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자살, 출근길 교통사고도 보상받을 수 있을까?”…행정소송으로 업무상재해 인정받기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7-12-04 16:54 수정일 2017-12-04 16:54 발행일 2017-12-0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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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인 20대 여성 A씨는 수학 숙제를 해오지 않은 남학생 B군을 혼낸 뒤 B군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항의를 받게 됐다. B군의 부모는 시시때때로 A씨에게 전화해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B군의 같은 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A씨에 대한 험담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A씨에게 무례하게 구는 일도 벌어지면서 A씨는 심각한 스트레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다. 여기에 피부질환과 간수치 이상 등 다른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권했고, 휴가를 낼 수 없었던 A씨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A씨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스트레스로 자살한 초등학교 교사, 유족보상금 받을 수 있어,위 사례에서 A씨의 경우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을까. 법무법인 율원 곽내원 변호사는 “자살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자유 의사에 따른 행위이므로 재해로 규정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라면서 “다만 공무상의 사유로 야기된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경우 에는 보상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실제 A씨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재판부는 "해당 사건으로 A씨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인정되지만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 대법원 재판부는 "A씨는 B군 사건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상처를 받아 최초 우울증이 발병했고, 이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학교 업무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갈등하다가 우울증이 재발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우울증의 발병 경위 등을 볼 때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서 A씨 유족이 제기한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2014두1060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자가용 출퇴근길 교통사고도 업무상재해 인정 가능하며,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K씨는 자가용을 타고 집과 현장을 오가며 출퇴근을 해 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통근차량도, 이렇다 할 대중교통 수단도 없어 불가피하게 자가용을 이용해야 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많은 눈이 내려 K씨는 밤 10시까지 제설작업을 했고, 다음날 평소처럼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다가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앞 차를 들이받고 사망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K씨의 사망에 대해 유족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K씨의 유족은 법원에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K씨의 사례처럼 자가용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와 관련해 업무상재해 여부를 두고 행정 소송이 벌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곽내원 변호사는 “출퇴근 방법에 있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근로자가 자가용 출퇴근 중 당한 교통사고라도 업무상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라며 “이런 경우 개인 소유의 자동차라도 근로자에게 유보된 것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특히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와 업무 사이에는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내적 관련성이 존재하는 만큼 해당 재해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근로자 입장에서는 행정소송 변호사를 선임해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법적 권익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편 곽내원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25기를 수료하며 법조계에 발을 디뎠다. 대전지방법원·수원지방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등을 거쳐 미국 산타클라라대학 방문과정을 수료한 뒤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일한 바 있다.

김현정 기자  press@viva100.com