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5명 이상 출산·유산 경험無여성, 알츠하이머병 위험 높아

노은희 기자
입력일 2018-08-13 09:02 수정일 2018-08-13 09:24 발행일 2018-08-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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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좌), 배종빈 임상강사(우) (사진제공=분당서울대병원)

여성의 출산 및 유산 경험이 나이가 든 후 알츠하이머병(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출산 경험이 5회 이상인 여성의 경우 출산 경험이 1 ~ 4회인 여성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될 확률이 70%나 높으며, 유산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 유산한 적 없는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당서울대병원 김기웅 교수 연구팀(공동 제 1저자: 배종빈 임상강사)은 여성의 출산과 유산 경험이 노년기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국내 60세 이상 여성 3574명과 65세 이상 그리스 여성 1,074명의 자료를 추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자궁 혹은 난소 적출 수술을 했거나 현재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고 있는 여성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실제로 여성은 여성만의 고유한 경험인 임신 및 출산 시 겪게 되는 급격한 성호르몬 변화로 남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이 높고, 통상적으로 병리 소견에 비해 증상도 심하게 나타난다. 임신, 출산뿐만 아니라 유산을 경험할 때도 성호르몬 변화를 겪는데, 그간 출산과 유산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조사한 연구는 흔치 않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5회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출산 경험이 1~4회인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70% 높게 나타났다. 또한 유산을 경험한 여성은 이를 경험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절반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여성과 그리스 여성을 각각 분석했을 때도, 출산과 유산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미치는 영향은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다.

치매가 아닌 여성들에서도 출산과 유산이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간이정신상태검사(MMSE)를 실시한 결과, 5회 이상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점수가 1~4회 경험한 여성에 비해 낮았으며, 유산을 경험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점수가 높았다. 이는 치매까지 발전하지는 않더라도 5회 이상의 출산은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반대로 유산 경험은 인지기능을 높인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김 교수는 “신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에스트로겐의 혈중 농도는 임신 후 점진적으로 증가해 임신 전 대비 최대 40배까지 올라가고 출산 후에는 수일 만에 임신 전의 농도로 돌아오게 된다”며 “여러 번의 출산으로 이와 같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반복적으로 겪는 것은 뇌 인지기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특히 국내에서는 60세 이상 여성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5회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여성들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인지기능 평가를 실시하고, 규칙적 식사와 운동, 인지능력 증진 훈련 같은 예방법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 저명 의학저널 신경학(Neurology)지 2018년 7월 판에 실렸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