 함께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강림이나 진기한처럼 약자를 위하고 강자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신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죠. 무협지나 판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세팅으로 지옥세계를 그리기도 해요. 현재를 사는 사람, 시대의 투영이죠.”

자신의 친구, 지인 등에서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냈다는 주호민 원작자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같은 세계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웹툰에 투영시키는 작가”라고 표현하며 “그 세계관과 시각을 ‘무한동력’에도 더 잘 드러내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꿈꾸고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것, 그게 삶의 가치이고 행복이지 않나 싶었어요. 그 의미가 너무 좋아서 두 작품의 중심으로 잡았죠.”

‘신과함께-저승편’과 ‘무한동력’을 잇는 인물이 진기한이다.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성격도, 스타일도 비슷하다”고 평했다.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는 영웅 같아요. ‘무한동력’의 진기한도 개를 살리잖아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죠. 희희낙락, 설렁 설렁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요. 겉모습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 가치를 제대로 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인물이 ‘신과함께-저승편’ ‘무한동력’의 진기한들 같아요.”

◇평범하고 잔잔한 이야기로 질문을 던지다
김동연 연출
뮤지컬 ‘무한동력’의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웹툰을 뮤지컬로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작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정들을 뛰어넘는 거예요. 하지만 ‘무한동력’은 원작 웹툰 자체도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그 부분이 어렵진 않았어요. ‘무한동력’의 공간에 대한 고민은 무대로 옮기는 자체가 아니라 미술적으로 어떻게 보여줄지였죠.”

웹툰 ‘무한동력’을 뮤지컬로 옮기면서 어려웠던 것은 공간의 무대 재현 보다 평범하고 잔잔한 이야기였다.

 

“극적인 이야기들보다는 자잘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웹툰이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읽어가는 형식이라면 뮤지컬은 한정된 시간 안에 사건을 노래로 응축해서 보여줘야 하죠. ‘무한동력’은 큰 사건도, 드라마틱한 기승전결도 없어서 어떤 테두리 안에 에피소드들을 모아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어요.”

프로듀서이자 작가이기도 한 이지혜 작곡가와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들어진 구조에 대해 김동연 연출은 “선재가 면접에서 접하는 질문들이 세상이 나에게,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극 중 인물들이 이 질문들에 어떤 답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과정 안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 걸음만 더! 멈추지 말아요, 당신의 심장
무한동력
뮤지컬 ‘무한동력’(사진제공=아도르따요)

“연출 입장에서 주고 싶었던 건 무한동력이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선재가 멈춰져 있는 무한동력이 자기 모습 같다고 느끼는 데서 관객들도 나도 멈춰져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무한동력이 실패를 거듭하며 돌아가지 않을지언정 계속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전한 김동연 연출은 “선재 이야기로 시작해 무한동력 연구에 평생을 건 한원식, 무한동력 기계에서 다시 선재로 가는 큰 선이 필요했다”며 “그 과정에서 같이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뮤지컬적으로 다채롭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성을 갖는 데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원작을 읽었을 때는 그림이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하게 대사가 참 와닿는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잊고 있었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라는 말을 잔잔하게 얘기해주니 와닿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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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무한동력’의 김동연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하지만 뮤지컬 ‘무한동력’에 합류하면서는 “당신의 무한동력은 심장”이라고 일깨우는 ‘멈추지 말아요’라는 넘버가 깊이 와닿았다고 털어놓았다.

“멈추지 말아요. 당신의 심장이 바로 무한동력. 멈추지 말아요. 무한동력. 당신의 심장…이 가사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죠.”

◇무한동력은 희망 “지금 손해 보지 않으면서 찾는 가치”

“저에게도, 작품에서도 ‘무한동력’은 희망 같아요. 무한동력이 돌아간다는 희망. 그 희망이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일이 더 기대된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계속 돌아가게 하는 무한동력 같거든요.”

자칫 희망고문이 될 위험에 대해 그는 “그렇다고 내일은 희망이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내일이 있으니 오늘 손해 보라’는 논리에 젊은 세대들이 화가 나는 것이지 모든 희망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지금 있는 것들을 가치 있게 만들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손해 보지 않으면서 가치를 찾자는 거예요. 그게 내일의 희망을 만드는 힘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