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재계 "경영간섭 우려"

박종준 기자
입력일 2018-07-17 17:13 수정일 2018-07-17 17:29 발행일 2018-07-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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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앞서 세부지침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렸다.(사진=박종준 기자)

600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 이달 말부터 도입하겠다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국민연금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 이익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도입을 서두르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기업들은 경영권 간섭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안)’ 공청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연금은 이날 △배당관련 주주활동 개선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 등을 올해 안으로 완료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하지만 기업 등 재계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거부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재계는 투자 기업의 재무 상황이나 환경경영, 사회책임경영, 기업지배구조 등의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민연금이 비공개 대화나 공개서한 등을 통해 기업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계의 이 같은 판단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상장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나 ‘연금의 정치화’에 대한 의구심과도 연결돼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정부가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를 활용해 상장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연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주주소송 등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는 “상장사는 물론 대기업들조차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기업들은 이 제도의 순기능보다는 대주주의 경영권 침해 등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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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앞서 세부지침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기업, 기관, 시민단체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드러냈다.(사진=박종준 기자)

전경련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을 통해 투자대상기업의 경영진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그러한 요구로 인해 경영권의 교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거나 경영자에 대하여 위협으로 작용한다면 경영자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전략적 투자를 포기하는 경향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미 국민연금이 지분을 상당수 보유한 대기업에 대한 경영권 견제를 하고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도입한다는 것은 이중규제 소지가 있다”고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자칫 기관투자자와 기업에게 정부의 경영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일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민간에게 운용을 맡긴다 하더라도 국민연금이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이전보다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이 더 늘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기업에 대한 경영권 간섭 우려 등의 우려나 부작용을 불식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튜어드십 코드의 국민연금 도입 문제는 지난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논란에 이어 올해 대한항공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또한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72개사에 달한다. 

박종준 기자 jjp@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