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없는 일자리 정부…부담 떠안은 재계

노은희 기자
입력일 2018-08-21 17:43 수정일 2018-08-21 18:32 발행일 2018-08-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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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김영주 장관과 참석자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일자리위원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사용자단체 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자리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현재의 일자리 창출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의견을 제기했다.(연합)

고용쇼크에 빠진 정부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연일 재계에 손을 내밀고 있다. 재계는 정부 정책에 화답하기 위해 투자계획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책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몇몇 중견·중소기업들은 개도국행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채 기업에만 부담을 떠넘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1일 경제·고용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며 “정부가 지금과 같은 땜질식 정책으로만 일관한다면 ‘고용쇼크’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확실한 ‘규제완화’가 급선무며 장기적으로는 지역별 산업활성화를 위한 전국산업분류조사 등 세부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주요 대기업들은 연이어 대규모 투자계획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놓았다. 최근 삼성은 향후 3년 동안 약 4만 명, 한화그룹은 5년간 3만5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을 발표했다. 신세계 그룹도 향후 3년간 매년 1만 명 이상의 채용을 실시할 예정이며 SK그룹도 3년간 2만8000여 명 수준으로 채용을 실시하기로 했다.

3면_최근주요그룹발표채용계획

하지만 기업들은 이 같은 투자계획 및 일자리 창출 계획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규제 혁신’ 등 다양한 정부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으로 28조 원가량의 추가비용과 함께 법인세도 올라 사면초가인 상황”이라며 “정부의 눈치를 보며 투자 계획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준비기간이 필요한 부분이고 규제완화·투자지원 등이 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또 “성장하고 있는 젊은 기업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국내에서 신사업을 벌이기를 두려워한다”며 “아예 공장을 이전하거나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서 시작하길 원해 개도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곳들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직된 일자리 정책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년간 최저임금이 29%나 올랐는데 이런 정책은 중소-자영업자들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더 고통에 빠뜨리는 정책”이라며 “당장은 투자를 늘려 이윤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는데 경제가 어렵기에 정부차원의 확실한 규제완화로 경직된 정책을 풀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인구 감소 및 자동화 시스템으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수요의 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윤창훈 충북대 교수는 “대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첨단 산업에 투자하고 사람보다 기계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 사람이 할 일이 더 줄어드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은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